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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아는 것만큼 보인다

송미숙

송미숙 미술시평(34)


법의 정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프랑스의 계몽주의 정치철학자 몽테스키외(Montesquieu)는 미학사에서도 족적을 남겼는데 그의 깊은 인류학적 이해에 기초한 개념은 맛·취향(Got)으로 이 취향은 개인의 기질로부터, 개인의 기질·성향(Temperament)은 그가 속한 지형의 날씨, 온도, 토양뿐 아니라 시대(Temps)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숭고(Sublime)의 개념을 비슷하게 맛에 비교한 영국의 미학자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몽테스키외의 Got의 개념은 하나의 보편적인 비평적 잣대로 오늘의 현대미술, 나아가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개인의 성향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취향은 교육과 지식에 의해 길들여질 수 있으며 이렇게 자신이 속한 자연과 교육에 의해 형성된 취향은 개개인이 보는 사물과 사건, 사람은 물론 처음 접하는 미술에도 반복해서 적용된다. 습관의 동물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특권이자 특질이기도 한 이 취향의 독선은 우리 주변에서 늘 접하는 현상이다.

이강소 작품세계
지난 9월 16일 PKM트리니티갤러리에서 오픈한 이강소 개인전( -10.29)은 그가 줄잡아 40년간 지속해온 ‘실험’들을 돌아보게 했던 전시였다. 물론 최근작도 포함해서. 한국현대미술에서 1960년대 후반 본격적인 반-체제/국전의 활발한 열기와 움직임에 자양분을 받아 1970년대 초반을 풍미한 여러 실험그룹들의 한 유파였던 신-체제 결성과 잇단 과감한 실험, 소통을 화두로 한 사회운동으로 경력을 시작한 이강소의 일종의 데뷔작은 ‘AG’에 출품했던 <갈대> 작업으로 이는 갈대라는 하찮은 자연대상에 백색물감을 뿌려 빽빽이 공간을 채워 관객이 드나들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조지 시걸(Segal)의 조각과 같이 일종의 ‘얼어붙은 해프닝(Frozen Happening)’ 혹은 계획된 해프닝의 결과물과의 소통을 유도하고 있었다. 일본의 구타이 작가들과의 연관성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의 결정적인 전환점은 <닭의 퍼포먼스>로 파리비엔날레(1975)에 참여한 것이 동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작품도 그렇지만 작가가 파리에서 접한 쉬포르-쉬르파스(Support-Surface)의 영향이 이후 지지대와 표면, 나아가 모더니즘의 캐논이었던 평면성, 캔버스를 해체하는 작업으로의 전환에서 드러나고 있다. 쉬포르-쉬르파스 작가들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에 대한 이강소의 이해는 다음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의 화가로서 화폭을 구성하는 본질적 대상인 이미지와 물감, 또 모더니즘의 보루였던 재현은 곧 일루전이라는 사실에 대한 도전으로의 이행이다. 답은 화폭, 내지 이미지 대상이란 결국 일루전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거나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를 화폭에 재연함으로써 사물대상과 작가의 도구인 붓·물감의 행위의 중간지점 어딘가 가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식은 이강소가 그림을 비평하기 위해 그리기를 지속하고 있는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인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t Richter)와 맞닿아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한편, 리히터가 사진, 팝의 광고 이미지를 회화적 방식으로 복제하거나 빗자루 같은 붓으로 추상표현주의에 기초한 풍경을 재현해 이미지 혹은 실재에 대한 회의론적인 비평을 가하고 있다면 이강소의 놀이는 그가 친숙해 있는 전통 문인화의 생동감 있고 간결한 붓놀림에 그에게 친숙한 오리, 사슴, 배 혹은 산, 집, 물과 같은 단순하지만 유동적인 이미지 기호들을 혼융함으로써 이들의 혼합체가 엮어내는 화폭에서 격조 높고 우미한 풍류를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그는 한 폭의 그림은 한 편의 시와 같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유추해낸 자연 대상과의 조응과 운율이라는 사실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지점에 궁극적으로 도달한 것으로 보이며 거기에서 그의 취향은 고정된 듯하다. 1980년대 후반에서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거의 습관처럼 이 엘리트적인 귀족 취향의 풍류를 즐기고 있다. 호 불호를 떠나 그의 작업은, 마티스가 궁극적인 그의 회화의 목표라고 말했던, 하나의 편안한 안락의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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