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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오광수 미술칼럼 화랑사 40년

오광수

갤러리현대가 창설 40년을 맞았다. 70년에 개관했으니깐 올해로 40년을 기록한 셈이다. 우리미술에 있어 화랑의 역사는 이보다 더 올라가지만 현대적 성격의 화랑의 출현은 갤러리현대(처음 명칭은 현대화랑)로부터 잡아야 하지 않을까 본다. 갤러리 현대가 문을 열면서 잇따라 화랑들이 생겨나 인사동을 중심으로 한 화랑가가 형성되었다는 점과 작품을 상품으로 치환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졌다는 점, 그리고 화랑을 통한 기획 초대전이 열리었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화랑의 출현을 보게되었기 때문이다. 화랑의 출현은 우리미술의 발전에 커다란 동인이 되었다는 점을 먼저 꼽지 않을 수 없으며 미술붐을 이끌면서 미술계를 한층 풍요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갤러리현대가 문을 열면서 인사동, 관훈동을 중심으로 화랑들이 잇달아 생겨나 신종 직종으로서 화상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명동화랑, 한화랑, 동산방화랑, 선화랑, 진화랑, 예화랑, 조선화랑, 국제화랑등이 70년대를 통해 생겨나면서 화랑은 급속도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한때 인기있는 직종으로 선망을 모으기도 했으나 경영, 안목, 재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유독 부침이 심했던 영역이기도 했다. 경제적 불황이 닥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곳이 화랑가란 말도 있고 경제적 호황의 막차를 타는 곳이 화랑가란 자조적인 넋두리도 있다. 그만큼 화랑은 외풍을 많이 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시대의 미술을 이끌어나가는 중추는 미술관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미술관역사는 너무 일천하여 역할수행이 뒤쳐진 느낌이 없지 않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에 있어 우리나라 화랑들이 일정부문 미술관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갤러리현대의 70년대의 역할은 괄목할만한 것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백남준, 변관식, 장욱진, 박고석, 한묵, 도상봉, 김인승, 장우성, 김창열, 이성자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현대작가들이 갤러리현대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특히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 작고작가에 대한 회고전은 우리현대 미술사를 재정비하는 귀중한 기회가 되었으며, 천경자 같은 현역작가가 연예인 못지않은 대중적 스타로 크게 인기를 끌게됐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고 있다. 갤러리현대를 의식한 다른 화랑들의 분발도 화랑가 활성의 한 요인이 되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안목 있는 화상의 등장을 요망한다

현재 전국을 통해 1백개가 넘는 화랑들이 개점하고 있다. 신종직종으로서 화랑의 위상도 뚜렷해졌다. 많은 미술가들이 화랑을 통해 데뷔를 꿈꾸고 있고 많은 기성작가들이 초대에 목말라하고 있다. 그만큼 화랑은 미술가들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우리의 화랑들이 화랑으로서의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도 성찰해보아야 할 즈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성격형성이다. 색깔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고 해도 색깔이 없으면 화랑으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다.

근래에 들어오면서 화랑들의 기획력은 뛰어난 편이다. 그러나 제대로 전속제를 운영하고 있지 못한 점, 신진발굴에 소홀한 점은 안타깝다. 인기몰이에 집착하는 점, 돈만 되면 무엇이든 한다는 속물적 근성으로선 문화중개자로서의 화상의 역할에 어울리지 않는다. 잘 빼입은 파리의 스놉들이 으시되면서 나타날때면 화랑 한구석에서 일부러 잠을 청하는 볼라르와 같은 양식과 입체파를 발굴하고 그들의 예술을 지원했던 칸바일러와 같은 안목 있는 화상의 등장이 간절히 요망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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