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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예술가 후원,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오광수

모 중진 화가에게 불우한 처지의 예술가를 돕기 위한 미술품 자선경매행사를 열려고 작품 한 점 기증하라고 권유했더니 “아, 그거 내가 먼저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받을 줄만 알지 주는 일을 모르는 것이 예술가의 속성인가 하다가도, 요즘 같은 불황에는 대중적 인지도는 물론 작품성에서도 상당한 경지에 오른 중진도 심한 한파를 맞았다는 현실감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예술가는 주변으로부터, 나아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후원을 받는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작품이 팔리고, 공연티켓이 팔리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간접적인 후원이 아니겠는가. 문학책을 읽지 않고 그림을 사주지 않고 아무도 극장에 오지 않는다면 예술은 자립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종교재단이, 또는 세속적 권력이 예술가의 후원자였다. 페이트런(patron·예술애호가)이라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 르네상스가 피렌체를 중심으로 발화된 것이 메디치가(家)라는 가문이 예술인을 지원함으로써 가능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메디치가의 후원에 힘입어 성장한 미켈란젤로가 로마에 불려가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주문을 받고 제작한 ‘시스티나 천장화’는 절대 권력과 세속적 부가 이루어 놓은 걸작이라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후원이 없었다면 과연 불후의 명작이 창작될 수 있었을까. 몇 세기를 두고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감동과 종교적 감명을 안겨주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

하워드 가드너는 예술가가 되는 길에서 필요한 조건을 몇 가지 지적했는데, “타인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을 받는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가질 것”이라며 지원의 중요성을 들었다. 주변으로부터 격려와 지원이 없다면 예술가의 재능은 제대로 싹터 날 수 없고,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싹을 틔웠다가도 금세 말라버린다.

많은 예술가가 활동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예술사에 남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버트 리드는 미술사는 몇 사람의 천재에 의해 엮어진다고 말했다. 당대 많은 예술가는 몇 사람의 천재를 위한 들러리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수만 명, 수십만 명이나 되는 당대 예술가를 예술사에 다 기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들러리가 없다면 주연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술사란 이 많은 들러리가 쌓아올리는 풍요로운 자양으로 이루어지는 것일 게다. 들러리가 있기에 주연은 주연으로서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주연에게만 지원이 몰릴 것이 아니라 많은 들러리에게도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소이가 여기에 있다.

얼마 전 대한민국 예술가의 62.8%가 한 달 수입이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결과를 접한 바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계도 그들의 고뇌와 노력을 보다 값지게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기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중요한 통계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은 결코 일방적인 기부행위가 아니다.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예술가를 지원하는 일은 그들의 창작활동을 원활하게 할 뿐 아니라 뛰어난 작품을 생산하게 하는 행위다. 그리고 그 뛰어난 작품이 지닌 예술성이 많은 사람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의기를 함양하게 한다. 예술 지원자가 곧 예술의 수혜자가 되는 셈이다. 예술적 감동의 수혜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지고, 우리 사회는 더욱 밝고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 될뿐더러 이러한 관심과 후원을 통해, 그야말로 상생을 통한 ‘문화복지국가’로 자리매김하는 기반이 만들어지지 않을까-동아일보 2010.11.2
http://news.donga.com/3/all/20101102/32286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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