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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계가 주목하는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컬렉션은 초특급+소박함 넘나들다

이영란


오프라 윈프리


자신의 이름을 내건 TV 토크쇼로 월드 스타가 된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 1954- )는 타고난 진행 능력과 유머 감각, 왕성한 호기심으로 백인 남성이 지배하던 토크쇼 분야의 판도를 일거에 바꿔 놓았다. 저널리즘 경력은 부족하지만, 특유의 공감력으로 ‘오프라 윈프리 쇼’를 정상에 올려놓으며 ‘토크쇼의 여왕’에 등극한 것이다. 게스트들은 누구에게도 말 못 했던 사연을 그 앞에선 술술 공개하곤 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Ⅱ, 한 때 윈프리가 소장했다.


윈프리는 혹독한 가난과 고통을 딛고, 이제 이름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 인물이다. 그런 그가 미국 미술계의 유력 아트컬렉터라는 사실이 확인돼 화제다. 올 2월 블룸버그 통신은 “오프라 윈프리가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II>(1912)를 지난해 1억5000만 달러(한화 1,720억 원)에 중국 부호에게 팔았다”고 보도했다. 이 뉴스가 알려지자 “윈프리가 그렇게 대단한 그림까지 보유했던 거냐?”라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언론들은 윈프리가 클림트 작품 거래로 무려 700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고 전했다. 지난 2006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클림트의 <아델레…>는 8,790만 달러(한화 약 1,000억 원)에 팔렸는데 낙찰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10년간 걸작을 보유했던 윈프리는 화상인 래리 가고시안을 중간에 세워, 중국 금융재벌 류이첸 회장에게 그림을 넘겼다. 오프라 윈프리가 2006년 클림트의 <아델레…>를 살 때는 토크쇼 진행자로 최고 전성기를 보낼 때였다. 연 수입도 3억 달러에 육박했고, 전 세계 흑인 중 가장 돈이 많은 인사이기도 했다. 천문학적인 부를 창출하던 윈프리는 ‘미술시장에 좀처럼 나오기 힘든 클림트 그림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최고가를 불러 그림을 손에 넣었다. 푸른빛 기조의 이 아름다운 그림을 윈프리는 혼자만 감상하지 않고, 뉴욕 MoMA에 5년간 장기 임대하기도 했다. 시세차익을 누리긴 했어도 클림트 작품을 좋아하는 대중들에게 아끼는 그림을 공개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오프라 윈프리는 미술 컬렉션보다는 미국 곳곳에 멋진 저택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확인된 것만도 7곳이 넘는다. 캘리포니아의 해변 도시 산타 바바라의 몬테시토에 그림 같은 저택을 갖고 있고, 뉴저지의 알파인과 뉴욕 맨해튼에도 집이 있다. 일리노이의 시카고, 콜로라도의 텔류라이드, 하와이 마우이에도 저택을 보유 중이다. 중미 바하마에도 별장이 있다. 저택이 여러 채다 보니 그림도 많이 필요한 법인데, 그중에서도 윈프리가 좋아하는 것은 인물화다. 사람들과 많이 만나고 대화해야 하는 직업 때문일까? 그가 선택한 그림 중에는 인물화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그린 그림이 많다. 그 자신이 흑인 여성으로, 어렸을 때 많은 차별과 질시를 받고 자랐기에 ‘흑인의 삶과 역사를 다룬 작품’은 우선적으로 매입했다. 오늘날 미국의 흑인미술이 제법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의 완성도도 완성도이지만, 흑인 패트론들의 열띤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농구 스타 그랜트 힐과 가수 해리 벨라폰테는 열성적인 흑인미술 수집가다. 오프라 윈프리, 덴젤 워싱턴, 사무엘 잭슨, 스파이크 리 등 연예계 인사들도 똘똘 뭉쳐 흑인미술가들을 성원하고, 작품을 사주고 있다.


