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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골병 든 몸을 두들겨댄 작은 몽둥이

박영택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는 가끔 서울 우리 집에 올라오셔서 며칠씩 묵고 가시곤 했다. 장항선 완행열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집까지 오는 그 길이 그분에게는 바람 쐬는 일이고 적조하고 무료한 시골 생활과 반복되는 노동으로부터의 일종의 도피이기도 했으리라. 외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오시면 늘 내게 자신의 허리와 다리를 자근자근 밟아달라고 요청하셨다. 그 당시 내 작은 손은 이미 늙고 야윈 할아버지의 메마른 몸을 두들기고 밟으면서 조금은 신나하고 더러는 귀찮고 심드렁하게 그 일을 해냈다.

한편 시골에 계신 할머니는 더욱 고된 농사일로 인해 온몸이 굴절되셨다. 자연 속에서 그 자연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취해 생을 도모한다는 것은 온전히 자신의 육체를 혹독하게, 반복해서 놀려야만 가능한 삶이라는 얘기다. 농사짓는다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몸의 노동으로만 비로소 가능한 일이고 그 고된 노동 없이는 그 어느 것 하나도 이룰 수 없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평생에 걸쳐 온갖 농사일과 살림으로 고군분투하셨던 외할머니는 허리가 거의 90도 각도로 꺾여서 지내시다가 돌아가셨다. 하여간 늘 아픈 허리로 고생하시면서도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셨다. 아니 일을 하지 않고는 시골에서, 자연에서의 삶을 이루어 지지 않고 가능한 것이란 하나도 없으므로 어쩔 수 없으셨던 것이다. 나는 가끔 그분의 과도하게 휜 허리를 우울하게 떠올려본다.




몽둥이

인사동에 위치한 G옥션 전시장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고미술 관련 전시를 연다. 각 지역의 고미술 상인들의 일종의 연합전시다. 지방에서 올라온 갖가지 골동품을 보는 재미가 있다. 물론 요즘은 좋은 물건들이 극히 드물어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런대로 자꾸 들여다보면 재미있고 마음 가는 물건이 전혀 없지는 않다. 그래서인지 전시 때마다 몇 점은 꼭 사 들고 나오는 편이다. 근래에 보다가 마음에 들어 구입한 것은 작은 몽둥이(?)다. 짧은 것, 긴 것 그렇게 두 개를 샀다. 하나만 고르자니 다른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혔다. 통나무를 깎아서 둥근 부위와 막대 부분으로 만든 단순한 구도의 이 물건은 무엇보다도 무심하고 어눌한 솜씨와 오랜 시간의 흔적이 깃든 맛, 그러니까 ‘땟물’이 좋았다. 재미나게 생긴 형태감과 나무의 색감, 질감과 물성이 볼수록 매력적이었다. 그것 자체로 완벽한 오브제였다. 이 물건의 주인인 전라도 광주에서 오신 상인은 이것을 매댕이 (매탱이?)라고 부르던데 하여간 이 물건의 정확한 명칭은 확인할 수 없었다. 용도는 안마용 몽둥이다. 그러니까 옛날에 농촌에서 종일 고된 농사일에 골병이 들어 삭신이 늘 쑤셨던 이들이 저녁이면 잠들기 전에 이 자생적으로 만들었던 작은 몽둥이로 연신 어깨며 등짝 등을 마구 두들겨댔을 것이다. 그러고 나면 ‘솔찬히’시원했으리라.

지금이야 ‘파스’(독일어 파스타 Pasta의 준말로 직포에 약물을 붙여 만든 외용 첩부제를 이르는 말)를 비롯해 온갖 안마기구와 안마용 의자를 비롯해 그야말로 다양한 의료기구들이 널려있지만 이전에는 나무나 돌 등을 가공해 만든 단순한 도구에 의존에 몸을 문지르거나 때리거나 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온천을 이용하거나 제주도에서처럼 ‘검은 모살뜸’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러나 간편하고 수시로 사용하기에는 이 작은 몽둥이만 한 게 없지 않았을까? 적절한 나무 뭉치를 구해다가 손수 깎아나가면서 둥글둥글한 형태를 만들고 그 아래로 손잡이 부분을 길게 다듬어 나간 이 몽둥이는 묵직하면서도 가볍고 실제로 몸을 두들기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더구나 상대적으로 길쭉한 것은 둥근 부분을 상반된 방향으로 나누어 반원형 선으로 음각했는데 그 형상이 흡사 남성의 고환을 연상시킨다. 손잡이 부분과 함께 놓고 보면 영락없이 남성의 성기 모습 그대로다. 이런 익살과 장난기를 일상의 사물, 도구에 슬쩍 얹혀 놓는 것이 우리 선조들이다.

물론 나는 이 몽둥이를 안마기로 쓰겠다고 산 것은 전혀 아니다. 내게 이 몽둥이는 나무의 물성과 실용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목 조각이자 지극히 자연스러운 미감과 소박함이 물씬거리는 매력 때문에 구입했다. 아주까리기름으로 정성껏 닦은 다음에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면 더없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순간 고된 농사일로 인해 허리가 반으로 꺾어진 몸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그 허리가 자꾸 생각이 나서 못내 우울하기도 하다. 이 작은 몽둥이로 외할머니의 그 굽은 허리를 정성껏 안마해드릴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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