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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망자와 동행하던 꼭두

박영택

 나무로 만들어진 형상이라는 뜻의 나무 꼭두는 상여에 장식된 것을 지칭하는데 사람이나 여러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세상의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저 세상과 연결된 꼭두는 망자를 매장하러 가는 그 고독한 여정에 동행한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득한 거리다. 상여 속 망자는 죽었지만, 아직 완전한 죽음은 아니고 매장 직전의 존재이자 미처 저승에 가지 않은 상태이기에 삿된 것을 물리치는 금기가 요구되었다. 저승으로 가는 마지막 행차에는 신분 제약을 두지 않고 모두가 호사를 누리도록 허용되었다. 시신이 매장되면 상여는 꼭두와 함께 불에 태우는 것이 저 세상으로 보내는 마지막 절차다. 소임을 다한 꼭두는 비로소 그 짧은 여정을 마치고 재가 되고 그 역시 망자가 되었던 터라 남아있는 게 드물고 오래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상) 꼭두-닭, 나무에 채색
하) 꼭두-남자상(얼굴 부분)


 목인박물관과 꼭두박물관에 가서 수많은 꼭두들을 오래 머물러, 보고 또 보았다. 시간의 힘겨움 속에 조금씩 지워지는 꼭두의 피부를 애도하면서 말이다. 하여간 시간의 입김에 의해 벗겨지고 지워진 흔적과 어리숙하고 해학적인 미감으로 만져지고 문질러진 나무의 물성이 뿜어내는 맛이 대단하다. 특히나 하나하나 저마다 다른 표정이 참 재미있다. 이 다채로운 꼭두의 표정 안에는 우리 인간 모두가 찰나적인 인생의 여정에서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예외 없이 거쳐 가는 인형들에 불과하다는 페이소스가 담겨있다고 김홍남은 말한다.

 죽은 이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실어 나르는 상여를 장식하는 꼭두는 어느 이름 없는 장인들이 만들었다. 그저 무심하고 투박하며 소박한 미감을 천연덕스럽게 지니고 있는데 그게 사뭇 감동적이다. 산 자들이 죽은 이를 기리고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에 나무를 깎고 칠하고 다듬어서 만든 꼭두는 악귀의 힘을 쫓아내는 벽사의 역할을 하며 동시에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잘 건너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때로는 근엄하고 더러는 해학적이며 천진한 꼭두의 얼굴을 보노라면 이미지의 힘을 빌려 생사의 단락을 넘어서고 죽음의 공포를 불식시키려 했던 그 간절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전해지는 듯하다. 이처럼 이미지란 본래 주술이고 기복이자 간절한 염원의 소망 속에서 피어났다. 무모한 작위성을 지우고 현란한 사욕도 잠재우고 다만 망자를 위로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속에서 절박하게 매만져진 꼭두의 저 결정적인 표정과 몸을 보면서 새삼 미술의 힘을 떠올려 보기도 하는 것이다.

 해서 나는 늘 매력적인 꼭두 하나를 간절히 원했다. 오래전 인사동 골동 가게에서 말 탄 남자상 두 개를 구입했고 이후에는 호랑이를 탄 작은 남자상도 하나 샀다. 지금 와서 보니 안목이 없던 때라 연대도 낮고 형편없는 것을 비싼 가격에 샀다. 수집에 있어 불가피한 과정,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현재 남겨진 대부분의 꼭두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연대가 좋은 것은 드물고 조형적으로 뛰어난 것을 찾기도 힘들다. 설령 있다 해도 그것들은 워낙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저렴한 것 중에서 잘 골라 사는 수밖에 없다. 하여간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고려방에서 날개를 활짝 편 닭의 형상을 한 꼭두 하나를 보았다. 형태도 좋고 색상도 좋았다. 가격 대비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가 한 해가 지나 우연히 민예사랑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놀랍게도 전에 산 것과 똑같은 닭 꼭두를 만났다. 한 쌍이었다가 흩어진 것이 이렇게 내 눈에 띄었나 보다. 이런 것을 인연이라고 하나 보다. 어렵사리 구해 한 쌍이 되어 다시 만난 닭 꼭두는 지금 내 책상 위에서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다. 그 후에 장안평에서 직립한 남자 상 하나를 발견했다. 검은 옷에 갓을 쓴 남자로 짧은 팔자 수염을 하고 있는데 어딘지 귀여우면서도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있다. 꽤 심각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31cm 크기의 입상인데 마치 저승사자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이 근엄한 얼굴은 과연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힘겹게 살아낸 생애를 되돌아보는 것일까, 망자 앞에 펼쳐진 죽음 이후의 장면일까? 나는 저 눈에 눈을 맞추며 내 짧고 덧없는 생애를 마치는 날 찾아올 저승사자의 눈빛을 가만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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