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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매미 형상을 한 작은 먹물 통

박영택



매미 형상의 휴대용 먹통
좌) 닫혀있는 모습, 우) 열려있는 모습


오래전 울산에 자리한 오순환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나는 정작 작품보다 곳곳에 자리한, 소박하면서도 놀라운 조형미를 두르며 빛나는 물건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신라와 가야시대의 질그릇(손잡이가 달린 작은 컵)과 동자석 등이 어둑한 작업실 공간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아마도 오래전부터 박물관이나 골동가게 등에서 접했던 것이지만 이토록 매력적이었다고 느낀 것은 그날의 사건이었다. 차마 눈을 떼지 못하는 내게 작가는 작은 잔 하나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눈 밝은 작가의 수집품을 본 것이 발단이 되어 그날 이후로 나는 우리 고미술을 욕심껏 보러 다니고 형편이 되는 한에서 작은 물건들을 구입해오고 있다. 작은 질그릇과 목기 및 주로 일상에서 사용하던 소품들이다. 더러 현판과 무낙관 그림, 백자 등도 수집했다. 전시를 보러 다니는 틈틈이 인사동이나 답십리에 자리한 골동가게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지방에 갈 기회가 있으면 가능한 그곳 가게를 둘러보러 다녔다. 그렇게 해서 현재 학교연구실에는 적지 않은 고미술품(골동)이 제법 가득하다. 매일 그것들을 완상(玩賞)하면서 행복해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본격적인 수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우선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다. 그러니 자제가 필요한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괴롭다. 또한 이렇게 사들이고 수집해서 결국은 뭘 할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면 다소 무섭기도 하다.

높이 7㎝의 이 작은 매미는 황동으로 만든 가짜 매미다. 실은 이 매미는 옛 선비들이 품에 간직하고 다녔을 법한 것으로 유추되는 매우 앙증맞은 먹물 통이다. 이 물건은 부산의 한 골동 가게에서 구했다. 황동 판을 오리고 이어 붙여서 매미의 몸체를 만든후 그 사이 빈 공간에 날개 한 쌍을 밀어 넣어 만든 것이다. 매미의 양쪽 겹눈이 자연스레 위판과 아래 판을 연결하고 날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뒷면 판에는 작은 글자로 ‘통성(通盛)’ 이란 글자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이로 미루어 연대가 오래된 것은 아닐 것이다. 두께를 지닌 날개를 펼치면 그 안에 빈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곳에 먹물을 넣어두고 사용했다. 날개 밑받침이 약간의 타원형으로 굴려있어 세워놓을 수 있다. 심심하면 가끔씩 날개를 펼치고 그 안에 마련된 빈 공간을 응시한다. 저 작은 공간에 담긴 먹물을 갖고 다니며 어떤 급한 내용의 글들을, 혹은 내밀하고 소소한 사연을 담은 작은 쪽지 글들을 썼을까 상상해본다. 하여간 볼수록 귀엽고 재미난 물건이다. 매미의 형상을 빌어 먹물 통을 만든 아이디어도 대단하고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매미 형상도 매력적이다.

알다시피 우리 고미술품에는 매미 형상이 빈번하게 출몰한다. 대표적인 것이 익선관일 것이다. 매미의 덕을 잊지 말자는 결의의 상징이다. 매미는 땅속에서 유충의 상태로 4년에서 7년을 보낸 후 땅 위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비로소 매미가 된다. 따라서 선인들은 이러한 매미의 변태 과정이 불사와 재생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불교에서는 매미가 허물을 벗고 비상하는 모습에서 모든 번뇌와 소멸과 인생의 고해에서 해탈하는 상징으로 본다. 유교에서는 매미를 덕이 많은 곤충으로 여겼다. 매미에게 다섯 가지의 덕이 있다고 보았는데 우선 매미의 주둥이가 마치 선비의 갓끈이 늘어진 형상과 유사하다 해서 ‘학문’이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른 아침 이슬만 먹고 살기에 맑고 깨끗함으로 ‘청렴’하다 했고 농부가 지어 놓은 농작물을 해하지 않는다 해서 ‘염치’가 있다고 했다. 자기가 살 집을 따로 짓지 않으므로 ‘검소’하고 철에 맞추어 허물을 벗고 어김없이 울며 아울러 자신이 죽을 때 남을 흠하지 않고 스스로 떠나기에 ‘신의’가 있다고도 보았다. 한편 도교에서는 매미가 허물을 벗어 육체를 갱신하는 것으로 보고, 이를 도교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불사적 존재인 신선의 경지로 보았다. 이처럼 선조들은 깊은 의미가 있는 매미 형상을 즐겨 일상의 물건에 얹혀놓았다. 우연히 발견한 이 작은 매미 형상의 먹물 통은 내 책상 앞에 직립한 채 ‘오덕(五德)’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 박영택(1963- ) 성균관대 대학원 미술사전공 석사. 경기대 예술대학 교수. 『애도하는 미술』,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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