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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신화를 찾아 / 김영주 재조명전에 부쳐 -

오광수

현대의 신화를 찾아

김영주 재조명전에 부쳐 -

 

인간의 구체적인 형상이 드러나던, 얼굴모양이 간헐적으로 명멸하던, 또는 구체적인 형상을 대신해서 기호와 글자들로 채워지고 있든 관계없이 김영주의 주제는50년대 중반에서부터 90년대의 만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일관되어왔고 인간의 상황으로서 <인간들의 계절> <현대의 신화><인간의 조건> <검은 태양> <신화시대> 와 같은 명제로 채워졌다.하나의 주제와 그 주제를 에워싼 상황과 조건이 일관되게 그의 화면을 채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에 있어 김영주의 작가로서의 위상은 우리미술에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생애를 두고 하나의 주제를 끈덕지게 추구해온 예술가도 많지 않다. 물론 풍경이나 정물과 같은 소재를 일관되게 다루어온 화가들은 얼마든지 있다.그러나 김영주가 추구해온 주제는 단순한 소재의 영역이 아니라 의식으로서의 주제이다.주제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도 결코 없지 않다.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시대에 따라 표현의 변화와 의식의 굴절을 보여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상황과 대비해보면 김영주의 일관된 주제에의 탐닉은 확실히 예외적이라 말할 수 있으며 어쩌면 그것은 때로 고지식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의 화면이 천편일률적인 표현의 맥락 속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주제의식의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시대에 따라 그 나름의 표현의 다양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살아온 시대, 그가 처한 상황이 결코 일관된 맥락 속에 진행되어온 것은 아니다. 그가 살아온 시대란 우리 모두가 겪은 고통스러운 것이었으며 때로는 극한상황을 뚫고 온 것이었다.어찌 작품상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단지 그의 관심은 주제에 대한 치열한 추구에 일관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 뿐이다.

 

초기에 해당하는 50년대나 만년에 해당하는90년대의 작품의 성향이 같은 것일 수는 없으나 인간과 그를 둘러싼  조건은 일관되게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피규라티브한50년대, 60년대에 비하면 80년대 이후 만년은 그것이 더욱 자유분방한 그래피티의 형식으로 등장한 차이를 보이지만 여전히 화면 속에는 짙은 인간적 체취가 농후하게 들어난다.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의 일부 작품 가운데는 기하학적인 반복 패턴의 구성도 보이지만 어느듯 인간의 상황 속의 한 조건으로  변주되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대체로 전반과 후반으로 크게 구획해본다면 전반이 보다 무거운 주제의식이 지배되는 반면 후반은 밝고 경쾌한 표현의 물결이 화면에 흘러넘치는 형국이다. 전반이 시대를 향한 부조리한 인간 조건에 강하게 대응된 것이라면 후반은 보다 자전적인 자신의 생활 속으로 되돌아온 관조의 세계가 지배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대에 대한 울분, 인간조건의 부조리함에 대한 저항의 제스쳐가 전반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로 표상된 것이 전반으로 본다면 자신으로 되돌아온 자신을 성찰하는 명상의 세게가 자신을 해방하는 몸짓으로 표상된 것이 후반의 경향이라고 하겠다. 

 

인간을 주제로 일관된 세계를 지향했다는 것은 그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예술을 이해하는 일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의 예술행위 자체가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었음을 밝히고 있다.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인간이란 사람과 사람의 사이를 가리키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인간의 관계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그 관계가 이루는 상황을 추구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가 인간을 다룬다고 했을 때 인간은 단순한 하나의 단위로서의 인간의 형태도 인간의 자화상도 아닌 실로 인간이 처한 상황과 그 역사를 말하는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보다 더 무거운 주제가 어디 있겠는가.그가 쓴 글 가운데는 시대에 직면한 자신의 존재, 시대를 정직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고뇌에 찬 한 예술가의 모습이 아로새겨진다. 

“시대성에의 어긋남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시대에 대한 깊은 책임감이나 고통스러운 증언없이 예술을 조작하는 행동이다. 좌절의 응어리를 삼겨야하는 진통의 방향에서 탈출하여 전통의 옷을, 외부세계의 옷을 여기저기서 빌어입고 우리들 내부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행진하는 인간집단의 모습을 본다”

또다른 글 속에는 이런 대목도 발견된다.

