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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굶주리지 말고 영생하라는 간곡한 제주 동자석

박영택

제주에 갈 때마다 가능하면 오름 앞에 자리한 돌 문화공원에 간다. 그곳에는 무수한 거석들과 돌하르방과 동자석, 온갖 기이한 돌들이 도열해 있다. 나에게 제주는 무엇보다도 저 동자석의 공간이다. 나는 그것들을 편애하면서 꽤나 찾아다녔다. 그러나 무덤들을 일일이 찾아다닌다는 것은 어려워서 돌 문화공원과 제주박물관, 제주대학교박물관 등에서 어여쁜 동자석을 더러 만났다. 그러나 좋은 동자석은 정작 제주에는 드물다. 사실 서울에서 구할 수 있는 동자석들은 이전에 제주도에서 마구잡이로 가져온 것들이다. 지금 제주에서 동자석 반출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본래 동자석은 16세기에서 18세기 중반까지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석물을 말한다. 쌍 상투를 틀고 천의를 입고 지물을 들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공손히 시립하여 엄숙한 묘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인 동자석은 잡귀를 쫓는 수호신의 역할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에서 제주의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제주의 민묘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 담으로 둘러 쌓여있고, 그 속에 동그란 봉분이 있고 묘주의 심부름꾼이라 할 수 있는 소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 보고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동자석은 일반적으로 산 담 안 상석과 묘비 앞 배계절(拜階節)에 세운다. 벼슬아치들의 무덤에는 문인석과 함께 동자석도 세우는 반면 동자석만 있는 경우는 비교적 하위직 벼슬이나 서민에 가까운 향청의 서리, 여성의 묘 등의 경우이거나 혹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으로 추정된다.


동자석의 크기는 보통 지상에 세웠을 때 40-90cm 정도이며 땅속에 묻힌 정도가 10-20cm가 되며 보통 동자석의 비례는 2.5등신에서 4등신으로 얼굴 부분이 전체 몸보다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제주의 동자석에는 불교, 무교, 도교, 민간신앙의 여러 요소가 반영되어 있지만 특히 유교 문화의 중심권에서 잉태되어 변방인 제주에까지 흘러와서 제주 지역의 독특한 풍토와 여러 신앙과 만난 결실물이라고 본다. 조선 시대 유교 문화가 제주에 유입되는 시기는 15세기이다. 이후 유교식 지방 관료들에 의해 유교식 상장제례(喪葬祭禮)가 시행되면서 지금과 같은 무덤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때부터 동자석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시대를 세부적으로 나누어 보면, 발흥기(17세기), 융성기(18-19세기), 쇠퇴기(20세기-1970년까지), 소멸기(1970년 이후)로 구분하고 있다. 무덤 앞에 세워진 동자석은 무엇보다도 죽은 이를 위한 예를 갖추고 여러 기능을 수행하라고 만든 것이다. 



제주 동자석


사자(死者)를 위한 제례를 행하기 위한 숭배적 기능, 영혼의 심부름꾼이라는 봉양적 기능, 영혼을 지키는 수호적 기능, 가문의 권위를 알리기 위한 무덤의 치장을 위한 장식적 기능, 사자를 달래기 위한 주술적 기능, 놀이꾼으로서의 유희적 기능 등 영혼의 벗으로서의 여러 기능이 그것이다. 보통 동자석은 앞가슴에 촛대·술병·부채·표주박 등 지물을 두 손 모아 받들고 있다. 제주인들은 생전에 도움을 받고 살았던 동자를 죽어서도 데리고 살 수 있도록 무덤에 동자석을 설치했다고 한다. 고독한 죽음의 공간에서 저 작은 동자석에 의지하며 영생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주도인지라 현무암이 주를 이루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한 돌로 만들어진 제주동자석들은 무척 작고 귀엽다. 비교적 간단한 직선과 곡선으로 이목구비와 표정을 표현했으며 단순하고 소박하며 해학적인 맛을 흠뻑 두르고 있다. 그래서 운주사 석불을 보는 듯도 하고 무심의 극치인 민화를 엿보는 듯도 하다. 나는 이런 맛이 더없이 좋다.


이 동자석은 50cm 높이에 둥근 얼굴을 하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지물을 들고 있는 남녀 한 쌍이다. 나로서는 각각 영지와 숟가락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숟가락 대신 부채(벽사의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무덤 안에서도 굶주리지 말고 불로장생하라는 의미는 아닐까? 부드러운 흙색이 섞인 돌은 적당히 세월의 때를 입어 돌꽃이 피었다. 간략하게 ‘직직’ 그은 선으로 이루어진 눈과 입이 퍽이나 재미있다. 무표정한 얼굴, 감정이 배제된 무심한 얼굴로 영원히 무덤가에서 망자를 지키고 있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표정이다. 나는 저런 얼굴을 지닌 동자석을 책상아래 거느리고 이 글을 쓴다. 한때 어느 무덤가에서 죽은 이를 공양하다가 여기 와서 내 곁을 지키는 저 동자석과의 인연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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