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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금강선경을 통해 무릉도원을 찾다-소정예술이 주는 교훈

오광수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소정 변관식전(소정, 길에서 무릉도원을 보다)은 그가 작고하기 1년 전인 75년 동아일보 주최의 회고전이 열린 이후 본격적인 재조명전이다. 그 사이, 85년엔 동산방, 현대화랑이 공동으로 <청전과 소정>이, 99년 호암갤러리에서 <소정과 금강산>전이 열리긴 했으나 소정만의, 소정의 전체를 보여주는 기획으론 작고 후 처음이다. 올해가 소정 작고 30주년이 되는 해여서 한결 의미가 각별하다.

이번 회고전엔 우리들 눈에 익은 금강시리즈(그가 많이 그렸던 금강 절경은 진주담, 보덕굴, 삼선암, 단발령, 해금강, 구룡폭 등이다) 외에 일반에겐 처음 선보이는 작품도 몇 점 포함되어 있다. <낙동강 만추>(71년), <영도교>(48년)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예의 짙은 먹물로 그려나간 낙동강 강변의 풍경은 횡폭이면서도 깊은 거리감을 주고 있다. 영도다리가 들리는 순간을 포착한 <영도교>에선 그 특유의 입체적 시점이 선명하다. 소정 대부분의 작품이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실경을 바탕으로 한 변주의 형식이어서 리얼리티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변화가 풍부한 구도의 산천경계는 오랜 금강산 체험의 자연스런 변주여서 더욱 실감을 북돋운다. 그의 금강산 체험은 해방 전 30년대 후반 무렵이다. 해방이 되고 분단이 된 이후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작고 직전까지 금강산을 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줄기차게 구사했다. 금강산은 화보처럼 그의 가슴 속에, 그의 머릿속에 각인 되어졌다. 같은 금강산, 같은 장소임에도 주어진 화포의 조건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횡으로 긴 화폭이면 좌우로 길게 늘어진 경관으로, 종으로 긴 화폭이면 같은 경관인데도 상하로 길게 뽑아졌다. 예컨대, 삼선암은 횡축의 경우, 솟은 바위가 화폭에 맞게 낮아지고, 종축인 경우, 바위가 길게 날카롭게 치솟아 오른다. 마치 그림은 이렇게 그리는 거야 하듯이.
<이미 여러 차례 대비되었듯이 청전(이상범)이 변화가 없는 담담한 시점의 산수를 구현했다면, 소정은 변화가 무상한 산수를 시도했다. 한 사람은 변화가 많지 않은 야산의 고즈넉한 정취에 빠졌다면, 한 사람은 기암절벽과 계곡과 폭포로 이어지는 깊은 산곡의 기세에 몰입했다. 한 쪽은 한국 풍경의, 물 흐르듯 야트막하게 펼쳐지는 서남부 지역의 특징을 전형화하고 있다면, 한 쪽은 산세가 억센 동북부 지역의 특징을 전형화 하고 있다.





소정의 작품이 변화가 많다는 것은 금강산 체험의 자연스런 작품화에 힘입고 있지만 또한 시각의 다시점에서 일어나는 입체적인 차원에 기인된다고 할 수 있다. 한 화면 속에 수평시, 앙각시, 부감시가 종횡으로 겹쳐지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보이는 대상과 보는 주체의 입장이 아닌 스스로 존재하는 대상의 상호관계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경관 속에 있는 사람은 경관을 바라보고 있지만 동시에 경관은 보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풍경은 쏟아질 것 같고 물은 거꾸로 치솟아 오르는 것만 같다. 자유로운 시점의 이동이 만드는 다이내믹한 구도의 설정은 진행형으로의 긴박감을 안겨준다. 풍경 속에 점경되는, 팔을 휘졌고 가고 있는 노인네의 희화적 표정 역시 화면의 동감을 유도한다.

두루마기 펄럭이며 지팡이 내 두르면서 뒤뚱이고 가는 노인네의 모습은 불콰한(술로 인해 얼굴이 붉게 피어오르는) 모습으로 인사동을 누비던 소정옹의 모습을 빼 닮았다. 아는 화랑이나 표구점에 들려 술 먹게 5백 원 내놓으라고 떼를 쓰던 소정옹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진다. 평생 금강의 선경 속에서 무릉을 찾아 해매였던 소정의 모습은 이제 화폭에 기념비적인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금강을 통해 무릉도원을 찾았던 화가의 외길이 아스라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부디 금강선경을 통해 무릉도원을 찾으시오” 평생 그가 그린 금강이 단순한 실경으로서 금강이 아니라 꿈에 그리던 유토피아인 것을 우리들에게 다시 일깨워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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