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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쓰레기 더미 위에 예술의 꽃을!

오광수

지난 6월 19일 서울시립미술관이 주관한 난지도 제2스튜디오 개관에 참여하고 왔다. 쓰레기 처리장 시설이 젊은 미술가들의 창작공방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상전벽해란 옛말이 있듯이 이야말로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것만큼이나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에는 폐허화 된 옛 건물을 개조하여 미술관이나 창작공방으로 꾸미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과거엔 도축장 시설이 이제는 멋진 미술관으로 개관되고 있는가 하면 옛 역사 건물이나 심지어 종교적인 공간까지도 미술관이나 미술창작실로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은 새 건물을 지어 옮겼지만 용인의 이영미술관도 처음은 돼지우리를 미술관으로 꾸민 것이었다. 대단한 역발상이라고나 할까. 돼지우리와 미술관은 아무리 따져도 어떤 연관을 찾을 수 없다. 바로 이 같은 역발상이 난지도 위에 또 하나 실현된 것이다.

난지도는 오랫동안 서울시의 쓰레기를 버리는 장소였다. 쓰레기가 산을 이루었고 한동안 여기서 나는 악취가 이 일대는 물론이고 강 건너 여의도까지 번져 온다고 해서 야단법석을 한 적이 있다. 집집마다 창을 열어놓을 수 없어 여름철은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다. 그런대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매장된 가스 때문에 식물이 자라지 못할 것이란 예측을 깨고 식물이 자라면서 일대의 풍취가 바뀌기 시작했다. 자연의 힘이란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쓰레기 산이 새로운 시민의 공원으로 바뀌고 쓸모가 없어진 처리장 시설이 이제는 창작을 위한 공간으로 개조된 것이다. 몇 해 전에 제1스튜디오가 문을 열었고 이를 이어 올해는 제2스튜디오가 개관한 것이다.
창작공방은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경기 광주에 있는 영은미술관이 스튜디오를 개설하면서 여기저기서 공방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2002년엔 국립현대미술관이 창동에 스튜디오를 개설했으며 뒤이어 2003년엔 고양에 제2스튜디오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사설미술관과 화랑에서도 공방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꽤 많은 수가 확보되었다. 이제는 많은 작가들이 혜택을 보게 되었다. 외국에 나가 이 같은 시설들을 둘러볼 때마다 언제 우리도 저런 시설을 확보할 수 있을까 했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내국의 미술가 들 만이 아니라 외국의 미술가들에게도 이용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어 앞으로 이들 스튜디오는 국제 교류의 좋은 매개처가 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작가들의 해외 진출의 방법의 모색도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단순한 작업 공방의 개념을 넓혀 스튜디오 개방 프로그램을 통해 화상이나 미술관 관계의 인사 및 비평가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직접 공방에 와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기회를 원활히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기능이 폐기된 시설을 새로운 창작의 공간으로
작업장을 둘러보면서 참으로 혜택 받은 세대로구나 하는 감회가 앞섰다. 5, 60년대만 하더라도 화실이 있는 미술가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더더구나 젊은 작가들이 화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박수근 화집>에 나오는 사진 가운데 마루에 앉아 있는 화가의 뒷면에 그림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이 있다. 마루가 화실이기도 하고 수장고이기도 한 셈이다. 이중섭은 노동판에서도 식당에서도 다방에서도 종이를 펴놓고 그렸다고 한다. 생활할 수 있는 공간도 제대로 없는데 화실이란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남긴 작품이 어떤가. 한 점에 수억씩 하는 그림들이 이런 구차한 환경 속에서 창작된 것이다. 옛날에 비교해 오늘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때는 그때의 조건이 있고 오늘은 오늘의 조건이 있는 것이다. 다만 현재가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 시대란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환경이 풍요로워졌다면 창작도 풍요로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미술가에게 화실은 최소한의 구비조건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최소한 총은 들고 나가듯이 말이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창작공방이 하나 둘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 미술의 내일을 위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능이 폐기된 시설물들을 창작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문화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쓰레기장 위에 예술의 공간이 태어났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적지 않다.

원컨대 쓰레기 더미 위에 찬란한 예술의 꽃을 피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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