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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음악, 영화와 비디오 아트의 접속 :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경우

송미숙

송미숙의 미술시평(26)

시각 예술가며 작곡가로 알려진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 1955-)의 작품은 대체로 음향·소음·사진·비디오와 영화간의 관계를 모색한다. 전축 레코드(Gramophone Records)와 턴테이블을 악기로 사용하며 음향 콜라주를 만들어낸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그를 어느 비평가는 ‘턴테이블리즘의 우연한 발명가’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이러한 턴테이블과 레코드의 사용은 작가자신이 독립적으로 발전시키기는 했으나 개략적으로 악기의 힙합 사용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그의 작업은 이후 레코드를 바닥에 깔아놓고 관객이 그 위를 걷게 해 깨지면서 문자 그대로 음악이 소음으로 변환되는 과정을 이른바 설치 작업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마클레이는 지나간 영화들의 클립을 이용한 음향작업으로 발전시켜 음악과 소음의 차연, 인간과 인간을 연결시키며 인간의 삶을 지배하기도 하고 또한 그를 예속화해 간 실제 소리들, 시간과 시간의 계량시계(The Clock)에 대한 통상적인 이해를 재고하며 접합해 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렘 쿨하스의 블랙박스를 이용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전시(2010.12.9-2.13)로 마클레이의 이름을 국제미술계에 확실히 각인시킨 그의 <시계(The Clock)>작업과 그의 영화작업의 시원인 <전화(Telephones)>, 음향편집의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비디오 사중주(Video Quartet)>만을 선별하여 보여주었다. 악기가 만들어내는 음악, 사람과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리와 소음의 재현을 구현한 사운드아트를 새로운 시각예술의 장르로 자리잡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마클레이는 일상에서 영상만큼 배제할 수 없는 소리의 편재성과 의외성을 접합, 혹은 교차시키며 관객을 끌어들인다. 이때에 우리에게 익숙한 헐리우드 영화의 장면들은 자연스럽게 관객을 소리가 내포하거나 외연하는 감정의 영역과 내러티브의 차원으로 읽게끔 유도한다. 마클레이의 사운드아트의 이러한 대중적인 맥락이 관객을 그의 작업에 쉽게 다가가게끔 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상업영화관에 버금가는 규모와 음향설비를 갖춘 대규모의 <비디오 사중주>는 고전 시네마스코프 영화처럼 가로로 길게 펼쳐진 화면을 보여주어 공간 속에 음향의 관계들을 모색한 반면, 2010년 신작인 <시계>는 시간이라는 새로운 요소를 탐색한다. 무수한 영화 속의 시계장면들을 편집하고 연결하여 하루 24시간과 일치시켜 상영하면서 영화 속의 시간과 실제시간과 교차케 하는 일종의 시간의 내러티브를 창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의 압권은 <시계>다. 간단히 말해 마클레이의 <시계>는 우리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라는 기계장치를 소재로 했으나 그의 시계는 일반 시계와 달리 시계가 등장하는 다양한 영화장면의 재현이다. 영화 속에 시계가 나오는 장면, 혹은 대화 속에서 기간이 언급되는 장면 등 시간을 나타내는 수천 개의 클립과 컷을 발췌하여 24시간을 구성한 것이다. 작품에 사용된 이 파편화된 컷과 클립은 1940년대의 흑백영화에서부터 1950년대 공상과학영화 및 유럽의 예술영화, 1970년대의 마카로니 웨스턴 강도 혹은 갱영화, 현대의 서스펜스 스릴러, 공포영화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발명되어 대중화된 후 모든 시대와 장르를 망라한다. 탁월하게 편집하여 유연하면서도 독특하게 이어진 각각의 장면들은 하나의 영화사를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작품의 제목이 분명히 전하고 있듯이 하나의 시계를 창조하고 있다. 여기서 24시간이란 시간의 계량은 작가의 의도가 단순히 시계 혹은 ‘기억의 고집’이상의 의미, 즉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며 그와 동시에 이미지·내러티브·욕망의 성격의 풍부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의문과 함께 이들을 시계라는 오브제로 하나로 엮어 고착시키며 우리의 시간과 관계와 그 관계의 영속성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시각예술에서 소리·냄새 등의 다른 감각기관을 끌어들이는 시도는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으나 그런 시도가 항상 우호적인 반응을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마클레이의 경우는 그런 의미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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