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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발로 뛰는’ 글이 그립다! 故 이규일 선생을 기억하며

호경윤


 
좌)『 이규일의 미술사랑방』 표지
우) 세계화필기행 중 김기창과 이규일 1981년

탄핵 정국의 요동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언론의 활약상이 주목을 받고 있다. 더불어 언론의 역할과 정의도 바뀌고 있다. 국정농단의 어두운 그림자가 문화 예술계에까지 짙게 드리워져 있음도 드러난 지금, 아트 저널리즘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기대되는 가운데 과거에 현장에서 활동했던 한 미술기자를 소개하려한다. 바로 故 이규일(1939-2007) 선생이다. 1968년『 중앙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들였던 그는 국전(國展)의 비리를 파헤치는 연재 기사를 발표하기도 하고, 소정 변관식의 한 작품이 제자의 것과 뒤바뀐 사건을 파헤쳐 당시 미술계를 들썩이게 했다. 이러한 사례들만 보면 서슬 퍼런 문제의식으로 똘똘 뭉친 준엄한 기자의 모습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규일 선생은 그런 캐릭터의 인물이 아니다. 이름 규일(圭日)의 한자 모양에서 ‘토토왈’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위트 넘치는 말재주로 미술계의 난해한 이슈도 가뿐하게 받아넘기곤 했다.

필자는 이규일 선생을 2001년 대학생 시절 당시 월간 『아트인컬처』의 대표로 처음 만났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인사동 거리에 나가면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방담을 나누느라 몇 걸음 떼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기억을 되살려 보면 그때의 인사동은 마치 트위터상에서 특정 주제로 시끌벅적한 타임라인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규일 선생의 진정한 기자 정신은 마당발의 인맥, 그리고 현장과 ‘밀착’해서 취재하는 데 있었다. 특히 운보 김기창 화백과는 유럽, 아프리카, 남북미주 18개국을 함께 여행하면서 김 화백의 현장 스케치를 곁들인 ‘세계화필기행’을 『중앙일보』에 연재한 바 있다. 잘 알려졌듯이 청각 장애를 앓은 운보였기에, 기자는 그의 귀와 입이 되어 줘야 했음은 물론이고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야 했다. 당시 필자가 들었던 재미난 일화로 운보는 ‘4’는 죽는 숫자라며 호텔 객실 번호도 ‘4’자가 들어가면 안됐다고. 마치 이러한 디테일 있는 기억,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이야기들을 이규일 선생은 30여 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축적시키며 부지런히 글로 남겼고 책으로 엮었다.

그가 남긴 저서 『뒤집어 본 한국미술』,『 한국미술의 명암』,『 한국미술 졸보기 1/2/3』 등은 대부분 ‘야사(夜事)’를 넘는 현장의 생생한 기록이다. 그 중 『이규일의 미술사랑방』은 원래 『아트인컬처』에서 연재를 했던 글을 모은 것이다. 당시 필자는 이 꼭지를 담당하면서, 연재 말미에 당시 삼성미술관리움이 개관과 함께 패트런(Patron)으로서의 이건희 회장에 대해 매우 주의를 기울이며 집필했던 모습이 기억난다.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특히 호암갤러리 전문위원을 역임하면서 비교적 내부 사정에 밝았기에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 회장의 미술에 대한 애정이 드러나는 비화들을 상세히 소개했다. 결국 생전의 마지막 저서가 된 『이규일의 미술사랑방』에서, 마침 그의 66번째 생일 아침에 썼던 머리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책은 편안하게 책상머리에 앉아 쓴 게 아니다. 평생 미술기자를 한 노하우를 다 동원해 자료도 열심히 찾고, 실로 많은 사람을 취재했다.”

시대는 변했고, 미디어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점도 달라지고 있다. 또한 최근 언론의 적극적 자세를 아트 저널리즘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지난 세대의 미술기자가 취했던 글쓰기의 방식과 미술에 대한 열정은 지금도 여전히 참조할 만하다. 단지 미술 기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곳 어디든 ‘발로 뛰는’ 글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 지난달 어느 일간지 미술기자께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친분은 없지만, 미술기자 시절 오랜 기간 뵈어 왔던 분이기에 지면상에서나마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발로 뛰는’ 글이 그립다! 故 이규일 선생을 기억하며

- 호경윤(1981- )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및 2013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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