휘트필드 로벨, Having, 2000, 오프라 윈프리 소장


윈프리는 흑인 아티스트 중 휘트필드 로벨(Whitfield LOVELL, 1959- )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설치미술인 <Having>을 자신의 할리우드 사무실에 비치하고, 수년째 감상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걸 보여주겠다’며 사무실로 데려가곤 한다. 로벨은 미국 노예 해방기 흑인들의 사진을 기반으로 작업한다. 사진 속 인물을 낡은 목재에 목탄으로 그린 뒤, 그들의 삶과 연관된 옛 오브제를 곁들여 서사적 설치미술을 시도하는 것. 그의 작업은 흑인들의 참담했던 역사와 기억을 오늘로 불러내 강렬하게 메시지를 던진다. 윈프리는 흑인 여성 노동자 두 명이 그려진 로벨의 대작을 시카고에서 일할 때 사들였다. 그는 “이 흑인 여성들은 일이 무척 힘들었을 텐데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내게 많은 걸 일깨워준다”며 “할리우드로 사무실을 옮기며 가져왔는데, 앞으로도 영원히 곁에 둘 것”이라고 토로했다. 흑인미술, 나아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사회공헌을 위해 자신이 소장해온 미술품과 고가구를 종종 경매에 부치곤 한다. 기금을 조성해 교육을 못 받는 아프리카 흑인 여성을 돕는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경매에 나온 작품은 인물화와 풍경화가 주를 이룬다. 인물화 중에는 역시 흑인 여성을 그린 회화가 많다. 리차드 에드워드 밀러의 누드화 <The Red Scarf>, 호브세프 푸쉬맨의 초상화 <The Little Mother>는 윈프리가 각별히 아끼던 그림이다. 어린 흑인 소녀가 인형을 아기처럼 보듬고 있는 푸쉬맨의 그림은 어린 시절 극빈 가정에서 태어나 절망과 고통을 온몸으로 겪었던 윈프리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어머니가 아닌 할머니에게 맡겨져 자라 ‘모성’에 목말랐던 그가 무척 공감했을 법한 인물화다. 

윈프리는 미시시피주의 깡촌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위스콘신주 밀워키로 이주했는데 거듭된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홉 살에 사촌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고, 열네 살에 미혼모가 됐다. 그때 태어난 아들이 2주 후에 죽는 고통도 겪었다. 결국, 테네시주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아버지에게 보내졌다. 워낙 말재주가 있었던 그는 고교 때 흑인 라디오방송 리포터로 활약했고, 열아홉 살 때는 지역 저녁 뉴스의 공동앵커가 됐다. 이 무렵 ‘미스 블랙 테네시 선발대회’에 나가 우승하기도 했다. 테네시에서 낮 시간대 토크쇼를 진행하던 윈프리는 1983년 시카고로 스카우트돼 아침 토크쇼 진행자가 됐다. 그가 프로그램을 맡은 지 한 달 만에 시카고의 삼류 토크쇼는 시청률 1위를 찍었고, 1986년 ‘오프라 윈프리 쇼’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국으로 송출되기 시작했다. 방송과 영화를 아우르는 자신의 프로덕션 하포(Harpo)를 설립한 윈프리는 친근한 ‘고백’ 형태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창안하며 토크쇼를 대중화시켰다. 그가 진행하는 토크쇼는 25년간 정상을 지키며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게 됐고, 윈프리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우뚝 섰다. 영화에도 여러 편 출연한 그는 『타임』의 ‘20세기 영향력 있는 인물 100’과 『뉴스위크』의 ‘올해의 TV 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31억 달러의 자산을 소유(포브스 집계)한 그는 자서전에서 “고귀한 것들과 옳은 것, 그리고 삶의 진실을 추구한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흑인 여성이지만 윈프리는 ‘마야 안젤루(1928-2014)가 있었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며 자신의 멘토에게 공을 돌리고 있다. 그가 흠모하는 마야 안젤루는 고통으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딛고, 아름답고 숭고한 시와 소설을 남겨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최고의 영예 시민상인 ‘자유 메달’을 받았다. 흑인여성계의 정신적 지주인 안젤루를 위해 윈프리는 많은 일을 벌였다. 페이스 링골드라는 흑인 섬유예술가에게 의뢰해 안젤루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은 퀼트 회화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최근 열린 자선경매에서 46만 달러에 팔렸다. 안젤루 역시 생전에 아프리카계 아티스트를 꾸준히 지원하며 많은 작품을 컬렉션했다. 

윈프리 주위에는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데이비드 게펜을 비롯해 아놀드 슈왈제네거 등 유명인사들이 즐비하다. 특히 게펜은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컬렉터로, 윈프리에게 적잖은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윈프리는 초특급 작품과 소박하기 짝이 없는 작품 사이를 수시로 넘나든다는 점이다. 게펜이 명망 있는 블루칩 작가에 올인하는 것과 달리, 윈프리는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그림이면 대환영이다. 그것이 다소 촌스럽더라도 인간의 진실을 담았다면 서슴없이 지갑을 연다. 하와이 마우이의 별장 거실에 걸린 토마스 하트 벤톤의 <워터보이>가 이를 잘 말해준다. 낡은 옷을 입고 양동이에 물을 따르는 소년을 형상화한 이 소박한 그림은 일상의 소중함을 차분히 일깨운다. 독실한 침례교인으로서 윈프리는 인간의 소명의식을 담은 그림을 계속 수집할 것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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