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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모방은 덕목이 아닌 절차일 뿐, 오츠카미술관

강철



바티칸 시스티나예배당 천정화를 똑같이 재현

한 오츠카미술관 시스티나홀


독일에서 10년 이상 공부하고 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은 한 미술평론가는 그의 저서에서 독일에서 바라본 일본은 또 다른 유럽이었다고 한다. 서구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끊임없이 열리는 일본 관련 특별전이 ‘내실’ 있게 열리는 것을 보면, 서구와의 오랜 기간 교류를 통한 시공간적 콘텐츠 누적의 산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자 그대로 탈아입구(脫亞入歐)에 진입한 일본의 미술관들은 크게 2부류인데, 전통을 강력히 지키는 고전 미술관, 서구 콤플렉스가 다소 혼재된 현대 미술관으로 양분되는 듯하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제3의 영역이 있다. 오츠카(大塚)미술관은 세계최초로 특수 세라믹으로 미술도판의 원색을 최대한 살린 작품의 집대성이다. 마치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책을 통째로 옮겼다고 해야 할까. 3,240엔(35,000원/2016년 11월 환율 기준)이라는 고가의 입장료까지 부담하며 복제품을 과연 구경해야 할까. 독특한 콘셉트, 불편한 교통, 실제 유사성 등 의문투성이의 미술관을 다녀왔다. 세상의 모든 미술관이 그렇듯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오리지널 싱크로율 50-90%, 미술사 교육 효과는 100점 
오츠카미술관은 일본의 오츠카제약사가 도쿠시마(德島) 나루토(鳴門)에 설립한 ‘도판명화 미술관’이다. 고대벽화부터 현대회화까지 1,000여 점을 전시한다. 대형 타일(1×3m)을 1,300도의 특수기술로 구워 정교하게 붙인 것이다. 유럽의 성당 벽화를 실물 크기로 재현한 것이 매우 그럴듯한데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다. 반면, 유화 물감의 입체감을 전달하기는 아무래도 무리다. 미술관 측은 오리지널 작품이 100년이 지나면 정작 변색되는데, 자신은 1,000년 이상 변색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모방을 본격적인 주제로 한 미술관이다. 언젠가 나에게 명망 있는 언어학자가 그림에 문외한이라며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피카소가 도대체 왜 유명하냐고 자기는 그의 그림을 아무리 봐도 좋은지 모르겠다고.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 였지만 ‘미술은 20세기에 눈에서 뇌로 왔고, 미추(美醜)의 단계에서 새로움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모방의 절정이 카메라의 발명으로 꺾이고 인상파, 입체파 등 새로운 미술사조 등이 시작되었다’는 짧은 설명에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는 그가 미술 작품을 대하는 시점이 모방 단계에 멈춰 있어, 당장 말은 알아들어도 체감할 수 없기 때문이다.지극히 협소한 미술의 인식뿐 아니라, 문화 전반을 바라보는 인식의 시점은 전공 지식과 아무상관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19세기 사람처럼 사는 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작위적 새로움보다 모방이 낫다 F1 자동차 경주를 통해서 타이어와 엔진오일 기술이 발전하고, 우주 개발을 통해 항공기 기술뿐 아니라 전자레인지와 같은 생필품도 등장한다. 인터넷도 처음부터 대중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제한된 과학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낙수효과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극적으로 잘 나타난다. 

편집장이 인턴사원이 입고 있는 옷을 설명하며 혼내는 장면인데, 영화를 본 이라면 누구나 기억한다.그러니까 입지도 못할 옷을 입고 도대체 허구한 날 쓸데없는 패션쇼를 왜 하냐고 따지는 것은 우문이다. 마찬가지로 각종 비엔날레 전시가 알 수 없고 지루하며 대중적이지 않다는 비난이 끊이지 않지만, 시각 예술 최전선에 골몰하는 이들의 모임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존재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러니까 피카소 그림에 도저히 정이 가지 않더라도 인정은 해줘야 한다.

일찍이 미술사학자 빈켈만은 바로크의 과잉을 경계하고자 『그리스 미술 모방론』을 통해 검증된 고전을 모방하며 되돌아 보고자 하지 않았던가. 실망스러운 새로운 노래보다 오래된 명곡의 리메이크가 낫고, 형편없는 신작 영화보다 <대부>를 한 번 더 보는 게 낫다. 고전 답습을 위한 모방은 자랑도 아니고 수치도 아닌 그저 ‘절차’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오츠카미술관은 매우 정확한 콘셉트로 답답하고 억울한 미술 관람객의 욕구를 제대로 채워준 미술관이다. 

매번 새로움을 만들어 내야야 하는 미술관, 작가, 큐레이터에게서 새로움이 끊임없이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차선으로 ‘모방’으로 잠시 쉬어 가도 괜찮지 않을까. 오히려 새로움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불편한 결과물이 공공미술과 미술관 안팎에 널려 있다. 자격 미달의 새로움이 방치되고 누적된다면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미술 자체를 오해하고 떠날 수 있다. 검증된 모방이 억지스러운 새로움 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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