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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육명심의 가면 사진과 김일성 가면 파동

박영택

육명심, 제주도, 흑백사진, 1982


어린 시절 <타이거 마스크>란 만화영화에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가지와라 잇키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데 호랑이 마스크를 쓴 프로레슬러가 악질 레슬러 양성기관을 향해 복수하는 이야기였다. 당시는 문방구에서 구입한 타이거마스크 종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돌아다니거나 황금박쥐 흉내를 내기 위해 보자기를 망토 삼아 어깨에 두르고 장독대에서 뛰어내리기를 반복했었다. 그러면 흡사 나 자신이 그런 존재와 일체가 된 것 같은 착각에 시달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크게 다치기도 했고 친구 중에는 팔이나 다리가 골절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실은 그렇게 가면과 달리 잔인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인 가면은 선사시대 조개 가면과 육명심(1933- )의 흡사 유령처럼 보이는 검은 가면 사진이다. 눈꼬리가 위로 올라가 있고 입은 일자형으로 단순하게 찢어진 그 검은 가면은 마치 죽은 이의 얼굴을 떠올려준다. 산 자의 얼굴이 죄다 까맣게 타버리고 남은 재 같은 얼굴이자 지상을 떠나 천상계로 홀연 떠오르는 듯하다. 이 까만 얼굴은 모든 표정을 송두리째 지우고 모종의 혼령이나 넋, 신을 감지케 한다. 제주도 지역의 전통적인 가면인 데 단순하고 소박하지만 무척 힘이 있는 조형물이다. 짙은 수묵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흑백사진의 힘과 가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긴장감 있게 맞물려있다. 무엇보다도 군더더기 없이 최소한의 표식으로 얼굴을 대신하고 있는데 온통 검은 안면에 눈과 입만이 아득한 심연처럼 깊게 뚫려있다. 텅 빈 여백 같은 공허가 모든 것들을 잠식시킬 듯하다. 보는 이의 시선이 저 구멍 안에서 죄다 잦아드는 것이다. 대체 이 검은 얼굴은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산 자의 얼굴을 대신해서 자리 잡은 이 검은 얼굴/가면은 어딘지 무섭기도 하고 더러 괴이하다.

육명심은 아마도 이것이 바로 우리 귀신의 얼굴이라고 보여준다. 그는 오랫동안 한국인의 얼과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얼굴들을 찾아왔었다. 한 민족을 정신적 특질로 파악할 때 토속적 정신의 심층에는 어느 민족이나 심령이라고 하는 샤머니즘의 뿌리가 깊숙이 놓여있게 마련이다. 육명심은 바로 그 세계를 사진으로 탐사하고자 한다. 그 사진은 우리의 의식에 호소한다. 그것은 오랜 시간 내려온 민족적 집단의 무의식을 가시화하는 일이자 현재 속에 살아있는 모종의 과거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넋과 정신, 또는 무속적 세계를 표상하는 이 가면은 아마도 우리 선조들이 보고 싶거나 두려워했을 얼굴일 것이다. 혹은 현실계를 떠나 저 세계로 나아가는 어떤 단호한 얼굴, 망자의 얼굴은 아니었을까? 저 가면으로 산 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지우고 또 다른 존재를 갈망하거나 다른 이의 얼굴/몸으로 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지의 주술성이 가장 잘 실현되는 것이 바로 가면이다.

아마도 옛사람들은 이 검은 가면을 쓰고 현실계의 육체를 가벼이 버리고자 했을 것이며 자신의 존재를 지우고 또 다른 존재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은 상상과 초월적 경험을 현실계에서 이루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나의 가면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른바 가면을 쓰는 일은 순간순간 이승에서 저승으로 저승에서 이승으로 교차하고 순환하는 어떤 순간을 사는 일이었지 않았을까? 그것은 현재에 저당 잡힌 시간도 아니고 미래로 줄달음질치는 저 세계의 시간도 아닌 기이한 어느 시간대를 순간으로 사는 이들의 얼굴이다. 전통시대 가면의 역할이다. 애초에 가면은 본래의 몸을 지우고 또 다른 존재로 비약하거나 현세의 얼굴이나 육체를 대신해 초월적인 존재로 비상하고자 하는 욕망의 산물로서 출현했던 것이다.

지난 2월 11일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경기 중 코리아 vs 스위스 조별예선에서 북한 응원단이 젊은 남자의 가면을 쓰고 응원을 했는데 그 가면이 바로 김일성 가면이라는 지적이 일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다. 물론 이내 오보로 판명이 났지만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은 그것이 김일성의 얼굴이라는 확신 속에 김일성을 찬양하는 작태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가면을 가면 그 자체로 보는 대신 가면을 실제와 동일시하는 이른바 주술성이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여전히 이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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