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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순철의 아티스트데자뷰(14) 이강소 b. 1943

변순철

 


 

“이건 얼마나 경이롭고, 얼마나 신비스러운 일인가? 나는 장작을 져 나르고, 물을 긷는다.“ - 禪語에서 

2007년 봄인가? 후배가 권하는 직경 2.5m가 넘는 목재를 구입하고, 제재(製材)하고 쪄서 최근까지 보관해 왔다. 당시 생각으론 그렇게 큰 나무란 쉽게 구할 수 없을뿐더러, 목재가 작업재료로 쓰임새가 훌륭하다는 생각, 또 호기심이 작동하여 분수에 맞지 않지만 무리하게 마련하게 되었었다. 습관적으로 나는 어떤 작업을 위해 재료를 구하기보다는 막연한 기대 혹은 직감으로 재료가 될 만하면 오랜 시간 주변에 두고 교류를 하다가 문득 적절한 용도에 걸맞다고 생각될 때 이용하곤 한다. 70년대의 선술집의 탁자들과 의자들, 갈대밭의 갈대, 대나무들, 80년대의 여러 종류의 점토덩이들, 90년대의 폐기된 옛 건축의 구조물들이 그러했다. 어떤 예감에 의해 선택된 이런 재료들은 나의 주변을 맴돌면서 나와 교류를 지속하다가, 작업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연초에 대구미술관으로부터 개관전의 일환으로 설치작업을 의뢰받고, 그 큰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두고 걱정하던 중, 갑자기 작업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목재들이 번개처럼 머리를 스쳤다. 그리곤 전통적인 목조각가가 아닌 내가, 그 큰 목재로 코끼리 다리나 인디언 토템 같은 것을 만들지도 않을 것을, 제재해 놓은 그대로 혹은 약간의 정리를 거쳐서 어떻게 늘어놓기만 해도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데 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 순간 2년 전 개인전에 했던 설치작업 <분황사1>의 후속작업인 <분황사2>가 아직 마무리를 기다리며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것은 2003년 경주에 세라믹 작업을 위해 자주 다니던 시기, 틈이 나면 이곳저곳 다니기도 하던 때, 어느 고물상에서 폐기되어 방치된 분황사의 목조 잔해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것을 나의 작업장으로 옮겨 와 보관하게 되고, 수년 후 종래에는 설치작업으로 세워지게 된 것이다. 당시 또 하나 기억에 생생히 남는 것은 불국사 서남쪽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8세기 말에 조성된 괘릉이 있다. 예전에도 이곳을 몇 차례 들렀지만, 그날은 특히 능 앞의 상석이 시선을 끌었었다. 직육면체의 단순한 형태임에 불구하고 그 비례가 아름답다고 할까, 경건함이 느껴진다고 할지, 어떤 신비스런 느낌을 가슴으로부터 떨칠 수가 없었다. 이 감동적이고도 묘한 기하학적인 비례를 언젠가 작업으로 끌어 들일 수도 있을 것이란 이야기를 동료들에게 말 한 적이 있었다. 바로 이 생각이 작업장의 목재들과 겹치면서 작업이 하나하나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분황사2>의 오래된 기둥이나 새로운 목재의 작업들은 모두가 나무로 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나무라는 언어의 표상을 이용하여 우리가 서로 소통하고 있지만, 실은 이들 모두는 무수하게 다른 어떤 것이다. 세월에 의해 나무들의 입자와 입자, 그리고 주변의 여러 요소들과 서로 작용하고 영향하여 끊임없는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나무를 태워 보면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불꽃과 함께 산화되어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태워져서 남은 재를 불면 검은 입자들이 안개처럼 불려 나간다. 그렇다면 나무가 나무 아니고, 지금 수시로 변하고 있는 우리도 우리가 아닌 것이 아닌가?

 




 

 

“ 고요히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봄은 오고, 풀잎은 저절로 자란다. “ - 禪語에서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자연(인간사 모두를 포함한), 세계 혹은 우주는 마음으로 부터의 분별 때문에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으로가 아닌 마음의 환상적인 현현에 불과한 것들을 외적인 세계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이 미망(迷妄)이 아닌 실재의 세계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 온 여러 종교와 성현들의 역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20세기에 들어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존재를 실증하고 핵과 전자를 발견했고, 핵을 구성하는 양자와 중성자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아원자 입자들을 지금도 발견해 가고 있다. 원자수준에서의 자연은 토막들로 쪼갤 수 있는 역학적(뉴턴적) 세계로서가 아니라 관계들의 그물로 나타난다고 하고, 서로 관련된 그물에서는 어떤 부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면 전자들을 관찰할 때 그것들은 입자로 나타날 수도 있고 파동으로도 나타날 수 있으며, 관찰자가 무엇을 보느냐는, 그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불확정적이라는 것이다.

 

 

 

 







 




“ 자연에 대해서 말하려면 반드시, 동일한 시간에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 -하이젠베르크(물리학자)

<虛-11-I-1>의 작업은 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어떤 미세한 통로라도 마련할 수 없을까 하는 소박한 기대를 시도해 보는 단순한 작업이다. 그동안 내가 해 온 설치작업이나 프로세스적인 작업이 우리 일상의 관습적인 현실을 떼 내어 화랑이나 미술관의 시공간으로 옮겨 실행 했을 때, 우리의 일상 혹은 주변을 무엇인가 조금 다른 위상으로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란 데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설정하는 작업이란 참여자들 모두와 함께 나 자신도 참여자고 관객이었다. 虛의 작업에서 분황사 옛 기둥들은 작업 출발의 동기였다면 괘릉 상석의 비례는 작업에 신비한 활력을 불어 넣는 촉매였다. 이 작업의 진행이 순조롭게 잘 형성되어져서 미술관에서의 설치 실행 장소와 주변 그리고 나를 포함한 참여자들과의 지속적이고도 의미 있는 작용들이 수없이 일어나기를 기대 해 본다.

“ 자연 질서를 따르는 자는 도의 물결을 타고 흐른다. “ - 회남자에서 이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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