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평면에서 표면에로- 김창열 물방울, 30년의 역정-

오광수

1. 한국의 현대미술은 5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해서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획지워진다. 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과 50년 6.25전쟁이 이어지면서 시작되는 50년대는 혼돈과 격정의 상황으로 채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해서 이전과 이후가 확연히 구획된다는 현대미술의 상황 역시 이 같은 시대의 변혁의 산물임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50년대 후반의 미술은 다분히 상황으로서의 미술이란 색채를 띠지 않을 수 없다. 우선, 50년대에 미술가로 등장한 세대가 겪었던 시대적 질곡은 그들이 곧 상황으로서의 미술에 익숙해질 수 있었던 조건이었다고 할수 있다. 당시에 출범했던 <현대미술가협회>의 몇 차례에 걸쳐 발표된 선언문을 보아도 이점이 명확하게 표상되고 있다. 즉 그린다는 것, 작업한다는 것이 다름 아닌 자신들의 생존의 한 형식이라는 점, 자신들이 처한 실존으로서의 확인이 왜 이토록 절실한가가 선언문 도처에 점철되어 있다. 지금은, 왜 당시 젊은 세대가 그토록 심각한 포즈를 취했을까 하고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풍요로운 시대에선 상대적으로 긴핍한 당시의 상황이 현실로서 쉽게 체감되지 않을 것임이 자명하다.

<현대미술가협회>가 토해낸 절규와 같은 선언에 못지않게 그들이 발표한 작품들이 기존의 가치체계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대에로의 도약을 꿈꾸는 가열찬 의식들로 점철되어 있다는 사실은 멤버의 한사람으로 참여한 김창열의 출발로서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가협회>멤버들에 의해 주도된 뜨거운 추상미술은 그것이 하나의 운동으로서의 집단적 의식이기에 앞서 개별의 실존적 물음으로서의 절실성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 <현대미술가협회>멤버들은 누구라 할 것도 없이 지금까지의 표상체계를 벗어난 무차별적이고 무계획한 제스쳐로 일관했다. 그것은 곧 그들의 몸부림의 잔흔들이었다. 이 격정적 상황은 한국미술을 변혁의 분수령으로 몰아간 것이 되었으며, 이후 전개되는 변혁의 맥락에 있어 하나의 단초를 만든 것이 되었다. 이 운동은 아직도 논란의 여운을 남기고 있지만 최초의 변혁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수 없을 것이다. 김창열은 이 운동이 그 역할을 다해갈 무렵인 60년대 중반 홀연히 미국으로 떠남으로써 자신을 개별화할 수 있었다. 사실, 많은 이시대의 작가들이 집단적 의식속에 함몰된 채 사라져간 예가 적지 않다. 겨우 몇몇 작가들만이 이 집단의식에서 탈출하여 개별로서의 자신을 가다듬어갔다. 운동의 동료였던 박서보가 프랑스로, 정상화가 일본을 거쳐 프랑스로 건너가면서 집단적 의식속에서 개별로서의 자신을 회복해갈 수 있었다.
미국에서의 김창열의 작업과 활동은 상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다.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생활속에서 작가로서의 활동이 제대로 전개되지 못했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면서 비로소 작가로서의 안정된 자기방향을 모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방울이라는 형상이 파리에 정착하면서 출현했다는 사실에서도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방울이라는 분명한 형상화가 나오기까지는 일정의 과도적 상황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70년의 <제전>, 71년의<현상>이 이과도적 상황을 대변해 주는 작품들이다. 이보다 앞선 60년대 후반의 몇몇 작품들에서 확인되는 것은 어둡고 심각한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점획의 자국들이 점철되고 있다. <제전>과 <현상>에서도 무거운 기운은 그대로 맥락된다. <제전>은 겹친 사각과, 예리한 사각의 가장자리에 빚어져 나오는 점액질을 묘파한 것이다. 점액은 흘러내린다기보다 안으로부터 밀쳐나오는 형국을 띤다. <현상>에서도, 그리고 또 다른 <현상>에서도 바탕의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는 점액질을 보여준다. <야만>은 점액질이 전구의 모양으로 변형되면서 물방울의 출현을 암시해주고 있다. 물방울이 나오기까지 최소 3,4년의 잠재적인 진행이 있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2. 물방울이 연작으로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73,74년경이 아닌가 본다. 연작이란 하나의 주제의 맥락속에 놓여있는 작품군(群)을 말한다. 따라서 물방울은 하나의 화면으로 독립되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작품으로 연계되어 있다. 하나는 전체속의 하나이고 전체는 하나하나의 집결인 것이다. 물론, 하나하나의 화면은 개별로서의 다른 모습을 띤다. 물방울들이 화면 가운데 군집을 이루면서 떠오르는가 하면 화면의 가장 자리에로 밀려 떠오르기도 한다. 물방울은 커다란 화면위에 오로지 하나로서 오롯이 자리 잡는가 하면 수십, 수백개로 군집을 이루기도 한다. 이 같은 현상이 물방울의 같으면서도 다른 표정으로 떠오르게 한다. 대부분의 경우 물방울은 영롱한 모습으로 스스로의 존재성을 각인시키지만 때로는 바닥에 스며드는, 물방울로서의 생명을 다한 흔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물방울이 흘러내려 긴 자국을 남기면서 아래부분에 가서 가까스로 맺혀있는 경우도 있다. 이 작품들이 대부분 생지(raw canvas)위에 구현됨으로써 바탕과 이미지의 이원적 구조가 부단히 무화되고 물방울이 바탕에서 생성되는 느낌을 주고 있음이 독특한 화면인식으로 부각되고 있다. 말하자면, 물방울은 인위적으로 그려졌다기보다 자연적으로 태어났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후반기로 가면서 더욱 극명하게 화면을 표면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단서임에 다름 아니다.
두터운 안료의 물질감이 표현의 대상이 되었던 50,60년대의 작품들을 떠올려 보면, 표현을 극복함으로써 표면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60,70년대를 통해 등장하기 시작한 색면추상(color field abstraction)이나 쉬포르슐파스(support surface)의 방법과도 일정한 견인을 이루고 있다. 김창열은 물방울이란 독특한 매개를 통해 표면에 다가갈 수 있었다는 방법에 있어 신선함을 들어내고 있음이 주목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화면위에 나타나는 물방울이라는 실체에 대해 경이로움을 나타내지만 그가 실은 물방울이란 매개를 통해 표면을 투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부단히 간과하고 만다. 이잉(易英)이 “천편일률적인 물방울을 표현하는 과정은 고독한 자기와의 투쟁” 이라고 말했을 때 이 고독한 자기와의 투쟁은 실은 표면에로 다가가는 치열한 확인 작업에 다름아니라 할 수 있다.

