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문화칼럼]예술가의 집에 문턱이 닳아없어지길

오광수

독일에서 신작소설 발표회를 본 적이 있다. 작가가 큰 제스처로 소설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관중을 자기 작품 속에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일상적 행사로 보고 있었다. 폐기된 근대적 산업시설을 개조한 베를린의 문화공간 ‘라디알지스템 V’는 다양한 예술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해 전혀 새로운 문화예술 공간으로 태어난 대표적인 예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옛 건물을 개조한 문화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 유럽 도처에 있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대학로에 개관한 한국의 ‘예술가의 집’도 역사적인 근대 건물을 개조해 조성했다는 점에서 이들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예술가의 집이 개관함으로써 이제 예술인들이 마음껏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나게 됐다. 일반적으로 예술가의 집이라고 하면 예술가들의 집단창작실(아틀리에, 스튜디오),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아카데미, 인스티튜트), 예술가들이 모여 순수한 교류를 시도하는 공간(살롱)으로 나눠볼 수 있다. 대학로 예술가의 집은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살롱으로서의 기능이 먼저 떠오르면서도, 예술가와 일반인을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카데미로서의 기능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술창작을 진작하는 교류의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개관 당일 첫 행사로 ‘소통과 나눔을 위한 예술정책 대토론회’가 열린 이후 각종 예술행사가 줄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서 황병기 고은 김성녀 씨 등 예술계 명사들의 강연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영상 매체를 통하는 것보다 명사를 직접 만나 강연을 듣는 것이 훨씬 감동적이다.

다른 장르 예술가끼리 교류 적어

장르별로 보면 국내에도 예술가의 집과 유사한 공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예술의 전 장르를 포괄하는 장소는 없었다. 예술가들은 자기 분야 중심으로 모였지 공존으로서의 유대감을 신장시킬 수 있는 공간을 갖지 못했다. 궁핍한 환경이었지만 1950, 60년대만 하더라도 장르를 초월한 예술가들의 모임이 적지 않았다. 당연히 다른 장르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오늘보다 훨씬 높았다. 자기 분야 외에는 맹목인 오늘날과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서로를 이해하는 가운데 유대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예술의 순수한 공감대 위에 우리 문화의 전체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웃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자신의 영역에 어떤 감화와 영향을 미치는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문을 닫고 있는 상태다. 어쩌면 우물 안 개구리 현상은 우리 스스로가 만드는지도 모른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새로운 장르가 생기고 새로운 개념과 사상이 발돋움하고 있다. 시각예술 분야만 하더라도 혼성예술(hybrid arts)이니 복합예술(multi arts)이니 하는 신종 예술이 등장한 지 오래다. 그뿐이랴. 예술과 과학이, 예술과 인문사회학이, 예술과 경제가 서로 소통하는가 하면 많은 영역에서 창조적 영감원을 얻으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종래의 예술이 급속히 퇴락하는 추세다. 화가는 연극을 보고, 무용을 통해 문학 속에서 창조의 영감을 얻는 것은 이미 낡은 표제다. 생소한 과학과 사회와 경제의 복잡한 논리를 예술의 창조적 그물망 속으로 끌어와야 하는 시대다. 이 같은 영역의 확대와 교류는 열린 사고는 물론 창조의 가치를 더욱 높여주는 계기가 된다.
한류 열풍을 타고 우리의 대중예술이 동남아를 휩쓸고 있는 반면 우리의 순수예술은 아직도 그 모습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다. 개별적으로 우수한 예술가들의 성과가 돋보이기도 하지만 순수예술 전체의 위상을 끌어올리기엔 아직도 미흡한 상태다. 어디에 그 원인이 있는가. 정책의 부재인가, 전략의 미숙인가. 창조적 역량을 고양하는 예술 상호간의 경쟁적 교류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 시대 예술의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의 부재가 우리 예술을 아직도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게 하는 원인은 아닐까.

발전방향 논의하는 사랑방 됐으면

여기서 예술가의 집의 시대적 역할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예술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참다운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이 모여 벌이는 난장토론, 예술가와 일반인이 만나 나누는 흥미로운 대화, 기성 예술가들이 예술지망생을 만나는 멘터링이 끊임없이 펼쳐져야 한다. 한편에선 작품 발표회가 열리고, 다른 한편에선 예술을 어떻게 지원하고 성과를 올릴까 하는 것을 논의하며 국제교류를 통해 우리 예술의 세계적 위상을 가다듬는 전략을 모색하면 어떨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우리의 삶을 고양하는 격조 높은 예술의 창조와 보급이다. 이를 실현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을 것이다. 예술가의 집은 예술의 전방에 있기에 그 역할이 직접적이고 실천적이라는 이점이 있다. 모든 영역 예술가들의 참여가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동아 2011.2.12
http://news.donga.com/3/all/20110211/34760229/1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