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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기정, 배척당한 창검 예술의 계보

최열

좌) 박기정, <매화도>, <석난도>(사군자 8폭 병풍), 1932, 비단, 103.6×29cm, 최열소장
우) 박기정, <세죽도>, <도수죽>(목죽 10폭 병풍), 종이, 130.3×30.3cm, 최열 소장


중앙과 지방을 철저하게 구별하고 이를 서열화하는 정책으로 차별 구조를 보다 강화시키는 가운데 서울 사람과 시골 사람이 나뉘었고 결국 서울은 성숙한 힘을 갖추어 전국을 지배하는 중심이고 지방은 미숙한 상태로 낙후한 주변으로 고착되었다. 미술계 또한 마찬가지여서 중심과 주변의 등식은 세월이 흐를수록 강화되었는데 특히 미술사 서술에서 이런 차별의 공식은 완벽하게 관철되었다. 중앙집권 국가인 조선 시대 회화사 서술에서 한양을 무대로 하는 미술 행위 이외에 그 어떤 부분도 찾을 수 없음을 보라. 이것은 20세기 미술사 서술에서도 그대로다. 미술계만이 아니라 작가를 선정하는 기준도 거의 서울을 무대로 활동하는 사람으로 제한시키고 있다.

차강(此江) 박기정(朴基正, 1874-1949)은 평생 강원도에서 활동한 화가로서 강원도의 일부 뜻있는 이들 사이에 알려져 있는 지사화가이다. 창검오가(槍劍五家)의 한 사람인 박기정은 일주(一洲) 김진우(金振宇, 1883-1950)와 더불어 의병장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1842-1915) 문하의 동문이며 또한 박기정 문하생으로 손자인 화강(化江) 박영기(朴永麒, 1922- )와 더불어 미소란(微笑蘭)으로 유명한 청강(靑江) 장일순(張壹淳, 1928-94)이 있다.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 )가 장일순의 제자이고 또한 김지하의 후배 오윤(吳潤, 1946-86)이 그 흐름 위에 위치하고 있음을 생각하면 박기정-장일순-김지하-오윤으로 이어지는 거대 계보가 존재하고 있었던 게다. 그와 같은 계보의 정점에 위치한 화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은 20세기 미술사를 서술한 어떤 책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그의 예술세계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이유는 오직 하나 그저 강원도 사람이기 때문이다. 중앙과 지방을 차별하는 미술인의 의식이 그렇게 만들어간 것이다.

그는 1895년 의암(毅庵) 유인석(柳麟錫, 1842-1915) 의병부대에 입대하여 전투에 참전한 전사였다. 국망의 시절 가장 존경받아 마땅한 삶을 선택한 것이다. 이후 처사의 삶을 선택하여 사군자를 통해 그 시대를 상징하는 화가의 길을 걸어갔다. 그의 작품은 풀잎의 끝이나 창끝의 날카로운 모양을 지닌 것으로 의병 체험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사군자 8폭 병풍> 가운데 한 폭인 <매화도>는 꿈틀대며 솟아오르는 굵은 둥치와 날렵한 가지에 망울진 꽃이 저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봄날의 희망을 전해주는 작품이고 또 한 폭인 <석난도>는 난초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연출함으로써 힘없이 연약한 이들이라고 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는 작품이다. 대나무로 채운 <목죽 10폭 병풍> 가운데 <세죽도(細竹圖)>는 죽창 모양을 하고 있고 그 가운데 <도수죽(倒垂竹)>은 물구나무 선 세상에도 시들지 않는 창칼의 기운을 한껏 뿜어내고 있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두려움 없이 맞서는 결기를 드러낸 작품이다. 그처럼 시대정신을 가장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는 박기정의 예술세계는 사후 배척당했지만 이제 그 빛을 우리 앞에 눈부시게 드러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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