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서울아트가이드 디.에디션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납골당이란 작은 전시공간

박영택



용인에 위치한 어느 납골당의 내부



뜨거운 여름으로 인해 힘에 부치고 괴로운데 연이은 부음들은 나를 저 바닥으로 질질 끌고 내려갔다. 노회찬의 자살과 최인훈, 그리고 황현산이 암으로 죽었고 최민도 죽었다. 교통방송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노회찬의 날카롭고 번득이는 비유에 늘 매료되곤 했는데 청취자들은 이를 ‘노르가즘’이라 칭했다. 나는 노회찬과 유시민의 정치, 시사 진단에 힘입어 이곳 현실의 지형을 보는 눈들을 조금이나마 맞추고 있었다. 고등학교 들어와 읽었던 최인훈 전집은 김수영의 시집과 함께 내 청소년기의 어느 상식과 감성을 일정 부분 형성해준 정서적 지도가 되었다. 황현산의 글들은 경향신문과 한겨레 신문의 칼럼을 통해 읽으면서 사유의 깊이와 신중한 문체에 경탄과 반성을 겸하곤 했는데 이후 출간된 『밤이 선생이다』란 책을 탐독하면서 수업시간에도 그 책을 교재로 학생들과 함께 읽곤 했다. 


특히 나는 그가 강운구의 사진을 해석하고 있는 어느 문장에 이르러서는 목이 메기도 했다. 최근에 출간된 『사소한 부탁』을 막 읽고 난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탁월하게 번역한, 우리 미술계의 어른인 최민의 죽음도 무척 허전한 일이다. 이들은 모두 나에게 커다란 영향과 은혜를 주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선인들의 덕택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또는 이름도 알 수 없고 존재도 파악할 수 없는 무수한 온갖 인연들, 내 피의 기원들 또한 그럴 것이다. 헤아려보면 나에게는 지상에 존재했던 모든 예술가가 특히 그러했을 것이다. 좋은 이들은 너무 이르게 죽었거나 황망하게 세상을 등져 이렇게 살아남은 이들을 힘겹게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투신한 날은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영은미술관에서 행사가 있어서 참석한 때였는데 마침 점심을 먹는 내내 어찌나 심란하고 우울하던지 그날 오후의 일을 어떻게 치러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나는 지금까지 용케 살아 남아오면서 무수한 죽음을 접해왔다. 그들의 죽음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도 추모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꾸만 죽은 이들에 대한 안 잊히는 어떤 기억이, 슬픔이 내 마음속에 무겁게 드리워져 있음을 느낀다. 


수년 전 한 지인이 췌장암으로 홀연 죽어 그의 유골을 모신 납골당에 갔었다. 용인에 자리한 어느 산자락이었다. 차가운 겨울이었고 아파트 형식의 건물 내부에는 사람들이 부재했다. 산자와 죽은 이는 이렇게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커다란 건물의 층마다 몇 개의 방들이 나뉘어 있고 각 방의 사면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체육관의 락커와도 같은 구조물로 빼곡했다. 유골을 담은 작은 병과 함께 사진이나 기타 유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오랜 시간 그 방과 함께 다른 방들의 칸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사물들과 함께 여러 사진과 문구들도 보고 읽었다. 


그것은 내게 하나의 전시장이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죽음이고 그들과 하등의 인연도 없는데 나는 이 납골당에 와서 그가 지상에 남긴 마지막 유품과 그의 가족들이 그를 추모하는 간절한 문구들을 은밀히 읽고 있다. 우선 나는 죽은 이들의 나이가 너무 젊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통상 어느 정도 평균 수명이라는 것이 있다고 여겨지지만 이곳에 와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을 깨닫는다. 이곳에 안치된 이들의 생몰연대를 보면 내 또래는 부지기수며 훨씬 아래인 70년생, 80년생, 심지어 90년생들도 꽤 많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는 거의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납골당의 작은 방들에서 인상적인 몇 개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간 아들이 죽은 엄마에게 보낸 편지가 놓인 것도 그중의 하나다. 젊은 엄마는 어린 두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어찌 버렸을까? 형제가 웃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과 함께 이제 중학교에 갔고 그만큼 컸으니 울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있는 편지지가 펼쳐져 있었다. 이제는 일정한 시간이 지났을 텐데 남은 아들들에게 엄마에 대한 기억과 부재에 대한 슬픔은 여전히 어떤 강도로 남겨졌을까? 죽음은 결코 죽은 이의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의 몫이다. 


나는 목욕탕의 신발장보다는 약간 큰 공간, 저 최후의 자리에서 죽은 이들이 남긴 뼈(유골함)와 사진, 생전에 쓰던 물건들 및 가족들의 문구로 채워진 의미 있는 전시를 보았다. 한쪽에는 시든 꽃들도 맥없이 꽂혀있었다. 죽은 이와 산자가 협업해 이룬 이 의미 있는 전시장은 과연 무엇일까?


하단 정보

FAMILY SITE

110-020 서울시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5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