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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공공적 윤리의식의 회복과 품격 있는 문화적 삶의 향유

윤진섭

포항공항 입구에 설치됐던 은빛 풍어, 포항시 제공
*상기 이미지는 본 글과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D시의 한 공립미술관이 주최한 회의에 참가한 후 서울발 KTX 객차에 몸을 실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변강쇠, 옹녀’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 화면을 바라보니, 남녀의 성기 모양을 과장되게 표현한 공공조형물의 모습이 스치듯이 지나갔다. 사연은 이렇다. 경남의 H군에서 변강쇠와 옹녀를 주제로 한 테마공원을 만들었는데 투입된 예산에 비해 성과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 방만한 예산의 낭비로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한 신문은 최근 몇 년간 전국의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개발한 테마공원과 거기에 놓인 공공조형물들 상당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신문은 사정이 그렇게 된 데에는 지자체의 성과 위주의 졸속행정이 주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었다. 

이 뉴스를 접하며 30년 전인 88올림픽 무렵의 기억이 얼핏 뇌리에 떠올랐다. 아마 행주대교가 가까운 한강변이었을 것이다. 버스에 몸을 싣고 김포국제공항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채만 한 크기의 흉물스러운 호랑이 배 한 척이 한강에 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것은 88올림픽의 상징물로 혈세를 들여 만든 조형물이었다. 당시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호돌이였으니, 아마도 그 연장선상에서 모르긴 해도 수억 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것이었으리라.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얼마 안 있어 그 흉물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여기서 개탄스러운 것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미적 안목이 저급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전의 호랑이나 30년 후인 오늘의 변강쇠와 옹녀, 그리고 전국을 여행하다 마주치게 되는 지자체의 각종 특산물인 송이, 사과, 밤, 배, 가지, 포도 등등 농산물을 확대한 거대한 상징 조형물들은 서로 등가적 관계를 갖는다. 미적 수준이나 발상, 그것들을 선정하는 방식, 집행하는 행정의 수준이 30년 전에서 별반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거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지자체 관계자들의 낮은 미적 안목과 저급한 윤리 의식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상당수의 지자체 단체장들은 미래의 후손을 위해 예술적 유산을 남기겠다는 의지보다는 차기 선거에서의 연임을 먼저 걱정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선거를 위해 사업의 가시적 성과가 중요하지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피 같은 혈세를 낭비하는 졸속행정이 이처럼 버젓이 행해질 수 있겠는가. 그 나물에 그 밥인, 중복된 성격의 특징 없는 지역축제들이 저토록 범람할 수 있겠는가. 외국인이 거의 찾지 않는 내국인만의 ‘국제’ 행사가 이름도 무색하게 일말의 반성도 없이 반복될 수 있겠는가. 

1차원적인 발상에 의한 단세포적인 지자체 사업의 경쟁적 확산은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위기적 징후이다. 이를 테마공원 및 공공조형물에 국한해 말하자면, 지역 특산물과 결부된 지역홍보와 관광 자원화, 이로 인한 주민들의 소득 증대라는 계획은 자칫 잘못하면 거꾸로 혈세의 낭비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소지가 크니 이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 주인의식과 철학이 없는 지역개발과 관광을 위한 마케팅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이에 대한 성찰도 요구된다. 아울러 시민단체를 비롯한 감시기구의 기능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하며, 행정에 대한 지방의회의 견제와 함께 감사원과 같은 상급 기관의 감사 기능이 더욱 확산돼야 할 것이다. 방치하기에는 그 폐해가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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