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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근대문화재로서의 미술작품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73)

근대미술작품이 근대문화재로 등록예고되었다는 소식이다. 지금까지 주로 건축물이 근대문화재로 지정되어왔으나 근대미술작품으로는 처음이어서 관심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등록예고된 작품은 심전 안중식의 <백악춘효>, 석지 채용신의 <운낭자상>, 춘곡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이다. <백악춘효>가 1915년 작, <운낭자상>이 1918년 작, <부채를 든 자화상>이 1915년 작이다. 근대를 1910년으로 상정하는 논지에 따르면 이들 작품은 근대 초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역사적 가치를 먼저 꼽을 수 있다. 특히 조선조의 잔영과 근대로의 여명이 교차하는 시기의 작품들이여서 미술사적 가치는 더욱 높다.
안중식은 조선조의 마지막 화가(화원은 되지 못했으나 화원 조석진과 더불어 당대를 대표해주고 있다)로 알려진 만큼 조선조 회화의 맥을 잇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중국화풍의 영향을 받은 관념산수라는 점에 비해 <백악춘효>는 실경산수라는 점에서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연대로 보면 이미 국권이 왜국으로 넘어간 암울한 식민초기에 해당되는 시점에서 조선 정궁인 경복궁과 이어지는 북악을 그렸다는 것은 어떤 목적에서, 어떤 주문에 의하였던 비감한 정회를 자아내게 한다. 광화문과 운무에 가려진 경복궁을 지나 소슬한 북악으로 연결되는 경관은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장소가 지니는 독특한 기운을 구현해주고 있어 안중식의 전체작품 가운데서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채용신은 관리이기도 하면서 초상화가로 유명하다. 많은 초상화를 남기고 있는 가운데 <운낭자상>은 홍경래 난에 순사한 의기 최연홍을 모델로 한 것으로 여인과 아기의 설정이나 의습에 나타나는 명암 등 조선시대 인물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외적인 작품이다. 안면묘사에 치중하던 조선시대 초상화와는 달리 인물 전체에 미치는 표현력은 리얼리티에 충실한 근대적 시각의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아기를 안고 있는 인자한 어머니상은 성모자상을 방불케 한다. 한국의 성모자상이라 지칭해도 무방할듯하다.




고희동의 <부채를 든 자화상>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에 의해 그려진 자화상이란 점, 그리고 현존하는 서양화로서는 가장 연대가 상한 된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가치를 지닌다. 동경미술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그려진 이 작품은 후일 발견 되었을 때는 3분의 1정도가 파손된 상태였으나 몇 차례 수복을 거쳐 원 모습을 회복시켰다. 동경예대(전 동경미술학교)에 소장되어있는 <정자관을 쓴 자화상>에 비하면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나 부채를 든 청년의 호기 있는 모습은 근대의 풍물을 누구보다 먼저 접했던 작가의 당시의 상황을 반영해주고 있어 풍속적인 면에서도 참고가 되는 작품이다. 고희동의 동경 유학 시기는 인상파가 일본미술 아카데미즘으로 자리잡아가던 시기로, 고희동을 비롯한 초기의 동경유학생들의 서양화가 다분히 인상파의 영향을 드러내고 있음을 이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잔잔하게 붓을 피워가면서 다독거린 묘사의 방법, 밝은 광선에 예민한 측면 등 인상파의 상투적인 방법이 잘 반영되고 있다.


미술작품의 보존은 국가차원이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근대기 작품들을 근대문화재로 발굴, 등록시키는 작업을 지속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 등록이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보호를 받기 때문에 선정에도 신중을 기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등록이후 사후관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어떤 문화재보다도 근대기 미술작품은 그 수에 있어 절대 열세일 뿐 아니라 관리소홀로 인해 그나마 얼마 되지 않는 작품들이 훼손되거나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는 당연히 예술적 가치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사료의 가치에도 무게를 두어야 한다. 미술가의 작품 뿐 아니라 그가 남긴 각종 유물까지도 귀중하게 다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10년대부터 도입된 서양화는 다른 유물에 비해 그 수가 대단히 빈약한 편이다. 보관상의 문제도 있지만 무지에서 오는 방치가 훼손의 주요인이란 사실을 떠올려 본다면 문화재로서의 보존이 시급한 사안이다. 서양화 도입초기의 인상화풍이나 30년대 후반에 이르면서 새롭게 나타나는 실험적인 화풍의 작품들은 하루속히 문화재로서의 보호를 받아야하지 않을까 본다. 이를 계기로 각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이 시기의 작품뿐 아니라 개인소장의 작품들도 조사, 연구가 서둘러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는 미술작품의 보존의 차원이 국가적 단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식을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것이다▷해당 칼럼 목록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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