“살아있는 오늘의 예술에 보다 더 역사의 뜻에 두어야”

오늘의 예술에 급급함으로써 역사의식을 잃어버리는 사태에 대한 경고이다. 그의 글은 한결같이 비판정신의 토로의 형식으로 일관되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김영주는 작가로서 뿐아니라 평론가로서도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50년대 초에서 6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는 기간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가 아니라 비평을 겸한 작가로서의 모습이다.그에게서 비평행위는 바로 그의 회화작품의 또다른 변형이라고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그의 회화가 인간을 추구했듯이 그의 비평도 인간상황과 밀접한 관계 위에서 이루어젔다. 글을 쓰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글을 썼다고할 정도로 글과 그림은 분화되지 않은 상태를 지향했다. 시대를 위해 글을 썼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항상 시대에 맞섰다. 그에게 시대의식이 없으면 글도 그림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글은 언제나 들떠있고 그림은 시대를 앞지르는 분방한 의식의 분출이었다.한 시대를 이끌었던 그의 뜨거운 정신은 이제 찾을 길 없고 시대와 예술의 관계를 끊임없이 물었던 그의 핏발선 눈동자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시대의 아픔을 외치고 예술의 시대적 사명이 무엇인가를 소리높이 구가하였던 그의 목소리는 이제 어디서고 만날 수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의 작품은 구체적인 인간상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기호의 체계로 번안된 것에서 극히 암시적인 선획에 의한 요약된  표현으로 등장되기도 한다.격정적인 브러쉬워크와 간단없이 명멸하는 기호들로 인해 화면은 더없이 격동적인 상황을 맞고 있기도 하다.기호들- 삼각형,사각형,원, 하트형 - 과 여기저기 무차별하게 나타나는 문자들, 숫자와 자신의 이름자로 범벅을 이루는 화면은 알 수 없는 세계로 떠나는 여행의 기대에 찬 호기심으로 채워진다. 때로 화면은 여러 개의 작은 면들로 분절되면서 다양한 색채의 구성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색채는 더욱 화사한 양상을 띤다.그러면서도 이 위를 뒤덮는 분방한 붓의 운동은 노도와 같은 억제되지 않는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신은 노하고 인간은 살아간다”는 아포리즘은 어쩌면 이같은 화면의 상황이 바로 인간세계의 상황임을 암시해주고 있는 것 같다. 인간사회에 대한 통절한 자의식이 흘러넘치는 색채의 자적 속에 끊임없이 묻히는가 하면 한편에선 생의 꿈을 노래하는 열락의 단면도 놓칠 수 없다. 하트와 웃는 얼굴과 경쾌한 춤의 동작은 만년에 이르면서 그가 꿈꾼 세계의 단면임이 분명한 것 같다. “크고 작은 여러 그림을 만지면서 나의 예술은 어디에 있는지 나는 모르고 있다. 내가 뚜렷이 말할 수 있는 것은 지치지않고 그것을 찾고 있다는 사실이다.만일 내가 찾는 그 무엇이 현세에 없다면 신화를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보겠다.” 란 대목에서 그가 진정 꿈꾸는 것은 무엇인지 어름풋이 알 것만 같다. 꽃도 그리고 춤도 그리며 낭만의 언덕 위에 서서 별이며 달이며 새를 그린다고 한 그의 만년은 어쩌면 그의 꿈의 실체가 무엇인지 손에 잡힐 것만 같다. 

 

김영주는50년대와90년대로 이어지는 시점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기록한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편이다.그의 후반의 분방한 색채와 표현의 구사는 후기 팝적인 세계로 독특한 한 영역을 이루었음에도 주류미술에 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어떤 아류에도 속하지 않았던, 그래서 가장 독자적인 자기길을 걸었던 그의 외로운 탐구의 정신은 이제금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를 재조명하자는 이유는 실로 독자적인 한 예술가의 위상을 제대로 점검함으로써 우리미술을 더욱 풍부하게 가꾸자는 의도임은 새삼 말할 나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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