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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평실천’전

호경윤


‘비평실천’전 전시전경

서울 시내치고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신대방동에 위치한 전시장 산수문화에서 ‘비평실천’(2.1-2.7)이라는 전시가 열렸다. 비평에 관한 전시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겨서 전시가 끝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다. 전시장에는 작품은 없었고, 관람객의 수보다 적은 단행본 몇 권과 복사기가 있었다. 단행본을 구입할 수도 없고, 게다가 전시 기간 이후에는 폐기한다고 하여 단행본의 내용을 복사해 가려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섰다. 

나 역시 꽤 오래 기다렸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매우 불편한, 혹은 불친절한 방식의 전시라고 보일 수도 있겠다. 심지어 작품이 없는 이러한 형태를 두고 ‘전시’라고 부르는 것조차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글을 얻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경험이 신선했다.

어쨌든 그렇게 어렵게 얻은 글은 다음과 같다. 이번 전시 기획자인 이양헌의 서문 <미궁에서 벗어나기>, 안진국의 <실패하는 비평의 파리한 아름다움>, 이기원의 <‘사진 이론’ 바깥의 사진들>, 김정현의 <쓰여지지 않은 비평>, 권시우의 <강정석 X 김희천 X ? : 유닛으로 질주하기>, 홍태림의 <암운의 연대기>, 곽영빈의 <‘예술이후’: 재현의 평면에서 위상학적 차원의 변위로>, 방혜진의 <현대미술/ 비평의 불순한 장면들>, 임근준의 <방백: (미술평론가로서) 새로이 입장을 취하고 표명하는 일에 관해>, 정현의 <비평의 자세에 관한 단상>. 아마도 이 전시에서 나온 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다면 복사본을 가진 사람을 수소문해 찾아 다시 복사하는 방식으로 전해질 것이다. 

전시가 끝나면 책들을 폐기하는 행위는 기획자가 서문에서 질문한 ‘모리스 블랑쇼의 말처럼 비평은 태생부터 “사라짐 자체가 비평의 존재 양식”인 것은 아닌가?’와 대구를 맞춘 것으로도 보이지만, 결국 이 전시의 기획자나 대부분의 비평가는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는 대답을 듣고 싶을 것 같다.

어떤 글이든 간에 필자는 어렵게 써낸 것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주변에는 글로 된 정보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메일함 혹은 우편함으로 받는 각종 전시 자료들과 혹은 도서관은 고사하고 집안의 책장에서조차 아직 읽지 못한 글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미술 기관에서도 아카이브나 도서관을 강화하는 환경이 조성되고있다. 그러나 글 자체에 대한, 혹은 필자에 대한 인식은 아직 추상적인 단계에 있는 듯하다. 

한 명의 평론가의 글을 모아 단행본을 만드는 몇 안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술계에서 태어난 수많은 글은 이곳저곳 파편적으로 퍼져 있다. 전시도록이나 미술잡지,그리고 온라인상에서 유령처럼 떠돈다. 작가의 작품은 화집으로,혹은 회고전으로 다시 보고, 다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비교적 많은 데 비해, 글은 그렇지 않다. 그저 일부의 글귀만이 각주를 통해 빼꼼 등장할 뿐이다.

이번 ‘비평실천’전에서 젊은 비평가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말그대로 ‘미궁’처럼, 예전부터 늘 미술계 속에서 맴돌았다. 그중1998년 창간해 온·오프라인에서 지속됐던 ‘포럼에이’, 2005년 몇몇 작가와 기획자가 함께 콜렉티브 라이팅의 형식으로 만들었던 ‘우적’, 그리고 이번 전시와는 정반대의 접근을 했던 2009년 일민미술관의 ‘비평의 지평’전 등. 사실 미술계의 많은 현상에서 종종 기시감을 느낀다.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유행처럼 ‘타임슬립(Time Slip)’이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이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집단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간을 거슬러 과거 또는 미래에 떨어지는 일을 말한다고 한다. 앞으로 이 연재를 통해 자료 자체가 아닌, 좀 더 지면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 특정한 글이나 필자를 다시 호출하고자 한다.


- 호경윤(1981- ) 월간 『아트인컬처』 편집장 및 2013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부커미셔너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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