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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진솔한 자전적 예술세계 - 천경자 회고전

오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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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란 타이틀로 천경자 회고전이 열리었다. 페이지란 말이 들어간 것으로는 일찍이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가 있고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도 있다.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아프리카가 무대다. 코끼리 등에 웅크린 알몸의 여인이 고개를 파묻고 있고 배경으론 숲 속에 사자와 기린과 얼룩 말 등 야수들이 점경되고 멀리 원경으론 키리만자로의 눈 덮인 산이 보인다.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는 머리에 똬리 튼 꽃뱀을 인 여인의 모습이 서늘하게 다가온다. 여기 나오는 49니 22니 하는 숫자는 물을 나위도 없이 작가의 연령을 암시하는 것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슬픔 대신 아름다운 이란 수식이 대신해서 앞선 명제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이 숫자 역시 현재의 작가의 연치를 나타냄일 것이다. 이번 전시는 회고전 이라기보다는 미완성작, 미공개작 또는 본격적인 작품을 위한 수많은 스케치들을 일당에 모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가 수집한 오브제들과 일상용품들이 작품들과 곁들려 진열되고 있어 그 내용이나 형식이 여느 전시와는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 만이 지니고 있는, 좀처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전시장 이곳저곳에 늘려있는 작가의 손때 묻은 용품들을 보고 있으면 무엇 하나 감출 것 없다는, 자신의 전체를 들어내는 작가의 당당한 태도가 오히려 보는 이들을 당혹스럽게 한다고 할까 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굳이 문제 삼지 않더라도 작가의 그림과 글은 자전적 기술로 엮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폭로라고 해야 어울릴 내용으로 점철되고 있다. 당황하리만치 솔직한 자기 고백은 오리려 보는 이들에게 강한 충격과 더불어 깊은 감동을 안겨준 것이 되고 있다.

이 충격과 감동은 일찍이 52년에 발표한 <생태>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국제구락부에서의 개인전에 나온 이 작품은 천경자란 존재를 운명론적으로 결정지운 장본의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소재의 이채로움, 아니 이채로움이라기보다는 징그럽고 섬직한 수십 마리의 꽃뱀이 얽혀 있는 내용이다. 당시로서는 전시장에 내건다는 자체가 주저되었던 작품이었다. 여자가 뱀을 그렸다는 이야기는 바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정작 이 작품이 시사하는 것은 징그러운 뱀의 얽힘 뒷면에 도사린 작가의 운명에 대한 처절한 수용 같은 것이었지 않나 생각된다. 사실 천경자의 데뷔는 42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조부>가 입선되고 잇달아 다음 해인 43년 <노부>가 입선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중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 49년에 서울 신세계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진바 있어 이미 기성작가로서 대접을 받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생태>가 발표되면서 그의 위상은 독특한 것으로 재인식되었고 천경자의 존재를 더욱 극명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한 작가의 초기의 어떤 작품이 그 작가의 앞날을 예감해주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 터인데 천경자의 <생태> 역시 그러한 경우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으로 미발표였던 대표적인 것은 <목화밭에서> 일명 <어느 좋은 날>과 <단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오래 만에 보는 것으론 <모기장 안에 쫑쫑이> 외 몇 점이 있다. 미공개작 가운데는 아직 사인이 들어가 있지 않은 미완이 태반이고 본격적인 작품을 위한 밑그림과 현장에서의 스케치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지적한대로 작가가 사용하던 갖가지 소품과 수집품이 작품 사이사이에 진열되어 작가의 예술세계의 뒷자락을 펼치는 것 같아 몹시 인상적이다. 한 작가의 전모를 보인다는 것은 당연히 시대별 작품의 추이이겠으나 작가의 신체성이 강하게 베여있는 소도구나 수집품은 그 작가의 예술세계에 접근하는데 또 하나의 통로가 되어 질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신체성이 강한 물품들을 통해 작가의 내면에 스스럼없이 접근할 수가 있다. 천경자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그의 작품 못지 않게 그가 남기고 있는 많은 수필을 통해서 가능하듯이, 그의 주변에 있었던 자질구레한 소품들은 작품이나 글로 남기지 못한 생활의 뒷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의 예술적 행적을 우회적으로 더듬게 하는 더없는 자료이기에 충분하다.




2. 1960년대 풍요로운 색의 뉘앙스

작품은 그 작가란 말이 있다. 작품이 작가의 내면을 대신해준다는 뜻일 것이다.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되는 예술가일수록 작품은 그 작가와 강한 등식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천경자의 예술세계는 초기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확고한 맥락을 지니는데 그것이 다름 아닌 자기고백으로서의 자전적 요소라 할 수 있다. <목화밭에서>는 그의 젊은 시절의 자화상이다. <환><언젠가 그날><전설><여인들><두 사람> 등 50년대의 작품들은 특히 자전적 요소가 강한 편이다. <환><전설><여인들>에 나오는 여인들이 한결같이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는 것은 신부로서의 아름다운 시절을 반영하는 것이다. 감미로움 속에 아련한 슬픔이 묻어나오는 화면의 기운은 행복에의 약속과 불행의 예감이 뒤섞여 묘한 환시성을 들어내고 있다.