일반인들에서 나타나는 경이로운 반응은 물방울이 더욱 물방울이 되는 실존의 무게에서 비롯된다. 현실의 물방울이 아니면서 물방울의 존재를 영원화시키는 일, 물방울의 기념성에서 비롯된다. 현실의 물방울은 나뭇잎에 매달려 있거나 흩뿌린 비로 인해 난간 어디쯤에 가까스로 남아있거나 차가운 유리컵의 표면에 맺혀 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 현실의 물방울에 대해 감탄해 마지않는 사람은 없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의 한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화면에 그려진 물방울에 대해선 왜 감탄을 자아내는 것일까. 실제의 물방울을 화면위에 실현시켜 놓았다면, 과연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질까. 그것이 그려지지 않았다면 아마도 아무런 호기심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니엘 아바디가 지적한 것처럼 “물방울이기 이전에 회화 그자체였기”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의 작품을 처음 대했을 때 반응은 그것이 실제의 물방울인지 그려진 물방울인지를 확인하려고 든다. 그것도 의도적이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상태로서 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슬쩍 화면에 손을 대보지만 물방울은 흘러내키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것이 그려진 가상의 물방울임을 확인하면서도 실체이기를 바라는 미련이 더욱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요인이 된다. 누구하나 그것이 눈속임이었다는 사실에 불쾌해하지도,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속았음에 대해 유쾌한 반응을 보인다. 73년인가 74년인가 물방울 전시가 인사동 모화랑에서 열렸을 때 나는 유심히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펴 본적이 있다. 누구도 자신이 속았다는데 대해 불쾌해하거나 아쉬움을 나타내기보다는 속았다는 사실에 대해 유쾌한 감응을 나타내었다. 거기 물방울이 영롱한 존재로서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아, 물방울은 거기 없으면서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구나 하고.

