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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고화의 향기

오광수

묵은 장은 깊은 맛이 있고 오랜 친구일수록 신뢰가 두텁듯이 옛그림도 깊고 은은한 맛과 볼수록 정겨움이 묻어난다. 지난 3월에 열린 동산방의 ‘조선후기 화조화’(3.12-3.31)전은 우리의 옛그림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꾸며진 것이다. 그동안 여기저기서 조선시대 산수화전은 심심치 않게 열리고 있는 터이고 또 대표적인 장르로서 산수화에 대한 인식도 비교적 높은 편이다. 여기에 비하면 화조화는 언제나 전체 속에 일부분으로서 다루어졌을 뿐 이렇게 독립된 영역으로 다루어진 적은 없었으며 (과문한 탓인지) 일반의 인식도 높은 편은 못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조선후기 화조화’전은 우리의 화조화의 진수를 맛보게 한 시의적절한 기획이 아니었나 본다. 17세기에서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회화의 맥이 진경산수로 인한 사실주의가 팽배했던 시대로 특징 지워진다면 화조화 역시 이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번에 나온 작품들을 보면 전범으로서의 화보취보다 사생미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28명의 화가가 그린 80점이 진열된 가운데 특히 흥미를 끄는 것은 화조만을 집중적으로 그린 (예컨대 김수철, 남계우 등) 몇몇을 제외하면 한 시대 대표적인 화가들(정선, 심사정, 김홍도, 이인문, 김득신, 신윤복 등)이 화조화 영역에도 뛰어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쩌면 이런 측면에서도 조선후기의 사생정신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정선의 <백로도첩>은 이색적인 작품으로 (쪽물들인 종이에 수묵담채로 그린) 전시의 백미를 이룬다. 정선하면 산수만 생각해왔지 이처럼 뛰어난 화조가 있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새를 관찰하는 예리한 여러 시점, 간결하면서도 요체를 걷잡는 솜씨는 과연 일급의 화가로서 손색이 없다. 
 




현대와 고전의 균형
그러고 보면 전시 작품 가운데 화첩의 형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화첩의 형식이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 화첩이 주는 보는 재미와 소장의 편의성에 새삼 주목해보게 된다. 그림은 반드시 벽에 거는 것만이 아니라 언제나 끄집어내서 펼쳐보는 재미가 있다는 점을 되살렸으면 한다. 보는 것만이 아니라 읽는 재미도 곁들인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현대작가들에 의한 본격적인 화첩전시도 시도해보면 어떨까. 
화첩은 일종의 스케치북으로서도 기능을 했음이 드러난다. 화첩그림에 화조화가 많다는 것도 현장 사생을 통해 구현할 수 있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화면은 작지만 그러기에 밀도있는 구도와 미세한 자연의 심처까지 파고드는 예리함이 돋보인다. 작은 화면이지만 계절의 정취가 있고 맑은 시정이 담기고 자연 속의 미세한 정황이 살아있는 생동감을 주는 것은 오히려 큰 화면에선 기대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어떻게 옛 그림들이 오늘의 그림보다 더욱 살아있는 현장감을 더해주는지 생각할수록 놀랍다. 지나친 비유인지 모르나 오늘 우리 주변에 늘려있는 꽃 그림들이 한결같이 인위적으로 만든 조화란 인상을 주는데 비해 옛그림의 화조는 살아 향기를 더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 기회에 생각나는 것 하나 곁들이고 싶다. 요즘 여러 형식의 아트페어가 열리고 있음을 목격하는데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 수 있는지. 단골그림이 꽃그림으로 장식되고 난 이후의 현상이지 않은가 본다. 균형 감각이 완전히 깨어져버렸다. 가령 우리가 가끔 해외의 아트페어 특히 유럽지역의 아트페어를 가보면 20세기 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의 진폭이 그런대로 균형감 있게 짜여 있음을 엿보게 된다. 현대의 인기작가 만 있는 것이 아니고 20세기 초의 피카소, 마티스 등 입체파에서 말레비치, 칸딘스키 등 추상미술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골고루 진열되어 있는 반면 우리의 경우는 어느 일면으로 쏠리는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청전, 소정은 찾을 수 없고 현대의 고전으로 취급되는 작가들의 면모도 찾을 길 없다. 
어느 시대에나 시대적 기호와 유행현상은 있기 마련이고 여기에 쏠리는 것 역시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우리미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구상은 어느 한편에선 꾸준히 실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유행을 쫓다가 정작 자신을 잃게 되는 어리석음은 이제금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조선후기 화조화’전을 보면서 다시금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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