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희는 서구 회화의 미술사적 성취를 메타적으로 되돌아보고 동시대 회화의 존재 방식과 그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품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현대 회화는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되어온 환원적 경향에 대하여 해체적으로 접근한 포스트 모더니즘을 통하여 구상적으로 발전해 왔다. 특히 동시대 회화는 형식과 내용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그 존재 방식 자체를 다시 되돌아보는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붉은방석, 2017, Oil on canvas, 130×97cm
임선희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붉은 방석(Red Cushion)>을 보면, 르네상스 시대의 일점 투시법이나 전통 회화의 사실적 재현을 벗어나기 위해 카메라로 대상을 촬영한 후 포토샵을 이용하여 원근감을 없애고 형태와 컬러만으로 구성된 평면으로 전위시킨다. 이후 ‘기억에 인지된 대상’을 ‘색(Color)’과 ‘형태(Form)’ 그리고 ‘붓질(Brush Stroke)’만으로 화면 위에 재구축함으로써 ‘회화에 대한 회화(Painting on painting)’의 관점으로 바라본 평면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크리시 카다시안(Krissy Kardashian)>을 보면 대상으로서의 주체와 배경으로서의 객체를 형태의 묘사나 원근법적 구분 없이 색과 붓질만으로 통합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시지각적 화면의 본질적 특성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임선희의 작품을 보면 모더니즘 회화의 새 지평을 연 세잔으로부터 이차원적 화면의 ‘평면성(Flatness)’을 보여주고자 했던 마티스의 영향을 볼 수 있다.
나아가 1980년대 등장한 회화의 위기론에 대응하여, 회화의 본질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접근한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 )나 ‘시점(Point of view)’과 ‘원근법(Perspective)’의 전용(Appropriation)을 통하여 자신의 회화적 어법을 구축해 온 호크니(David HOCKNEY, 1937- ) 등 서구 회화사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개념들을 다루어 온 작가들에 대한 참조적 경향을 엿볼 수 있다.
크리시 카다시안, 2017, Oil on canvas, 42×56cm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 동안 진행되어 왔던 임선희의 회화들은 전통적인 작품들을 비판없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회화사에 등장한 주요 조형양식과 기법을 직접 체득한 후 이를 작가만의 회화로 정립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작가는 추상과 구상을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내적 필연성을 통하여 회화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하며, 그 외형은 전통적인 회화의 틀을 취하지만 내용은 작가의 개인적 시각과 해석이 드러나는 붓질과 색채를 통하여 대상의 의미를 넘어서 화면 그 자체를 추구하는 그만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진행하고 있는 임선희의 회화들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어 근본적인 조형요소를 이용한 작업을 하거나 혹은 이의 다양한 조합을 통하여 ‘회화적 회화’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임선희는 ‘미디엄으로서의 회화’라는 관점으로 서구의 회화를 바라보고 이를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정립하고자 하며, 나아가 한국 동시대 회화의 지평에서 자신의 방법론이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지 그 가치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가로서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더 기대된다고 할 수 있다.
김종호 / 프라이빗 아트 컨설턴트, Art M&C 대표
jayjonghokim@gmail.com
- 임선희(1975- ) 이화여대 서양화과, 동대학원 판화전공 석사, 서양화과 박사. 2003 브레인 팩토리, 2013 조선갤러리, 2015 인천아트플랫폼, 2017 유아트스페이스 개인전 개최. 2012 토탈미술관·아르코미술관, 2014 문화역서울284, 2015 소마미술관, 2015 서울시립미술관 그룹전 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