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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휴대용 약통

박영택

약통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많은 약을 먹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아마도 여태 내 목숨이 붙어 있었던 내력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먹어댄 약으로 인해서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결핵성 늑막염으로 고생하다 폐를 다쳤고 그 후유증으로 감기와 잔기침을 달고 지내는가 하면 소화기관도 부실하기만 하다.

특히나 느닷없이 찾아오는 편두통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또한 나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태어났다. 이른바 ‘이엽대동맥판막’이란다. 해서 매년 정기검사를 받고 있는데 대동맥이 많이 늘어나 있어서 더 커지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부디 수술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기는 하지만 한다 해도 별수 없는 일이다. 나는 가끔 이런 몸을 저주하고 원망도 하지만 그런들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고 있다. 이 몸은 그저 낯설기만 하다. 몸은 나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기계와도 같다. 그저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나는 몸을 숙주 삼아 기생하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몸이 어떤 상태인지, 향후 어떻게 될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내게 이 몸은 극락이자 우환이고 마장인가 하면 심연이고 궁극의 조건이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집 밖을 나설 때는 반드시 약부터 건사한다. 다양한 약이 들어있는 약 파우치야말로 내겐 필수품인 것이다. 몇 년 전 익산에서 작은 약통 하나를 구입하게 되었다.
단단한 나무를 깎아 안쪽에 구멍을 냈고 뚜껑은 끈으로 연결해 놓은 휴대용 약통(아편통이라고도 한다)인데 무척이나 쓸모 있어 보이는 데다 더없이 견고하고 매끈한 질감과 오랜 시간을 머금은 나무 색감이 주는 매력이 대단했다. 조선시대 후기 내지는 왜정 때의 것이 아닌가 하는데 하여간 처음 보는 순간 참 재미있고 쓸모 있는, 요긴한 물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항상 약을 챙겨 다니는 나로서는 저 약통을 지니고 다녔던 그 누군가의 삶이 어쩐지 짠하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다가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인사동에 위치한 장생호에 들려 물건을 구경하다가 그와 유사하지만 조금 작고 더 감각적인 것을 다시 만났다. 이미 갖고 있지만 이런 약통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기어이 사고 말았다.

저 약통이란 일상 삶에서 무척 쓸모 있는 용기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나무로 깎아 만든 일종의 조각 작품으로 다가왔다. 이미 그것 자체로 충분히 매혹적인 오브제였다. 오랜 세월 사용해서인지 반질거리는 나무의 표면은 길이들대로 들어 그 깊이 있는 색채는 형언하기 어려운 미감으로 어질하기만 했다. 휴대용으로 갖고 다니며 만지작거렸을 손의 놀림과 체온이 전이되고 그로 인해 나무 표면은 희한한 질감과 색감으로 충만하기만 하다. 

당시 사람들은 이 작은 나무 약통에 환약이나 약초, 잎사귀 혹은 아편 등을 담아 넣고 다녔을 것이다. 하여간 약방이 드문 시절, 병이 들어도 제대로 치료받기 힘들었던 시기에 자가 치료의 한 흔적을 적나라하게 안겨주는 간절한 도구이자 손쉽게 아편을 소지했던 용기로 보인다.

당시 사람들은 민간요법에 따라, 자연에서 채취한 약초를 이 작은 약통에 담고 나름의 방법으로 섭취해 병을 다스려나가거나 통증을 해소해 나갔을 것이다. 비상 약통으로 한 개인의 신체 어딘가에 조심스레 매달려 늘 그의 병든 몸과 함께했으리라. 아픈 몸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란 오로지 자신과 통증밖에는 없는 법이다. 저 휴대용 약통을 지니고 다녔던 이는 누구였을까? 그는 어떤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힘들어했을까? 몸을 지닌 이로 태어나 그 몸이 겪어 내야 하는 온갖 병에게서 자유롭지 못한 인간의 운명은 잔인하게 평등하다. 나는 이 작은 약통을 만지작거리면서 부디 고통 없는 죽음을 고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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