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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근원선생을 생각한다

오광수

근원 김용준선생이 타계한지 올해 40주기가 된다. <근원 김용준전집>을 낸 바 있는 열화당에선 새로 발굴된 산문과 주로 남한에서의 활동 시기에 제작된 그림과 장정, 삽화를 엮은 <근원 전집 이후의 근원>을 출판하면서 문인화와 장정을 중심으로 한 작은 전시를 꾸몄다. 같은 시기 밀알미술관에선 <특별한 시대의 화가와 그림들>이란 명제 하에 북한의 일부 화가들 작품전이 기획되었는데 근원 김용준선생의 작품 3점이 소개되었다.

50년 6∙25동란이 일어나던 해에 월북한 근원은 20년대에서 50년 초까지 남한에서의 활동과 50년 이후 67년 작고시까지 북쪽에서의 활동으로 이분된다. 남에서의 활동사항은 아직도 몇몇 지인들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전집 출간으로 인해 그 전모를 헤아릴 수 있으나 북에서의 활동 내역은 단편적인 기록에 의존될 뿐으로 그 곳에서의 근원의 역할과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는 소상히 알려져 있지 못한 편이다. 미술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한 경력과 고구려 고분 벽화의 연구 등 우리 고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 점으로 미루어 미술 교육이나 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임을 짐작할 뿐이다. 근원을 다시 생각하는 것은 남북 분단의 상황 속에서 회생 되어간한 지식인의 비극적 삶의 역정을 상고해보기 위해서 만이 아니다. 적어도 남쪽에서 남긴 그의 논객으로서, 미술교육자로서, 나아가 한 뛰어난 의식의 작가로서의 활동과 업적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그가 미친 영향의 진폭을 새삼 가늠하기 위해서이다.
근원은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나와 한 동안 양화가로서 활동하다가 30년대 후반 동양화로 전향하였다. 이 점에 있어선 서양화 1호랄 수 있는 고희동과 비슷한 길을 걸은 셈이다. 그가 다룬 동양화란 문인사대부에 의해 진작된 문인화였으며 그림뿐 아니라 우리 고전에 대한 연구를 겸했다. 서양화를 수업한 근원의 동양화로의 전향은 우리 것에 대한 애착과 탐구라는 의식의 발로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와 같은 의식의 발로는 해방 후 왜색의 탈피와 민족 미술건설이라는 시대적 사명을 실현하는데 적응되었으며 서울대 미술학부 창설과 교육 커리큐럼의 작성은 전적으로 그에 힘입은 것이라고 제자 서세옥은 증언하고 있다. 실로 오늘날의 서울대 동양화와 그 전통은 근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원은 작가일 뿐 아니라 논객이자 미술사가로의 활동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겨놓았다. 또한 수필문학에서도 일가를 이룬 바였다. <근원수필>은 수필문학의 백미로서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문장>을 비롯한 여러 잡지와 시집 및 소설집의 장정과 삽도는 그의 격조 높은 서권기가 감도는 것으로 이 방면의 고전으로 높이 평가 되어지고 있는 터이다.





밀알미술관의 <특별한 시대의 화가와 그림들>에 나온 <홍명희선생과 김용준>은 벽초에게 세배를 하고 있는 김용준 자신의 모습을 담은 것으로 내용에 있어서의 희귀성과 더불어 스승과 제자의 애틋한 관계가 흥미롭게 구현되어 있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제 간의 돈독한 신뢰와 정회는 오늘과 같은 살벌한 세대에 새삼스럽게 가슴 뭉클하게 한다.
근원의 40주기를 맞아 두 곳에서의 전시가 그나마 그를 다시 기억하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업적으로 미루어 그에 대한 평가 작업이 너무 소홀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Homage to Keun-wonn
Kim, Yong Joon(pen name: Keun-won) is one of the most talented artist-writers and art historians who were active in South Korea between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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