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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고교 중퇴하고 유통 거물 된 프랑수아 피노, ‘인터넷 세대 이후의 새 미술’ 꿈꾸다

이영란


 미술전문 매체 ‘아트리뷰’를 비롯해 ‘아트뉴스’, ‘아트+옥션’ 등이 앞다퉈 ‘세계 미술계를 움직이는 최고의 파워맨’으로 꼽는 프랑스의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 1936- ) 아르테미스(Artemis) 그룹 회장.
 올해 매출 60억 달러(6조8천억 원)가 예상되는 세계 1위의 미술품 경매사 크리스티의 오너이자, 명품왕국 케링(Kering)의 창업주인 그는 8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미술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다. ‘노익장’으로만 치부하기엔 무척 끈질기고, 더없이 전방위적인 행보다.
 올해 들어 피노 회장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일을 진두지휘했다. 전 세계 미술팬의 눈을 베네치아로 쏠리게 했던 데미안 허스트의 시끌벅적한 ‘믿을 수 없는 호(號)에서 인양된 보물들(2017.4.9-12.3)’에 거액을 쏟아부으며 독려한 것이 우선 눈길을 끈다.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어마어마한 규모의난파선 컴백쇼는 피노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팔라조그라시와 푼 타델라도가나미술관을 장장 8개월이나 장식하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언론과 비평가들이 작품에 대해 따갑게 비판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쇼는 엄청난 흥행을 거뒀다. 피노의 미술관에는 역대 최대의 관람객이 몰려들며 ‘미술전시회도 때론 할리우드 볼거리처럼 입을 쩍 벌어지게 한다’는 점을 입증했다.



프랑수아 피노


피에 몬드리안, Tableau Losangique Ⅱ, 1925, 피노 컬렉션


 흥미로운 사실은 작품판매액이 조(兆) 단위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750억 원의 제작비도 놀라웠지만 한 건의 전시로 조(또는 수십조) 단위 매출을 기록했다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 비밀은 ‘영리한’ 허스트가 189점의 출품작을 산호, 보물, 복제라는 버전 아래 점당 3점씩 뽑아냈기 때문이다. 카라바조의 그림(1595년 작)을 조각으로 패러디한 <메두사>의 경우 값이 400만 달러(45억 원)였는데 모든 버전이 팔린 것은 물론, 2점의 AP(작가보유분)까지 팔라는 성화가 이어졌다는 후문이다. 케이트 모스의 얼굴을 한 <스핑크스>, 금 세공 작품인 <원숭이> 등 컬렉터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조각들이 적지 않았던 데다, 평균가격 대가 100만-500만 달러를 호가해 총매출은 훌쩍 뛸 수밖에 없었다. 작품판매는 화랑인 가고시안과 화이트큐브가 했지만 이 모든 것을 내다보고 진짜와 가짜, 고대와 현재를 넘나드는 ‘로드쇼’의 장(場)을 마련한 것은 피노였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 세대 이후의 미술’을 꿈꿔왔던 그의 통찰력과 배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피노 회장은 6월에도 빅 뉴스를 터뜨렸다. 파리 중심부 레알 지역의 옛 상업거래소(Bourse de Commerce) 건물을 현대미술관으로 만들겠다는 소식이었다. 이번에도 안도 다다오에게 건축 디자인을 맡긴 그는 개관 시점을 2019년으로 잡았다. 상업거래소는 파리에서도 손꼽히는 역사적 건물로, 루브르와 퐁피두가 지근거리에 위치해 접근성도 뛰어나다. 파리 시장은 “현대미술이 취약했던 파리에 새로운 심장이 될 것”이라며 반겼다. 팡테옹 형태의 건물에 미술관을 들이는 데는 10억 유로(1조3천억 원)가 투입될 예정이다.
 피노는 원래 파리 세갱섬의 옛 르노자동차 부지에 현대미술관을 지을 생각이었다. 1999년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일을 추진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뜨뜻미지근한 대응에 분개해 2005년 베네치아로 기수를 돌렸다. 이탈리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피노는 자신의 소장품을 팔라조그라시(2006년 개관)와 푼타델라도가나(2009년)에 풀어놓았다. ‘Post-Pop’, ‘피카소 1945-48’, ‘루돌프 스팅겔’전 등 메가톤급 특별전도 선보였다. 2013년에는 공연장과 갤러리를 겸한 테아트리노(Teatrino)도 오픈했다. 이 공간에선 매년 150건의 이벤트가 열린다.
 그런데 자신의 오랜 라이벌인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이 2013년 파리 불로뉴 숲에 초현대식 미술관을 개관하고, 연간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을 동원하자 마음이 바뀌었다. 가슴 속 숙제로만 남겨뒀던 ‘파리 미술관’을 위해 다시 팔을 걷어붙인 것. 현재 3,500점에 달하는 자신의 컬렉션의 규모와 질, 혁신성과 파괴력은 아르노를 가뿐히 누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련되고 멋진 미술을 추구하는 아르노와는 궤를 달리하며, 파격적인 미술로 세상(뉴욕, 런던)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포부도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미술, 그렇게 나른한 게 아니거든. 예측할 수 없고, 한계가 없어야 진짜지’라고 외치고 싶을 것이다.

