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57)다시 리얼리즘에 대해 - 아시아 리얼리름 전을 보고

오광수

오광수 미술칼럼(57)
우리에게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 리얼리즘 또는 리얼리티라고 할 때는 실감이 들지만 사실주의 또는 사실성이라고 할 때는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아 리얼리즘>전(7.27-10.10)은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데 그것을 우리말로 <아시아사실주의>라고 붙였다면 얼마나 어색하게 들렸을까. 아무래도 리얼리즘의 연원 또는 내용과 개념이 완곡하게 번안되면서 일어난 감각의 문제가 아닐까. 주지하다시피 리얼리즘이란 19세기 프랑스화가 쿠르베에 의해 명명되고 사용되었다. 그가 동명의 개인전을 가졌을 때 사정을 감안하면 리얼리즘이란 당대 현실 또는 당대적 진실이라고 번역되었어야 옳다.
우리말로 굳이 번안한다면 현실주의쯤이 아닐까. 당대적 진실이 소거된 사실주의란 명칭은 엄청난 오해를 낳기 쉽다. 대상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대상의 객관적 묘출이 사전적의미의 사실주의다. 이속엔 당대적 현실을 포함할만한 내연의 깊이가 전혀 없다. 그래서 리얼리즘이란 말은 부담 없이 사용되어도 사실주의란 말은 선뜻 사용되지 않는다. 개념상 전혀 다른 코드다. 리얼리즘이란 분명 시대적 산물로서의 조형이념에 포함 되지만 사실주의라고 했을 때는 통념상 자연주의 풍의 보편적 태도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물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일체의 방법이 사실주의가 되고 이는 어느 한 시대의 조형이념이기 보다는 전시대에 걸친 보편적인 묘사의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아 리얼리즘이라고 했을 때는 어쩌면 보편적 묘사의 태도로서 사실주의와 시대적 미의식으로서의 특수한 이념을 내장한 현실주의란 두 개의 측면을 포함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편성으로서의 작화의 태도는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매체의 수용이 전제된다는 측면, 당대적 현실로서의 미의식이 여기에 첨가된다는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서양화로서의 수용과 한 시대 조형이념으로서의 수용이 겹치게 된다는 것이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미술은 전통적인 방법의 매체와 19세기 이후 서세동점에 의한 서양식 방법의 혼류가 특수한 사정을 만들고 있음을 감안해서 하는 이야기다.






대체로 아시아지역에서 수용한 리얼리즘은 각국의 전통과 당대적 상황에 따라 그 차이가 들어나고 있음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제국의 식민지경험을 가진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에서의 서양화 수용의 감각적 격차가 큰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서도 자국의 고유한 정서의 반영은 단순한 이식의 차원을 뛰어넘어 이미 서양화가 자국의 회화양식으로 안착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서양화이입의 역사가 오래인 일본은 그들 고유의 서양화란 지칭이 어색치 않으며, 이보다는 늦긴 했지만 한국 역시 동남아 다른 국가와 비교되는 독자한 방법의 모색이 두드러짐을 발견한다. 특히 이인성, 이쾌대 등을 통한 서정적 리얼리즘의 격조는 단연 압권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지역의 역사와 상황이 다르면서도 비교적 암울한 식민지 체험과 근대화로의 숨가쁜 시기를 겪은 공통성을 지닌 아시아지역의 리얼리즘은 그러한 특수한 시대 상황을 반영하는 조형체계를 통해 고유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구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념으로서의 리얼리즘이 극명하게 들어난다고는 볼 수 없다.
예컨대 식민지체험, 전쟁, 부조리한 근대화역정 등 엄청난 갈등과 굴곡을 지니면서도 이에 대한 조형으로서의 구현, 조형이념으로서의 수용과 해석의 치열성이 현저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비판적 리얼리즘으로서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도 제대로 정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리얼리즘이 시대적 미의식으로 여전히 현대에도 그 역할을 다 할 것이란 잠재성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얼리즘이란 특수한 이념적 성향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를 비교하는 계기로서는 이 전시가 커다란 의미를 띤다. 지금까지 극동3국(한국, 중국, 일본)의 교류는 비교적 활발한 편이었으나 그 외 동남아지역의 여러 국가와는 교류다운 교류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기회를 통해 서구의 근대적양식이 어떻게 소화되고 육화되고 있는가를 살피는 것은 동시에 우리의 근대화과정, 그리고 근대적 양식으로서의 리얼리즘이 어떻게 전개되고 정착되고 있는가를 고찰하는 더없이 중요한 기회라 생각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