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4)‘블록버스터’쇼 - 이대로 좋은가?

송미숙

송미숙의 미술시평(4)

최근 몇 년 간 기획사가 들여오는 이른바‘블록버스터’전시가 난무하고 있다. 주로 컬렉션이나 기획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시립미술관, 예술의전당 미술관을 무대로 판치는 블록버스터 쇼는 엄청난 자본과 기획능력을 바탕으로 외국 유명미술관의 걸작들을 들여와 국내에서는 접할 수 없는 외국의 근현대미술을 감상할 기회를 주어 일반대중의 정서함양과 문화향수욕구를 고취시킨다는 점에서 우선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언제까지 우리 미술계가 이러한 유형의 기획사 중심 전시를 용인하고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기우에서 지금 진행 중인 두 개의 블록버스터형 쇼를 예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지난 해 11월 22일 오픈, 올해 3월 22일 끝난 서울시립미술관의 ‘프랑스 국립 퐁피두 센터 특별전’은 오프닝 때 퐁피두 관장인 파크망까지 참석하고 수석 큐레이터가 기획했다고 해서 꽤 내용이 있는 전시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현재 루브르에 있는 푸생의 <에 인 아르카디아 에고(Etin Arcadia Ego)>의 복제 영상을 서두로 서양문화에 나타난 아르카디아-천국의 모든 개념, 즉 황금시대, 낙원, 풍요, 허무, 쾌락, 전령사, 조화, 암흑, 되찾은 낙원, 풀밭위의 점심 등 10개의 소주제로 세분해 현대작가들의 시각을 통한 서양의 낙원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는 이 전시는 주제부터가 광범위하고 소주제에 상응하는 작품의 선정도 제멋대로라는 인상을 지을 수가 없었다. 하나의 예로 조화 harmony에 왜 레제의 40년대 말 작품과 80년대의 미국 신표현주의 작가 에릭 피슬이 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 또 이 두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조화의 개념에 부합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큰 고민과 사전준비 없이 적당한 개념을 잡아 컬렉션의 작품들을 이리 저리 꿰어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전체적인 느낌이었고 그럴 바에는 차라리 교과서적으로 시대 순으로 하든지 - 퐁피두의 짧은 컬렉션의 역사로 볼 때 불가능하겠지만 - 혹은 퐁피두의 강점인 초현실주의 같은 하나의 사조를 짜임새 있게 소개하든가 하는 편이 나았지 않았나 싶다. 

결론적으로 금번 퐁피두 특별전은 퐁피두센터와 기획사가 한국의 미술대중과 문화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았고 이런 전시에 한국의 일반대중이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것이나 아닌지 사뭇 씁쓸했다. <퐁피두 특별전과 달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임대해 문화 에이치디가 기획한‘클림트 황금빛 비밀’(2.2-5.15)은 한국에서는 꽤 사랑을 받는 19세기말, 20세기 초 사교계의 여인들의 퇴폐적인 미를 특유의 장식적인 캔버스에 담은 초상화가로서 또 그들과의 염문으로 패륜적인 삶을 살았으나 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있는 빈의 대가 구스타프 클림트에 초점을 맞춘 모노그래프적인 전시였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작품의 배치, 베토벤 프리즈의 재구성, 모더니즘 건축의 시원이라 일컬어지는 올 브리치의 세세션 Secession 건물의 모형, 분리파그룹 디자이너들의 대표적인 제품의 인스톨레이션, 영상과 사진자료 등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이 꽤 돋보였다. 그러나 상당한 경비에 비해 원작 유화작품이 별로 많지 못했던 점, 유화에 비해 사료적, 예술적 가치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 누드 드로잉들의 과다한 선별과 클림트가 활동했던 19세기말 유럽의 시대정신에 대한 문맥이 다소 미흡하게 다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설사 작품 선별에는 애로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도록을 통해 위의 사항을 얼마간 보완 가능하지 않았을까. 아울러 나의 큰 의문이며 당연하면서도 근본적인 물음이기도 한데 19세기 말을 풍미했던 오스트리아의 거장 클림트가 왜 21세기 초를 사는 우리에게 전시되어야하는가, 즉 전시의 당위성의 제시이다. 클림트의 베일에 싸인 삶의 재조명인가 아니면 토털 아트에 대한 그의 열정인가, 둘 다 잡힐 듯 잡히지 않고 모호한 채로 남아 있다. 

두개의 ‘블록버스터’전시가 남기고 있는 교훈은 이왕 외국의 유명미술관들이 앞다투어 컬렉션 장사.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 기회를 잘 이용해 그들의 컬렉션에 대한 보다 심층적이고 전문성 있는 분석과 스터디를 통해 주체성 있는 기획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며 더 이상적인 것은 미술관 대 미술관 차원의 장기적이고 체계 있는 교류전 형식으로 앞으로는 방향을 틀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