3. 7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 소개된 그의 물방울은 70년대와 80년대를 통한 여러 주요한 전시에 잇따라 초대되었다. 주지하다시피, 이 시기 한국현대미술은 단색파 또는 백색파로 불리우는 모노크롬회화가 중심적인 경향으로 풍미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김창열의 물방울 작품이, 그것이 내용으로 본다면 분명한 이미지의 것임에도 모노크롬의 개념속에 아무런 거부반응도 없이 같이 자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상하게도 이미지 중심의 초대전에는 별로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그렇다면 그것은 물방울이 이지미이면서도 실은 이미지가 아니란 사실을 은연중에 반영한 것이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미지로서 물방울이 아닌, 개념으로서 물방울일 때 물방울은 이미 물방울이 아니다. 존재로서의 자각을 스스로 탈락해버린 경지에 도달된 것이라 할까.
70년대 초부터 등장한 물방울은 시간으로 따지면 이미 30년에 육박한다. 30년 가까이 작가는 물방울만을 그려온 셈이다. 사실 그렇기 하지만 물방울은 시대에 따라 적지 않은 변모를 모색하고 있다. 일관속의 변화, 또는 변화의 역정속의 일관이라고 할까. 먼저, 물방울 모양의 다양성을 지적할 수 있다. 포도알 송이처럼 총총히 맺혀있는 형국인가하면, 한쪽에서 빛을 받아 비스듬히 진행되는 모양새를 띠기도 한다. 한쪽에서 가해진 빛은 한쪽으로 그림자를 지우게 하면서 속도감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미, 앞서 지적했듯이 흘러내리다가 어느 지점에 멈춘 것이 있는가하면, 생명을 다하고 바닥에 자자드는 형국을 보이기도 한다. 이에 못지않게 군집에 따른 화면형성이 구도의 다양성으로 등장한다. 몇 개의 물방울이 넓은 화면의 한가운데 자리잡는가하면, 가장자리로 몰려, 마치 흩뿌려진 빗방울처럼 맺혀 있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화면에 물방울이 아닌 첨가물이 그려지고 있음이 현저한 변화의 시도이다. 문자의 등장이다. 문자의 등장을 암시화하는 작품으로 75년 <휘가로> 지상에 물방울을 그린 것이 있다. 비록 신문지상이긴 하지만 캔버스란 화면이 아닌 물체위에 물방울을 그렸다는 점이 조만간 문자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 아닌가. 낙엽 또는 나무판자위에 그린 물방울도 화면이 아니란 점에선 같은 발상이지만 문자가 물방울과 대등한 관계로서 등장한 것은 75년 <휘가로> 지상이 처음이라 하겠다. 문자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로부터 5.6년쯤 지난 시점이 아닌가 본다. 문자는 단순한 표의문자의 어느 한 획만을 등장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자의 상형문자로 채워진다. 그것도 처음은 천자문이었다. 상형문자란 말그대로 상형성을 함축한 문자다. 글자로서 표상되지만 이미 상형을 내용으로 한 것이다. 더욱이 천자문은 우주만상의 질서를 간결하게 표상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대엔 문자를 익히는 첫 단계가 천자문을 독파하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문자세대의 사람들에겐 대단히 익숙한 내용이자 최초의 교과서인셈이다. 작가가 왜 하필이면 천자문을 바탕의 글자로 선택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작가가 한국인이었고 나아가 동양인이었기에 극히 자연스런 발현이었을 것이다. 문자세대의 사람들은 문자를 통해 자연과 만났고, 문자를 통해 우주의 질서를 터득해갔다. 문자는 우주로 향해 나가는 통로였다.

작가가 표상하는 문자는 한자 한자 또박또박 쓰여진 것이었다. 정확한 인쇄체로 구현되어졌다. 문자자체의 예술성을 추구하려는 서예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문자가 만드는 획의 결구(結構), 그 결구로 이룩되는 상형성에만 집중된 것이었다. 때론 색채가 가미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먹색에 가까운 것이다. 물방울만 들어났던 화면에 문자가 쓰여지고 그 위로 물방울이 들어남으로써 화면은 보다 복잡한 구성체계를 띤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글자가 쓰여지고 그 위에 물방울이 놓인 형국이니까 글자라고 하는 기억의 장치가 물방울이라는 곧 사라져버릴 형상과의 미묘한 만남이라는 상황을 연출해준 것이 되었다고 할수 있다. 문자가 지니고 있는 모뉴멘타리티가 존재하지만 조만간 사라져버릴 안타까운 존재로서의 현실의 순간성이 하나의 공간속에 자리함으로써 극적 상황을 연출한다고 할까. 확실히 화면은 단순히 물방울만 있던 것과는 다른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음을 간과할수 없게 한다.

4. 화면에 문자가 도입되면서 화면은 글씨가 놓이는 공간과 물방울이 놓이는 공간이란 이중의 차원이 형성되는 셈이다. 이 두공간은 서로 겹치기도 하지만 또한 따로 따로 존재하기도 한다. 쓰여진 문자가 만드는 평면이 현실에 부유하는 물방울을 가로지르면서 물방울이 놓이는 표면으로 작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문자가 쓰여지는 공간은 평면인데 평면위에 물방울이 맺힘으로서 그것은 표면으로 탈바꿈된다.
오랜시간을 통해 물방울 하나하나를 그려나갔던 고통스런 역점은 다름아닌 표면에로의 치열한 확인이었는데 문자의 개입으로 해서 표면이 더욱 분명하게 검증된 것이 되었다. 회화가 어떤 사물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안료라는 물질로 뒤덮힌 평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의 발견이 20세기 초에야 이룩되었다. 화면속에 어떤 것이 그려졌던 종내는 한 폭의 회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의 발견이 이룩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필요했던 것인가. 20세기 후반은 어쩌면 회화는 평면이 아니라 표면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고통스런 또 하나의 역정이 아니었던가 싶다.

김창열은 물방울이란 독특한 매체를 통해 회화는 다른 아무것도 아닌, 즉 물방울이란 실체도 아닌 다만 회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의 발견과 회화는 또한 평면의 부단한 검증과 더불어 종내는 표면에 도달한 긴 여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의 발견에 자신을 전력투구해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표면은 무엇인가. 우주로 열린 자기만의 통로가 아닐까.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