<목화밭에서>는 흰 윗도리를 입은 남정네가 목화밭에 누워 푸른 하늘을 향하고 있고 옆에는 아기에게 젖을 물린 여인이 화사한 봄날의 들녘을 배경으로 꿈에 젖어 있는 표정이다. 그지없이 밝고 화사한 분위기가 화면 전체를 감싸 돌고 있다. 같은 무렵에 그려진 <단장>과 같은 50년대의 작인 <모기장 안에 쫑쫑이>는 뚜렷한 묘선에 밝고 투명한 채색이 구사되고 있다. 대개 50년대의 작품들은 대상을 선명하게 묘출한 후에 화사한 색채를 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작품상의 현저한 변화는 60년대에 접어들면서다. 대상을 들어내는 묘선이 색채에 파묻히고 색층이 한결 두드러지고 있다. 색을 입히고 다시 호분을 덮고 이 위에 다시 색을 시술하기 때문에 색의 층이 두터워지면서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색의 뉘앙스가 더욱 풍요로워지고 있다. 결혼식 장면을 묘사한 <환>은 뽀얗게 피어오르는 환시적인 색채의 기운에 묻혀 꿈인지 생시인지를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여인들><놀이><비 개인 뒤><전설><사군도> 같은 60년대의 일련의 작품과 55년 대한미협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정>을 비교해보면 그 변화의 기미가 한결 선명히 들어나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해바라기 밭에 검은 고양이를 안은 젊은 여인을 모티프로 한 <정>은 인물의 묘선이나 배경과 여인의 주변에 늘려있는 해바라기가 뚜렷한 선묘로 구사되고 있다. 색채에 대한 환상적인 톤이 한결 강해져 가는 기미를 파악할 수 있으나 아직 분명한 윤곽선으로 대상이 선명이 묘파되고 있는 편이다. 여기에 비하면 불과 5,6년 뒤인 60년대의 작품들은 윤곽선이 색채에 묻혀버리고 인물들은 한결같이 구름처럼 피어오르는 형국이다. 이 시대의 작품들을 두고 일부 평자들이 그의 작품은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구획이 없어진 경지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천경자의 작품을 동양화니 서양화니 하는 장르상의 구분에 적용시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지 모른다. 동양화로 출발했지만 이미 동양화라는 장르 속에 속박할 수 있는 조건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그냥 회화라 부르자는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화풍의 변화는 예술가의 심경의 변화 또는 주변 환경의 변화가 주요 요인이 된다. 한 시대의 사조의 물결도 일정한 자극으로 작용할 수 있다. 69년 미국을 위시하여 유럽, 남태평양 일대의 여행은 그의 예술에 하나의 전기를 재촉한 구체적인 동기임에 충분하다. 이어 74년, 79년 80년 등 잇따른 여행은 전기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후 그의 작품은 여행에서 얻은 체험과 자신의 삶이 묘하게 얽혀들면서 독특한 영역을 이루어가기 때문이다. 70년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남태평양 풍물전>과 이후 현대화랑에서 열린 <아프리카 풍물전><인도, 중남미 풍물전>은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전시로 기록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 현대미술 사상 한 개인전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몰려온 예도 일찍이 없었다. 단순히 작품을 보러오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작가를 동시에 만나려는 사람들로 인해 화랑은 전시 기간 내내 만원 사태를 이루었다. 이국의 풍물은 한 작가의 여행의 체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으로 이어졌다.

천경자의 경우만이 아니라도 이국의 풍물은 예술가에 많은 영감원이 되는 예를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다. 외국의 예술가들이 자신의 경력에 여행기록을 중요시 하는 것도 거기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천경자가 남태평양에서 받은 충격은 그의 예술을 더욱 몽환적인 차원으로 이끌어 간 것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거기서 지상의 낙원을 보았고 그 낙원을 형상화하는 데 자신의 전신의 혼을 쏟았다. “9월의 남태평양 섬은 꽃향기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향기 속에서 골똘히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이비스커스, 레드진저(생강 꽃)가 남태평양의 강렬한 태양을 받아 선명한 붉은 꽃잎을 하늘거리고 꽃 중에도 여왕이라는 티파니의 감미로운 향기가 나를 자꾸 에덴의 세계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 같은 환상에 젖기도 했다. 그 언저리의 풍물은 비록 근대화되어 있긴 하지만 근대화된 옷차림의 토착민이 티파니를 머리에 꽂고 느릿느릿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역시 여기는 ‘지상의 에덴’이 아닌가 싶었다.”(고갱과 타히티에서)

