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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미술평론 60년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75)


지난 1월 28일 홍대조형관에서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주관의 ‘한국미술평론60년’심포지엄이 열렸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서부터 오늘에 이르는 약 60년간의 평론활동을 점검해 보자는 취지였다. 평론가들이 평론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은 회고와 더불어 자기성찰의 의미를 지닌다. 60년을 통해 활동해온 평론가들(작고 평론가 중에서) 가운데서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김용준, 김영주, 최순우, 이경성, 정규, 방근택, 이일, 김인환 등 8명을 대상으로 주로 이들의 비평 활동과 비평적 성격을 점검하고 재평가하는 것이 심포지엄의 주 내용이었다.

60년 동안 활동한 평론가의 수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현역까지를 합친다면 약 100명에 이른다. 물론 이 숫자는 그동안 배출된 창작가에 비하면 적은 숫자이지만 60년 사이에 100명 가까운 평론가가 등장했다는 것은 결코 적은 수는 아니라 본다. 단 이들의 활동량이 얼마만큼 부피를 지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평론가협회란 조직이 등장한 것은 1956년이다. 5, 6명의 평론가들이 처음으로 독립된 단체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58년에 또 다른 단체인 <한국미술평론인협회>란 것이 만들어졌고 63년엔 <한국미술평론인회>가, 그리고 65년엔 <한국미술평론가협회>가 출범하였다. 그러니까 오늘 존재하고 있는 평론가협회는 65년에 출범한 단체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63년도까지 만들어진 평론가협회는 창작겸임 평론가와 직업평론가가 섞여 있었다. 화가이면서 평론을 겸한 이들을 창작겸임이라고 하는 반면, 순수히 평론을 하는 이들을 직업평론가로 지칭하고 있다. 미술창작은 아니지만 시나 문학평론을 하는 이 가운데 미술평론을 하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65년 결성된 평론가협회에선 순수미술평론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만 결속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무렵을 기해 그동안 직업평론가 못지않게 활발히 평필을 구사하던 창작겸임의 평론가들이 일제히 평론활동을 중단하고 애초의 창작가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이다. 평론가협회가 그래서 더욱 정통성을 확보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두 갈래의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의 출신성분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미술작가 지망생이 평론가로 전향하는 경우와 인문사회학을 전공한 이들이 대학원 과정에서 미학이나 미술사로 방향을 바꾸면서 평론가로 등단하는 경우이다. 평론가가 되는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 우리나라 평론가 출신의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창작 지망생이 평론가가 되는 경우, 창작체험이 평론의 밑거름이 된다. 작품의 제작시스템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감성적인 접근이 용이하다고 할까. 반면에 창작가로서의 자기기호가 시각의 폭을 좁게 할 수도 있다. 창작체험이 없는 평론가들의 경우, 지적 작품분석에 치중하는 폐단이 있어 정작 작품이 지닌 감성적 측면을 놓치는 경향이 있다.

미술평론도 형식에 있어선 문학이다. 글쓰기의 훈련이 되어있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과거의 평론가들 문장을 대하면, 심한 경우 암호를 읽는 느낌을 준다. 아마도 이심전심으로 이해되지 않았을까 본다. 오늘날에도 현대미술이 난해할 뿐 아니라 미술평론도 난해하기 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난해하다는 것은 꼭 어렵게 썼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작품을 읽지 못한데서 오는 이해의 미숙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쓴 것도 자신이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는 것도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미술계 침체 평론가도 책임이 있다
60년을 되돌아보았을 때 평이한 평론체가 비교적 생명이 긴 반면 어려운 평론체는 읽히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빨리 묻혀버린다. 사실, 쉽게 쓴다는 것이 어렵게 쓴다는 것보다 더 어렵다. 오랜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평론에 대한 불만과 불신은 과거에도 있었다. 비평작업자체가 논쟁적이기 때문에 항상 불만과 불신의 소지는 있게 마련이다. 오히려 불만과 불신이 없다는 것이 이상하다.

과거 한때는 미술평론이 일종의 미술권력으로 오해된 적이 있었다. 또한 창작과 동반자로서의 역할을 한 적도 있었다. 비평이 권력화 된다든가 권력의 유혹을 받는다는 것은 부패의 증후이다. 비평은 무기가 아니다. 비평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비평의 기능은 비평의 존재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며, 역할은 당대적 미의식의 고양과 비젼의 제시다. 평론가협회가 60년 평론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것도 비평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자기 성찰을 통한 확인이지 않으면 안된다. 이 기회를 통해 기능과 역할에 대한 부단한 자기 검증이 이어져야 하리라. 평론가는 있어도 평론은 없다는 말도 자주 듣는다. 불신의 근거이다. 현재 활동하는 평론가가 70, 80명이나 되는데 평론이 없다는 것은 평론가가 제대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평론가란 타이틀만 획득하면 안주해 버린다. 미술계가 침체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들에게만 그 책임을 돌릴것이 아니라 평론가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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