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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옹기가 지닌 매혹적인 선

박영택


물항아리

 평창동에 위치한 한 골동 가게에 들렀다가 몇 개의 옹기를 보았다. 비교적 작은 크기의 옹기들이었는데 형태와 선이 참 아름다웠다. 옹기야 그전에도 숱하게 보아왔지만 그다지 주의 깊게 보진 못했다. 그러나 주인이 전적으로 개인적인 수집 목적으로 모아둔 그 몇 개의 옹기를 보는 순간 옹기가 이토록 매혹적인 조형미를 지닌 ‘물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옹기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옹기 몇 개를 내 나름의 기준으로 수집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가장 흔하고 저렴한 옹기에서 절묘한 것을 찾는다는 것이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보았으며 우리네 일상적인 삶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쓰였던 옹기의 매력을 조형적으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전적으로 앞선 수집가의 안목에 기댄 의견이다. 마음에 드는 옹기는 커다란 독들이지만 형편상 실내에 놓아둘 만한 적당한 크기를 제한해서 찾아보기로 했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다가 양평에 위치한 한 옹기 가게에서 몇 개의 좋은 옹기를 구했고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골동 가게에서도 하나를 찾았다. 우선 형태가 아름답고 문양이 ‘회화적’이며 연대가 좋은 것 중에서 찾는다고밖에는 말하기 어렵다. 옹기는 청자와 백자에 비해 다소 투박하고 수수해 보이지만 그 자체로 소박한 미감이 번득이는데 나는 그런 맛이 참 좋다. 이는 마치 서민적인 민화나 소박한 목기를 접하는 맛과도 유사하다.

 옹기는 찰흙으로 만든 후 잿물 유약을 묻혀 1,200도 온도에서 10여 일 동안 구워내는 그릇을 말한다. 옹(甕)이란 ‘독’이라는 우리말의 한자어로 저장 용기인 그릇의 형태를 일컫는 말인데, 이미 선사시대부터 만들어져 물과 음식물을 담거나 저장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조선 시대에는 도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매우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며, 장을 담거나 소금을 저장하거나 김치를 담그는 데 쓰는 그릇을 독이라고 표기했다고 한다. 이 옹기는 서민들의 실생활 여러 곳에서 부담 없이 활용된 그릇으로, 사용에 편리하게 자유롭게 변형되어 만들어졌으며 그만큼 많이 만들어졌던 그릇이었다. 살펴보면 옹기의 주원료인 찰흙은 산에서 얻는 것이고 진흙을 굽기 전에 바르는 잿물의 재료 역시 나뭇잎이 썩어서 만들어지는 부엽토와 재다. 더구나 옹기가 깨져서 더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다시 자연으로, 흙으로 돌아가니 참으로 자연 친화적인 그릇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알갱이가 섞여 있는 질(점토)로 만들어지고 가마에서 소성될 때 질이 녹으면서 미세한 기공이 형성되고 그로 인해 공기·미생물·효모 등이 통과할 수 있는 이른바 숨쉬는 옹기, 살아있는 생명력을 지닌 옹기라는 얘기다. 

 내가 수집한 옹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 물독이다. 옆으로 팽창한 부위가 넉넉해 달항아리를 연상시키는 기형과 문양이 너무 아름다워 보는 순간 매료되었다. 산이 지니는 부드러운 선의 형태를 닮아 산문양이라 불리는 선이다. 흔히 파곡선문으로 불리는 이 문양을 손가락의 검지와 중지를 이용하여 항아리의 어깨 부분에 곡선의 배가 위로 향하도록 그렸다. 그 선들이 둥근 항아리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넉넉함을 전해준다. 무심하고도 놀라운 솜씨로 쓱쓱 그려나간 선이 절묘하다. 아마 옹기 만든 이가 평생을 저 선만을 그어 이룬 어떤 경지일 것이다. 나는 저런 선 하나를 애타게 찾는다. 사실 옹기의 매력은 이 특징적인 무늬에 있다. 시유 단계에서 손놀림을 이용하여 무늬를 만드는 것을 흔히 ‘환을 친다’고 표현한다. 환을 치는 것은 무늬를 낼 뿐 아니라 표면의 유약을 부분적으로 닦아 내어 옹기의 통기성을 높여 주는 역할도 하는 데 하여간 이 환치기로 그려진 자국은 속도감이 있고 즉흥적이고 생동감이 있으며 자생적으로, 몸이 기억하는 것을 자발적으로 그려낸 자유분방한 무심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절묘한 추상화가 아닐 수 없다. 또 다른 작은 것도 역시 물독인데 안정적인 형태감에 두 줄로 그은 선의 맛이 역시 일품이다. 거의 백여 개의 옹기 중에서 겨우 하나 골라낸 것인데 보는 순간 알 수 없는 희열이 일었다. 아마도 이런 기적 같은 조우에 대한 기대 때문에 옹기를 찾으러 나서나 보다. 나를 사로잡는 아름다움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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