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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봄과 꽃그림

오광수

봄이 오니까 꽃이 피는 것인가, 꽃이 피니까 봄이 오는 것인가. 당연히 봄(계절)이 오니까 꽃이 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꽃이 없이는 봄을 상정할 수 없으니 꽃은 봄을 몰고 온다고도 할 수 있다. 봄이니까 꽃그림이 많아지는 것인가, 꽃그림이 많아서 봄인가. 아침마다 배달되는 팜플렛이 온통 꽃그림들로 가득 차 있을 뿐 아니라 인사동, 사간동 화랑가도 꽃그림들이 흘러넘친다. 그림도 계절을 타는 것인가. 왜 갑자기 꽃그림인가. 소재가 굳이 꽃이 아니라도 꽃에 비유되는 화사한 색채의 향연과 대담한 원색의 난무가 화랑가를 난타하고 있다.

우선 소재로서 꽃그림이 많아졌다는 것은 지금까지 주로 꽃을 다루어오던 작가들이 많았다는 것은 결코 아닌 것 같다. 꽃을 소재로 한 작품의 수요가 급증하니까 너도 나도 꽃그림에 매달린 결과임이 분명하다. 화랑의 종용도 있었을 것이다. 꽃이라야 잘 팔린다고 말이다.
70년대 화랑들이 문을 열던 무렵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 장미를 비롯한 정물적 소재였다. 작품을 사는 사람은 특별한 감상의 대상으로 작품을 선택했다기보다 생활공간을 꾸미기에 적절한 장식적 내용의 작품을 선호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차츰 안목이 고양 되면서 격조 있는 작품들이 수요 되기에 이르렀으며 지명도가 높은 추상 미술가들의 작품이 인기의 상층을 형성해준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 봄에 나타난 현상은 우연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꽃그림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흡사 70년대 화랑가 형성기의 초기 현상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이를 어떻게 보아야할지 잠시 당혹해진다.

꽃그림에 비견해서 색채도 밝고 경쾌한 것이 유독 많이 띄인다. 거기에다 강열한 원색의 분방한 표현의 추세가 놀라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변화의 징후임이 분명하다. 오랫동안 한국의 현대미술은 색채 불감증에라도 걸린 듯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의 구사가 빈약했었다. 우리의 오랜 생활 습성, 우리 고유의 정서가 지니는 보다 내밀한 것으로서의 금욕적 사유체계가 화려하고 기름진 색채의 구사를 기피해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이국의 압제와 동족상잔의 심각하고도 끔직한 세월을 살아온 이들에게 화려한 색채의 사용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특히 서양의 현대미술과 대비해 보았을 때 우리 그림이 너무 우울하고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미술은 시대의 거울이다. 시대의 증인으로서 미술이 이야기 된지도 오래다. 시대상황을 의식 또는 무의식적으로 반영함으로서 시대의 증인을 자처해온 것이다. 최근 들어 갑자기 밝고 건강한 색채의 기호가 높아가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내부가 그만큼 밝고 건강해졌다는 것인가. 특히 젊은 세대 층을 중심으로 대담한 원색의 구사와 놀라울 정도의 밝고 화사한 색채의 사용은 그들의 의식이 그만큼 자유스러워졌다는 또 다른 징후가 아닐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히 앞으로 내달리는 그들의 태도는 분명 새로운 풍속도로 비친다.
그러나, 다른 한편, 꽃으로 대변되는 화사하고 경쾌한 색채의 향연은 피부적이고 감각적이며 깊이가 없는 경박함의 또 다른 반영으로도 비친다. 치기만만하고 날나리 같은 세태의 자아도취가 싸구려 향수 냄새를 마구 뿌리는 것 같은 인상도 없지 않다. 거기다가 기성작가들이 이 향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양상은 목불인견이다.

꽃그림을 보면서 문득 카찬차키스의 <꿀벌이 꿀에 빠져 죽다>란 말이 떠오른다. 꽃이 좋다고 꽃에 파묻혀 종내는 꽃에 빠져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Soo-keun Park and

Does spring bloom flowers, or do flowers usher spring in? Do flower paintings abound because it is spring, or do they announce the arrival of spring? Flower paintings are spreading in galleries. The increasing number of flower paintings is due to the growing market demand rather than to the large number of flower painters. We find not a few bright colorful paintings of flowers these days.
Art has long been reflecting the time. It has close relationship with the taste of the time. The recent abundance in colorful flower paintings certainly reflects the cheerful free spirit of our society. It is a sort of amazing change considering that Korean modern paintings have been depressed and in gloomy colors. It proves our present art world is getting healthier and brighter.
Nevertheless we need to be cautious not to become frivolous, careless, or self-indulgent. As Nikos Kazantzakis warned that bees might be trapped in honey to death, there is no guarantee that we are quite safe from the lethal fragrance of too many flowers.

- Oh, Kwan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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