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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민성홍 : 사건과 의미의 그물망에서 도약(跳躍)하기

김노암

최근 민성홍 작가의 활동은 돋보였다. 2018년 광주비엔날레, KIAF 특별전 등 주요전시에 빼놓지 않고 초대받았다. 2018년 아트스페이스휴에서도 초대전을 가졌다. 작품의 형식과 내용이 독특한 상징적 또는 신화적 사유를 촉발하는 설치작업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설치 작업들은 주로 세워지거나 매달린 오브제들과 복잡한 선과 칼라를 사용하는데, 우리의 삶과 사회가 단선적인 인과관계가 아닌 대단히 복잡하고 심오한 네트워크로 얽혀 있다는 인식을 준다.


민성홍, Known or Unknown, 2018, Ceramic, bead, wood, steel, motor, sound system, 128×50×50cm


작년 아트스페이스휴의 개인전에 연출한 설치작품을 보면, 도자기로 만든 눈이 없는 새 머리들이 잘린 채 솟대처럼 세워져 있고 그 새 머리 주위에는 이리저리 구슬들이 연결되어 얽혀있다. 새의 눈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눈이 없다는 의미를 넘어서 텅 빈 허공, 무(無), 다른 세계 또는 다른 차원을 은유한다. 텅 빈 눈이 예쁘게 채워진 눈보다 더 많은 의미와 차원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런데 눈이 없기에 구체적인 새의 상태를 우리는 독해할 수 없다. 도자기로 구운 새의 머리에는 많은 균열이 있는데 이는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 신(神)의 표현 또는 발화(發話)를 은유한다고 할 수 있다. 불의 연금술에 의해 만들어진 파열과 균열은 우연성과 사건의 차원에서 세계와 우주의 운행 법칙과 은유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매우 전통이 오래된 사고방식이다. 상고시대부터 인류는 불의 발견과 함께 그 열기로 깨어져 나간 뼈들에 나타나는 인위적으로 만들거나 예측할 수 없는 힘들의 충돌 결과를 통해 인간의 운명과 세계의 숨겨진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다. 점을 치는 것이다. 제의적 의미의 예술을 생각하면, 민성홍의 작업이 보여주는 조형적 연출과 이미지들이 전통적인 미학의 범주를 넘어서 종교적이며 인류학적인 상상력의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설치작업은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항력의 관계, 운동, 충돌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우연성에 필연성 또는 운명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예술가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사유방식이다. 과학적이기보다는 예술적인 사유이다. 이런 차원에서는 예술가들의 판단과 행위가 자기 주체적 결정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경계 또는 결이 있고, 무한의 힘들과 수많은 차원이 있어 우리의 의식을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격렬하게 간섭한다. 15세기 신비주의자들이 주장해온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 우연성과 필연성은 사실은 하나라는 가설, 동양의 연기론(緣起論), 철학적 사고를 받아들인 개념미술가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동시성(Synchronicity, 同時性)’과도 관련된다. 민성홍의 오브제에 우연히 새겨진 크랙은 하나의 문신이기도 하다. 그의 설치 또한 어쩌면 공간에 새겨진 삼차원의 문신일지도 모른다. 문신은 세계의 그림으로 볼 수 있으며, 그림은 우리의 신체와 마음, 세계의 변화를 은유한다. 이런 그림은 매우 특별한 감각, 특별한 사람들이 해석하는 것이다.


민성홍 작가


많은 현대미술가들은 다양한 조형적 장치들, 장식과 오브제들을 사용해 인류학적 상상력의 차원에서 인간의 존재성과 관련해 관찰하고 이해하려 한다. 근대정신의 논리와 인과법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자연과 정신의 현상을 이해하는 통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장식은 결코 빈곤한 유물론에 근거한 형식적 표현에 갇히지 않는다. 그것은 음과 양의 교접, 대지와 하늘의 만남, 생명의 표현. 장식이란 곧 이러한 의미를 담는다. 민성홍의 작업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감상할 수 있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것들은 외부에서 증식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부로 내려가는 이미지 또는 방식이다. 한 작가의 행위 결과는 특별한 감각과 의미의 세계를 사유하게 하는데, 작가의 작업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민성홍 작가가 집중하는 것은 확장성이나 다양성이 아니라 깊이와 피할 수 없는 인연 같은 것이다.

김노암 / 아트스페이스휴 대표
kimnoam@gmail.com


- 민성홍(1972- ) 추계예술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대학원 졸업. ‘섬:정원’(디에고리베라갤러리, 샌프란시스코, 2002), ‘Fence around’(씨알콜렉티브, 2018), ‘Known or Unknown’(아트스페이스휴, 2018) 등 개인전. ‘산책자의 시선’(경기도미술관, 2016), 창원조각비엔날레(2016), 광주비엔날레(2018),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2018) 등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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