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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수묵화는 다시 살아나는가

오광수

“오늘의 시공에서 수묵이 처한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 못하다”고 한 것은 김상철이 조순호의 개인전 카탈로그에 쓴 말이다. 낙관적이지 못하다기보다 처참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수묵이란 말조차 언급한다는 것이 시대착오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작년 연말에서 올초에 걸쳐 수묵화전이 세 건이나 있었다는 것이 의외롭지 않을 수 없다. 세 사람의 중견작가들(오숙환, 조순호, 문봉선 )의 수묵전은 꺼져가는 수묵화에 기름을 부었다고 할까. 내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수묵뿐 아니라 한국화라는 영역의 작품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비관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고 보면 이 세 사람의 전시가 잇따라 열리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대표적인 중견작가들임에랴.
내가 왜 초두부터 심각한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우리 미술의 현실 특히 전통분야 미술의 한심한 현실을 이 기회에 되돌아보고 싶은 심정에서다. 꺼져가는 전통미술의 현실을 점검하고 이를 재생시킬 수는 없는가 하는 고충에서다. 무엇보다 이 분야의 작가들의 분투가 절실히 요망된다. 이에 결부된 교육 현장의 문제, 미술시장의 문제가 순차적으로 풀어나가는 지혜가 나와야 할 것이다.


오숙환 전시는 이중섭미술관상 수상기념으로 열렸다. 오숙환은 오랫동안 수묵의 매체를 다루어왔다. 그가 다루는 내용의 범주는 흔히 연상되는 산수풍경이 아니다. 자연을 모티브로 하면서도 일종의 내면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를 추구해왔다. 출렁이는 바다, 몰아치는 바람, 물결치는 대지, 아득한 별자리 등 거대한 자연의 현상이 간단없이 출몰하면서도 그것은 단순한 자연의 현상이기보다는 어떤 교감의 장으로서 전개된 것이었다. 특히 그의 먹빛은 꿈꾸는 듯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은은히 번지고 스며드는 맛과 먹과 여백이 만드는 적절한 대비는 수묵만이 구현할 수 있는 표현의 영역이다. 시공간을 함축하는 표현의 체계는 다른 어떤 매체에서도 볼 수 없는 그 특유의 세계라 할만하다.
조순호의 화면은 맛깔스럽다는 표현에 어울린다. 철철 넘치는 드리핑의 자동성에도 불구하고 화면은 더없이 담백하다. 모필과 먹이 구사할 수 있는 잠재성의 확대가 두드러진다. 특히 일상의 단편적인 메모는 한국화의 고식적인 내용성을 벗어나 상상의 자유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먹은 넘치고 붓질은 표표(飄飄)하다. “그의 수묵에서 전해지는 것은 오히려 절실하고 다감하다. 화면은 더욱 절제되고 함축되어 흑과 백의 강렬한 대비를 이루지만 오히려 침잠하는 침묵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란 김상철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문봉선, 소나무-독야청청, 2012, 화선지에 수묵, 120×245cm

‘독야청청’은 소나무를 말할 때 쓰는 절구이다. 소나무의 기운을 이보다 더 간결하게 구현할 수는 없으리라. 문봉선의 개인전 명제이다. 문봉선은 그동안 먹에 의한 사군자 그것도 화보에 의한 사군자가 아닌 신사군자라고 불리울 수 있는 사생에 의한 사군자를 꾸준히 구사해온 터이다. 이번 소나무전도 같은 맥락, 사군자 사생의 연장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실물의 소나무를 연상시키는 대폭의 화면에 실린 소나무는 일필의 대담한 묵조에 의해 더욱 현실감을 되살리고 있다. 현실의 소나무이면서 동시에 그려진 소나무란 두 개의 리얼리티가 강하게 표상된다. 세 사람의 작품세계는 다르다. 먹이란 공통된 매체를 사용하면서도 획연히 구분되는 독자성이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이들이 지닌 먹의 기운과 붓의 운용이 자아내는 깊이는 일종의 정신적 공감대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한 공감대가 꺼져가는 수묵화의, 나아가 한국화의 재생을 기대케 하는 불씨가 되고 있다. 수묵화는 다시 살아나는가 하는 질문은 이제금 우리들에게 절실한 화두로 이어지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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