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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노동의 도구, 연장들

박영택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서울풍물시장은 동묘에서 동대문 평화시장 뒤편으로 이어지는 꽤 긴 거리에 위치해있다. 일요일이 되면 원래 상점들은 대부분 문을 닫고 그 앞에 노점, 좌판들이 죄다 펼쳐진다. 이른바 벼룩시장이 들어서는 것이다. 나는 어쩌다 이곳을 들린다. 내 관심은 단연 골동품이다. 그러나 좋은 것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애타게 찾고 다닌다. 아쉬운 마음에 중국제 목기류나 동남아시아의 작은 불상 등을 사 오기도 했다. 우연히 그곳에서 인사동에 점포를 갖고 있다가 이곳으로 옮겨온 사장님을 만났을 때 반가움이 컸다. 이전에 그곳에서 태국 불상과 인도 목조 두상 등 여러 점을 구입했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온 작은 나무 불상 몇 개를 구입했다. 그것들은 내 책상 선반 위에 차분히 앉아있다. 몇 개도 더 눈여겨 보았지만, 최근에는 가보지 못해 구입은 못하고 대신 그것들이 가끔 꿈에 나타나곤 한다.

이 풍물시장에서 구입 한 물건 중에서 내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것은 이른바 연장통이다. 아마도 가내수공업을 하던 분이 쓰던 오랜 연장이었을까? 분명 무엇인가를 수선하고 매만지던 단순한 도구들로 보인다. 작은 나무통에 고스란히 담긴 몇 개의 연장은 그야말로 작업을 하던 분이 스스로 만들어 쓰던 자생적인 도구들이다. 반질거리고 닳고 패이고 뭉툭해진 연장 하나하나는 오랜 노동의 시간과 육체적 노동의 강도를 힘껏 껴안고 있다. 손에 익을 대로 익은 저 연장을 쉽게 버리지 못했을 것이고 완전히 자신의 손과 일체가 되어 손에서 떠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기계나 도구가 아니라 일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연장을 스스로 수공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감동을 주었고 다음으로는 오랜 시간 저 연장과 함께했던 시간의 축적이 고스란히 사물의 표면에 깃들어 있어서 더욱 감동이 배가 되었다.
나는 통에 든 그 작은 연장들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미 저것들을 사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졌고 그 안색을 숨길 수 없어서 상인은 결코 에누리 없이 제값을 다 받고서야 내 손에 넘겼다. 저 연장의 주인은 적지 않은 시간을 도구들과 함께 고단하고 피곤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먹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 순연한 목숨과 생의 연장을 생각하니 잠시 목이 잠겼다. 어느 순간 이제 그는 더 이상 연장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거나 더는 노동을 감당할 육체가 아니게 되었던가 보다. 이제 그의 손에서, 노동에서 풀려난 연장은 통째 팔리거나 버려져 이곳까지 와서 내 눈에 띄었다. 한 인간의 시간과 육체적 노동의 강도를 온몸으로 각인하고 있는 모든 연장은 그래서 감동을 준다. 그것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노동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 세상에 나와 자신의 육체를 굴절시켜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임을 발화한다.

내가 하는 일은 결국 손이 하는 일이다. 나란 존재는 그래서 손이 전적으로 대변할 수 있다. 물론 얼굴도 그렇지만 얼굴은 하나의 결정적인 이미지를 안기는 반면 손은 내 몸과 몸 밖의 세계를 연결하고 그것과 접속되게 하는 핵심적인 기관이다. 손은 내 몸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그 연장된 몸으로 삶의 최전선에서 세계와 맞서고 있다. 손으로 타자와 사물과 접속되고,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 따라서 손이 없다면 세계는 없다. 그러니 손은 나를 전적으로 대신한다. 내 의지와 감정과 노동이 손으로 인해 가능하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손으로 인해서다. 그 손으로 써내려가는 글, 노동은 나란 존재를 인식시키는 일이자 주체가 되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손과 접속된 모든 연장이 아름답다. 노동의 내음이 흠뻑 묻어 있으며 한 개인의 몸놀림으로 어느 부위가 닳거나 들어간 흔적이 더없이 숭고해 보인다.
서울풍물시장의 어느 한구석에서 발견한, 오랜 시간의 흔적을 뒤집어쓴 연장통에 담긴 이 작은 연장들은 한 인간의 노동으로 기술된 생애를 순연하게 떠올려주는 소중한 사물이다. 나 또한 이런저런 연장을 소모하며 살고 있다. 비록 저 연장만큼은 아니더라도 몇 개의 필기구를 허비하며 무엇인가를 쓰고 내 삶을 벼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 연장에 비하면 내가 다루는 도구들은 연장이라 말하기 민망하다. 오늘도 연구실 테이블 한쪽에 놓아둔 저 연장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노동자의 삶을, 노동하는 생애를 경건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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