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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기획의 묘미와 진열의 방법

오광수

- 신세계·롯데갤러리의 경우

오광수 미술칼럼(72)


근래 백화점갤러리의 기획전이 돋보인다. 신세계갤러리, 롯데갤러리의 전시가 눈길을 끄는 것은 내용의 다양성과 더불어 독특한 전시방법 때문이다. 신세계갤러리의 ‘책과 사물(7.6 - 8.22)’, ‘보자기·어울림의 예술(8.24 - 10.17)’, ‘에두아르도 칠리다(10.19 - 12.12)’, 롯데갤러리본점의 ‘로버트 인디애나(5.3 - 22)’, ‘열정을 만나다 : 스페인 거장 판화전(7.1 - 7.31)’, ‘다정한 편지-고바우 김성환 소장품전(11.9 - 24)’ 등은 올해 가장 인상에 남는 전시로 기억될만하다.

먼저 신세계갤러리의 ‘책과 사물’은 전시의 내용면에서나 진열에 있어 기획의 신선함을 준 전시였다. 극히 일상적인 오브제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범상한 사물들이 예술가의 손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삶의 경이로움이 바로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구본창과 일본의 야마구치 노부히로의 2인전으로 꾸며진 전시의 내용은 명제 그대로 흔히 볼 수 있는 손 때 묻은 책들과 오래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이다. 이것들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극히 평범한 것들이어서 일반인들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이다. 아무런 감동 없이 스쳐버릴 수도 있는 것들이다. 새삼 마르셀 뒤샹의 발견도 창작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상기되었다. 만드는 것만이 예술이 아니라 주변에 널려있는 것들을 어떻게 발견하느냐에 따라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 여기에다 전시가 유독 돋보인 것은 진열의 독특함이다. 같은 물건이나, 같은 작품도 어떻게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진열대에 어떻게 놓이느냐에 따라 그냥 책일 수도 있고 예술작품으로서의 책일 수도 있다.





허동화 소장의 ‘보자기·어울림의 예술’은 언제보아도 아름다운 우리 고유의 보자기전이다. 예술작품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생활용품으로 만든, 그것도 이름없는 여성들이 만든 보자기가 현대에 와서 이렇게 아름답고 품위 있게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장인들이 아닌 아마추어들이 만든 생활용품이 어떤 거장들이 만든 예술작품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에 직면해서 새삼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에두아르도 칠리다(10.19 - 12.12)’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보아오던 판화중심의 칠리다가 아니라 조각과 콜라주 등 본격적이라 할 작품들이 출품되었다는 점에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지하듯이 칠리다는 스페인 북부 바스코 지방 출신이다. 피카소, 미로, 가우디, 달리, 타피에스 등 스페인의 거장들이 바르셀로나 출신인 점에서 대조된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분방하고 환상적인 문맥과는 다른 약간 침울하고 명상적인 것이 칠리다의 예술세계다. 그의 세계가 지니고 있는 주술적이면서도 신비로운 요소 역시 지역에서 오는 독특한 영감원에 기인되었다는 점도 상기하게 한다. 특히 흑백에 의한 강한 대비적 구성은 수묵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어서 우리들에게 더욱 친밀감을 자아내는지도 모른다.
롯데갤러리의 ‘다정한 편지 - 고바우 김성환 소장품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김성환은 고바우란 시사만화로 널리 알려져 있는 터이지만 한편 우표수집가로서도 명성이 높다. 이번 전시도 우표와 직접 관계된 것이다. 새 우표가 판매되는 첫날, 편지봉투에 새 우표를 붙이고 그날 소인을 찍은 것을 초일봉피라고 하는데 김성환은 미술가들로부터 봉피에 그림을 그리게 하고 이를 소장해온 것으로 그것의 일부인 113점을 추려서 이번에 전시한 것이다. 우표와 소인이 찍힌 봉투에 그려진 그림을 까세라고 하는데 160명으로부터 받은 그림이 550여 점이나 된다니 이를 모은 과정의 정성도 정성이려니와 소중하게 소장해온 수집가로서의 노력도 놀랍다. 어떻게 그런 착상을 했을까에서 어떻게 그 많은 미술가들에게서 일일이 작품을 받아 간직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미치면 역시 뛰어난 수집벽과 예술에 대한 애정이랄 수 있다. 봉피에 그린 미술가들의(김기창, 김정숙, 김창열, 남관, 김흥수, 문신, 박고석, 변종하, 윤중식, 이대원, 임직순, 장욱진, 전혁림, 천경자, 하인두 등) 작품을 보면서 미술가가 지닌 또 다른 면모를 접하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어쩌면 작은 편지봉투에 그렸기에 더욱 밀도가 더해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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