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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손끝의 창조

윤진섭

2013년 8월 12일 대안공간아마도 개관기념 퍼포먼스, 아마도 열차의 한 장면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 1892-1927)의 소설 『하동(河童)』에는 기이한 동물인 갓파(Kappa)의 이야기가 나온다. 머리 위에 타원형의 원반이 있으며,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따라 몸의 색이 변하는 흡사 거북이처럼 생긴 동물이다. 그런데 나는 이 동물과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90년대 초반, 경인미술관에서 조각가 강동철의 개인전이 열렸는데, 거기에 이 갓파를 닮은 동물의 조각상이 출품돼 있지 않은가? 눈을 의심한 나는 작가에게 이 동물의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갓파!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갓파라고요? 그랬더니 그는 마침 곁에 서 계신 자신의 아버지에게 사실 확인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작가의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이 동물은 자신의 고향인 하동의 섬진강에 출몰하곤 했다는 전설적인 동물이라는 것이었다. 물속으로 사라졌는가 하면 어느 틈에 다시 나타나 바위 위에 몸을 드러내곤 하는 기이한 동물. 소설 속에서 갓파가 작은 구멍을 통해 지하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인간계를 닮은 별세계가 펼쳐진다. 
1970년, 동화출판공사 간행의 세계문학전집 8권에 나오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소설을 번역한 김소운(金巢雲)의 해설에 의하면, 이 작가의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은 대단했는데, 그 범위가 한국의 전래동화에까지 미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경남 하동의 섬진강에 출몰했던 갓파의 전설을 그가 채집했을 개연성이 크지 않을까? 순간, 나의 상상력은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0년, 유럽문화예술학회에 발표한 나의 「현실 혹은 가상? 나의 페이스북 체험기」란 논문은 디지털 매체를 매개로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현대인의 문제를 다룬 글이다. 이 글에서 나는 예의 ‘갓파’를 언급하면서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아날로그’의 세계와 ‘가상’이라고 믿는 디지털의 세계를 왕복하는 현대인의 양태가 바로 이 ‘갓파’를 닮았다고 썼다. 누구나 하나씩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 이 가공할 통신 기기(器機)의 발달은 앞으로 다가올 사물 인터넷의 시대에 인간의 삶을 마냥 경이로운 것으로 바꿔놓게 될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보는 사람은 전체의 30%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엔 자는 사람을 빼고는 전부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그래서 나는 논문 속에서 이러한 문명적 배경을 상징하는 문구로 “새로운 창조는 손끝에서 나온다(New creation comes out of the fingertips).”라고 썼다. 저작(著作) 앱이 깔린 스마트폰을 만지는 대중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라고 한 백남준의 발언이 비디오 아트로 대표되는 아날로그 시대의 미학관을 반영한다면, ‘손끝의 창조’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선도할 인터넷 기반의 ‘SNS ART(Social Networking Service Art)’의 유비쿼터스 환경과 미학을 대변해 준다. 언젠가 백남준은 마르셀 뒤샹이 다 해 먹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없다고 애교 섞인 불평을 한 적이 있다. 비디오 아트와 홀로그램, 레이저로 이어진 그의 줄기찬 기술적 노력은 미술사에서 뒤샹이 가로막은 잘록한 호리병을 빠져나오기 위한 것이었다. 


대안공간아마도 개관 오픈 퍼포먼스 아마도 열차의 한 장면, 2013년 8월 12일 오후 7시경, 이태원 거리


이제 감자 뿌리처럼 복잡하게 엉킨 ‘리좀(Rhizome)’의 세계에서 개인적 서사(敍事)는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일자로 쭉 뻗은 선형적 시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근대인들이 럭비공처럼 순발력 있는 밀레니얼 세대의 의식구조를 이해하기란 난망하기 짝이 없다. 장차 인공지능(AI)이 인간 두뇌의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양자 간의 싸움은 불가피하게 될 전망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일상과 예술의 구분이 없었던 선사시대의 ‘것(Objet)’과 ‘짓(Performance)’에 주목해 보도록 하자. 그 신비한 원환적 회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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