3. 꽃과 천경자 예술의 상관 관계

이국의 풍물이 주는 이채로움은 강한 시각적 충일은 물론이려니와 정서의 풍요로움을 안겨줌으로써 그의 예술의 내면을 살찌우는 것이 되었다. 60년대 이전에 비해 시각의 진폭에 있어서나 색상의 깊이에 있어 풍요로움이 더해가는 것은 이에 말미암은 것이다. 60년대의 작품들이 화사한 색채의 톤에 의해 부단히 사물의 경계영역이 허물어지고 상호 침투하는 경지로 진행됨으로써 몽환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들어났다면 70년대 이후의 작품은 더욱 풍부한 색채의 동원에도 불구하고 색채의 상호 침투현상은 일어나지 않고 사물은 각기 뚜렷한 경계에 의해 자신을 들어내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에덴의 동산은 꿈속의 그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서의 낙원으로 등장하고 있다. ‘지상의 에덴’이란 표현은 높은 현실적 차원으로서의 낙원임을 지칭하는 것이다. 색채가 구체적인 대상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라 색채가 만드는 환상의 여울에 대상이 부단히 묻혀가던 60년대의 작풍은 이제 명확한 형태에 색채를 되돌려주는 형국으로 진행되고 있다. 화면을 누비던 색채의 자율성은 형태와 지시적인 내용성에 의해 통제되고 색채 자체의 선명도가 상대적으로 더욱 부가되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변화가 70년대 초반에 두드러지게 표상되고 있다. 이흥우는 “표현의 뚜렷한 견실성이 두드러지게 표면화한 것은 인물의 윤곽이나 코나 눈이 더욱 또렷해진 길례를 주제로 한 일련의 소품들에서다” 라고 그 변모의 양상을 길례언니 쯤에서 잡고 있다. 70년대 초 이 같은 변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는 <길례언니> 외에 <팬지>를 꼽을 수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추상적인 익명의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주변의 인물 또는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이다. 길례언니는 작가가 어렸을 때 직접 만났던 인물이다. “금세 울음이 터질 것만 같은 순결한 눈망울, 뾰로통한 처녀 특유의 표정이 매혹적이던 길례언니는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한 당시의 멋쟁이였다.'로 서술되는 길례언니는 작가의 어린 시절 어느 여름의 축제날에 노란 원피스 차림에 하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나타난, 소록도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는 처녀였다. 그 때 받았던 강렬한 인상이 먼 훗날 한 폭의 동경의 여인상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팬지>는 유리병에 팬지꽃이 가득히 꽂힌 구도에다 유리병엔 마리린 몬로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누가 보아도 단번에 알 수 있는 요염한 마리린 몬로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지고 있다. 길례언니나 팬지꽃이 가득히 꽂힌 꽃병의 마리린 몬로가 다 같이 선명한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들의 머리 부분을 장식하는 꽃들의 모양도 한결 뚜렷하게 묘출되고 있다.




여인들의 모습에서 두드러진 것은 꽃의 성찬이라 할 수 있는 꽃으로의 장식이다. 50년대, 60년대만 하더라도 여인의 머리 위엔 하얀 면사포가 씌어 있었다. 그것이 7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화사한 꽃다발을 인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 머리에 꽃이 장식되지 않는 경우는 그 주변에 꽃들이 늘려 있다. 뱀조차도 화사한 꽃뱀이다. 그러고 보면, 천경자의 화면에서 꽃을 제거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꽃이 없었더라도 천경자의 예술은 성립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미친다. 그의 화폭에서 꽃을 제거한다는 것은 그의 예술의 근거를 지운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꽃이란 무엇인가. 꽃이란 사물이기 전에 색채이다. 천경자가 꽃을 선택하고 꽃을 그렸다는 것은 색채를 선택하고 색채로 사물을 그렸다는 것을 말한다. 그에게 색채는 곧 그림이요 슬픔이요 아름다움에 지나지 않았다.

색채에 의한 명확한 형태의 묘출은 마치 사물에 내재한 결을 한 겹 한 겹 볏겨 내듯이 극명하게 이루어진다. <누가 울어 1>(88), <북해도 연안>(83), <마이애미로 가는 길>(89), <허밍웨이의 집>(89) 같은 작품에서 엿볼 수 있듯이 대상은 뒤엉켜 있는데 사물들은 하나하나 극명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표현은 90년대에 이르면 더 한층 굳어지는 인상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여인들의 코 잔등이 하얗게 강조되는 점이다. 90년대 오면서 전형화 되고 있는 이 특이한 표현은 82년 작인 <황금의 비>에 얼핏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90년대에 오면서는 희화적으로 강조되는 인상이다. 어떤 동기, 어떤 연유일까. 그가 쓴 옛 수필 속에 이런 대목이 보인다. “각시 화장을 맡은 경순네 아주머니는 각시 얼굴에 박가분을 바르고 콧등에 더 진하게 발라 코를 높게 뵈려 했다,” 혹시 코를 높게 보이려고 한 화장법이 먼 훗날 그의 화면 속의 인물들에 그대로 적용된 것일까. 무언가 분명한 연극적 장치가 가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현실을 연극으로 치환해 보려는 작가의 환상의 또 다른 변주일까. 그것은 회한일까, 달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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