 피노는 또 루브르 분관이 세워진 프랑스 북부도시 랭스에 작가들을 위한 아트 레지던시도 조성했다. 전 세계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매년 후보를 선발해 랭스 작업실로 초대하고 있다. 2015년에는 언론인이자 미술저술가였던 피에르 덱스(Pierre DAIX,1922-2014)를 기리는 미술상도 제정했다.
 이처럼 미술과 관련해 많은 일(주 업무는 크리스티를 챙기는 것)을 하는 그이지만 서른 살이 되기까진 미술관에 가본 적이 없던 사람이다. 예술과 담쌓고 지낸 청년이었다. 프랑스 서북부 브리타니에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난 피노는 고교를 중퇴하고 아버지 일을 도왔다. 공부엔 소질이 없었지만 사업능력은 남달라 1962년 목재 및 건축자재 업체를 설립해 알짜 기업으로 키웠다. 이후 가구가전 유통업체 콘포르마, 통신판매업체 라흐두뜨, 프랭탕백화점을 인수·합병하며 유통 거물로 급부상했다. PPR의 탄생이었다. 1993년에는 와인 명가 샤토 라투르도 사들였다.
 피노 회장이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구찌를 둘러싸고 아르노 회장과 피 튀기는 인수합병전을 벌이다 결국 2001년 구찌를 전격 인수하면서다. LVMH를 제치고 구찌를 손에 넣은 뒤로 PPR은 입생로랑,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 명품브랜드를 연달아 인수했다. 대신 프랭탕과 라흐두뜨를 매각해 럭셔리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췄고, 그룹명도 케링(Kering)으로 바꿨다. 현재 피노와 피노 패밀리의 자산은 243억 달러다.


마르샬 레스, Radieuse des nuages, 2012, 피노 컬렉션


유럽을 대표하는 부호답게, 또 크리스티의 오너답게 피노의 컬렉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소장품 목록에는 몬드리안, 피카소, 아그네스 마틴, 앤디 워홀, 사이 톰블리, 게르하르트 리히터, 리차드 세라, 무라카미 다카시, 신디 셔먼 등 유명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중국 작가 황용핑, 쩡판츠의 작품도 수집했고, 한국 작가로는 이우환의 작품을 수집했다. 3,500점에 달하는 피노 컬렉션의 재화적 가치는 12억5,000만 유로(1조 6,000억 원)로 추정된다.
피노의 본격적인 컬렉션은 피에 몬드리안에서 출발한다. 199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몬드리안의 <Tableau Losangique II>를 880만 달러에 낙찰받은 후 피노는 가공할만한 속도로 작품수집에 나섰다. 앉으나 서나 미술 생각만 했고, 1998년에는 아예 크리스티를 인수해버렸다.
그는 아트페어 보다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찾는 걸 더 좋아한다. ‘의외의 수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팝아티스트 마르샬 레스(1936- )가 좋은 예다. 그는 “앤디 워홀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작가인데 이슈가 되지 못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스튜디오에 잔뜩 쌓여있는 레스의 작품 중 대작 위주로 작품을 구입한 피노는 2015년 팔라조그라시에서 작가를 제대로 조명하는 개인전을 개최했다. 또 베트남 출신의 덴마크 작가 욘보, 프랑스 작가 클레르 타부레 같은 의외의 작가에게도 늘 눈을 열고 있다. 그룹의 홀딩컴퍼니 이름을 아르테미스로 지었다. 그리스신화 속 여신인 아르테미스는 은활과 금화살을 들고 사슴과 곰을 사냥한 다. 풍요를 상징하는 활달한 여신처럼 그 역시 활기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경영권은 아들에게 넘겼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크고, 혁신적인 그림을 그리며 예술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 그 나이쯤 되면 ‘뒷방 늙은이’가 될 법하건만 앙드레 말로의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빠른 통로’라는 말을 아로새기며 불철주야 뛰고 있다. 그는 파리의 미술관을 ‘엘리트 미술관’이 아닌, 도시근교 빈민과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까지 품는 미술관으로 만들 예정이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냐는 질문에 피노는 “내 이름보다는 오늘 우리의 활동이 역사에 ‘예술을 위한 진정한 노력’으로 기록됐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뼛속까지 장사꾼이었던 사람은 미술을 만나 이렇게 달라졌다. 예술이 가져온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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