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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방의걸, 고향으로 이끄는 힘

윤진섭

방의걸, 물결, 67.5×197cm


새벽에 일어나 묵은 책을 정리하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저 많은 책을 그냥 버릴 게 아니라 설치미술이라도 해 보자. 요즘은 넘쳐나는 게 책이라 도서관에 기증한대도 받기를 꺼린다지? 지금은 비물질이 물질을 지배하는 세상이다. 수십 권의 책이 손톱만 한 USB에 들어가는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쌓인 책을 하나하나 들춰보면서 마치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디지털 문명은 비물질화된 문명이다. 고향을 잃은 문명이다. 세상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걸 해결할 정도로 편리해지고 있지만, 마음은 그만큼 고향으로부터 멀어져 간다. 수천만 원의 송금을 손가락 하나로 해결하고, 실체 없는 풍경을 영상으로 감상한다.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엄마와 통화하면서 육친의 정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역시 실체 없는 비물질과 대화를 나눈 것에 불과하다. 엄마 특유의 냄새, 살의 느낌, 눈의 표정 등등 몸의 직접성이 주는 생생한 물질감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물질의 현존성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책을 들추다 한 작고 작가의 화집 뒤편에 실린 빛바랜 흑백사진들에 눈길이 멈춘다. 그것은 분명히 물질들로 구성돼 있다. 출판된 지 오래돼 빛바랜 종이 위에 찍힌 역시 빛바랜 사진들. 중절모자를 쓰고 친구들과 웃으며 찍은 사진을 보니 ‘1942년 9월 3일, 속리산 법주사에서’라고 씌여 있다. 냄새를 맡으니 약간 퀴퀴하기는 하지만 역시 물질의 내음이다. 만일 스마트폰으로 다운받은 똑같은 이미지에 코를 가까이 댄다면 과연 어떤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전자 유목민’이란 말도 있지만,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몸에 지니고 세계를 떠도는 현대판 대상들에게 사막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볼 때의 정취는 결여돼 있다. 경제적 이익은 때로 자연의 풍경이 주는 장엄함을 몰아낸다. 이 또한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벌어지는 비물질의 승리이다.

글을 끝내려는데 몇 년 전에 뉴스로 접한 사건이 뇌리를 스친다. 한 부부가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다 3개월된 영아를 방치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 그렇다면 이 또한 비물질이 압도한 사례가 아닌가?
윗글은 얼마 전에 얼책(facebook)에 쓴 디지털 기반의 문화현상에 대한 가벼운 단상이다. 나는 날이 갈수록 사회 곳곳에 깊숙이 번지고 있는 AI를 비롯하여 챗봇, NFT, 메타버스 등 디지털 기반의 미디어 확산을 바라보며 미술의 전통적 형식이 지닌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디지털 미디어가 비물질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회화나 조각과 같은 아날로그 매체는 철저히 물질에 의존한다. 실체가 있으니, 손으로 만져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회화보다 조각이 더 구체적이며 직접적이다. 물론 회화도 두께가 두꺼워 조각을 연상시키는 부조회화가 나온 지 이미 오래지만 평면 회화의 맛은 뭐니 뭐니 해도 눈으로 즐기는 시각의 여행이라야 제멋이다. 내가 그림이 지닌 이 시각 고유의 맛을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방의걸_생성의 결》전(2023.12.23-3.29)을 보면서였다.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과 교수를 역임한 방의걸 작가의 화업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 전시는 수묵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오가면서 ‘비’로 대변되는 청각의 시각화와 관련이 있다. 게다가 수많은 레이어들로 구성된 원근적 공간의 겹침을 한국화 특유의 선염법으로 표현, 아련한 정취를 높은 품격으로 드러낸다. 방의걸의 작품이 지닌 가장 큰 힘은 보는 자로 하여금 자연을 통해 고향을 환기한다는 점이다. 여기서의 고향이란 디지털 문명에 의해 점차 멀어지고 있는 인간의 근원, 즉 자연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 작가가 아주 세련된 추상 언어로 환기하는 일렁이는 파도로 대변되는 바다일 수도 있고, 쭉 뻗은 침엽수들이 수직으로 서 있는 숲의 풍경일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리면서 작가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일종의 정취이다. 그리고 그것은 추억과 관련된다. 가령 청각의 시각화는 작가가 어렸을 적에 들은, 비가 나뭇잎에 부딪힐 때 내던 소리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작가는 묻는다. 그 소리를 어떻게 하면 시각화해서 그림으로 전달할 것인가. 방의걸의 먹에 의한 빗금의 표현이 독자적인 미적 성과물로 주목되는 것은 바로 그의 작품이 이 정서의 전달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의걸의 수묵화는 맑으며 오랜 수련에서 오는 아취를 짙게 풍긴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고향으로 우리를 이끄는 그윽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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