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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아내 반대에도 컬렉션에 열 올리던 브래드 피트, ‘이혼 통보’에 조각으로 외로움 달래다

이영란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는 미술품 수집에 심취해 있는 유명인사들이 꽤 많다. 토비 맥과이어, 조니 뎁, 브래드 피트, 마돈나, 오프라 윈프리는 ‘톱 컬렉터’ 대열에 이름을 올린 지 오래다. 그 가운데 브래드 피트(Brad PITT, 1963- )는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아트교(敎) 열혈 신도’다. 그는 틈만 나면 미술계 인사들과 어울리고, 아트바젤(스위스)과 아트바젤 마이애미(미국) 같은 특급 페어는 해마다 빼놓지 않고 찾는다.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미술 현장을 앞집 드나들듯 하며 현대미술의 경향을 살피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수집하는 것이다. 구겨진 셔츠에 낡은 청바지, 선글라스와 플랫캡으로 미모를 최대한 감췄는데도 용케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성가신 게 문제지만 현대미술과의 만남은 늘 즐겁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1년 전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지난해 9월, 띠동갑인 아내 안젤리나 졸리(1975- )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으며 모든 게 헝클어졌다. 졸리가 캄보디아에서 입양한 장남 매독스를 잔뜩 취해 있던 브래드 피트가 전용기 안에서 폭행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경찰로부터 아동학대 여부를 조사받고 무혐의 판정을 받긴 했으나, 피트는 6명 자녀의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그 뒤 브래드 피트는 은둔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트페어 참관은 물론이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담을 쌓고 지냈다. 자신이 제작하거나 주연한 영화의 시사회에만 간신히 얼굴을 내밀 뿐 두문불출 중이다. 심지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만나자고 찾아왔을 때도 자리를 피했다. 
미술계에서는 피트 부부의 아트 컬렉션이 어떻게 처리될지가 관심사다. 특히 메이저 경매사들은 혹시라도 매물로 나올 경우를 대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산분석기관인 웰스-엑스(Wealth-X)는 ‘2015 할리우드 톱 아트컬렉터’ 중 7위에 오른 피트 부부의 작품 평가액을 2,500만 달러로 추산했다. 그러나 온라인매체 레이더는 작년 5월 “브래드 피트가 LA 서부 포모나의 ‘DIGS모던’이란 앤틱 전시관에서 1시간 동안 무려 3,300만 달러 어치의 예술품과 가구를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DIGS모던 사장의 일방적 주장이어서 신빙성이 떨어지긴 하나 피트 부부의 아트 컬렉션이 2,500만 달러는 넘지 않을까 추정해 보게 한다. 
이날의 ‘광폭 쇼핑’이 남편의 점증하는 수집벽을 달가워하지 않던 졸리를 더욱 기함하게 했을 수 있다. 몇 달 후 졸리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며 ‘극복할 수 없는 성격 차’를 내세운 것도 십분 이해가 된다. 2008년 한 타블로이드 매체는 “졸리는 남편인 피트가 작품 수집에 주기적으로 소비하는 동전의 양이 어마어마한 것에 소름 끼쳐 한다”며 “이제 그것들을 전부 기부하고,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피트는 디자인바젤에서 30만 달러 짜리 아르데코 테이블을 사서 졸리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지구촌 기아 문제와 분쟁 지역 아동 문제 등에 관심을 쏟으며 UN 난민구제 친선대사로 활동 중인 그녀가 호사스러운 테이블을 과연 반겼는지 궁금하다. 한 지붕 아래서 한솥밥을 먹으며 살았지만 두 사람은 이렇듯 지향점이 너무도 달랐기에 그 간극이 컸을 듯하다.
결국, 이 부부의 컬렉션은 남편이 주도했음이 확인됐다. 아내가 난민 구제 활동에 바빴다면, 남편은 취미인 예술 탐험에 바빴던 것. 피트는 현대미술과 함께 아르데코 가구와 근현대 가구, 디자인 오브제를 두루 좋아한다. 매년 아트바젤을 찾는 슈퍼리치들이 메인 쇼만 둘러보는 데 반해, 피트는 ‘디자인바젤’에도 꼭 들러 가구와 디자인 용품을 살펴보곤 했다. 
지난 2009년 피트가 한국의 도예가 이헌정의 ‘아트벤치’를 구입한 곳도 디자인바젤이다. 브래드 피트가 작품을 수집하는 바람에 이헌정은 단박에 명성을 얻었다. 같은 날 피트는 장진 경희대 교수의 비색이 감도는 청자 대접을 보고 “어떤 용도냐”고 물었다. 서미갤러리 측이 “샐러드 볼로 쓰라”고 하자 그것도 구매했다. 


뱅크시, Love is in the Air(Unsigned), 2005, 리오넬갤러리, 브래드 피트 소장


브래드 피트는 작품을 살 때, 작가의 명성이라든가 향후 돈이 되느냐의 여부보다 ‘마음에 끌리느냐’에 초점을 둔다. 주제가 뚜렷하고, 표현이 남다른 작품을 좋아한다. 컬렉션 리스트를 보면 수긍이 간다. 2007년 런던 라자리데스화랑에서 100만 파운드(당시 약 2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주고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Banksy)의 작품들을 산 게 그 예다. 뱅크시의 명성이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을 때, 할리우드 스타가 어둡고 논쟁적인 작품을 샀다는 것은 이채로운 일이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으로, 정치 사회적 논평을 작업 속에 심어온 뱅크시를 피트는 오랫동안 흠모하고 응원해왔다.
2009년 아트바젤에서는 동독 출신의 화가 네오 라우흐의 <병참기지(Etappe)>를 100만 달러에 사들였다. 압제정권하 인간의 삶을 시니컬하게 담아낸 네오 라우흐의 작품은 개인이 수집하기에는 좀 난감한 구석이 있다. 헌데 페어에 동행했던 미국의 부동산 거물 브로드 부부가 “우리는 라우흐 작품을 여러 점 갖고 있지만, 당신이 안 산다면 사겠다”고 해 결단을 내렸다. 훗날 피트는 “정말 잘한 결정”이라며 노부부에게 감사를 표했다고 한다. 


네오 라우흐, 병참기지, 1998


피트는 버려진 매트리스를 사실적으로 그린 에드 루샤의 회화도 수집했다. 그는 이 작품을 사기 위해 루샤의 개인전이 열리는 독일 베를린까지 날아갔다. 이밖에 리처드 세라, 야요이 쿠사마, 마르셀 드자마, 스쿠니의 작품을 컬렉션했다. 
피트와 졸리는 2014년 남프랑스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당시 영국의 거리화가 돔 패틴슨의 연작이 결혼식장인 샤토 곳곳에 걸려 분위기를 돋웠다. 커플은 식후에 이를 선물로 받았다. 피트와 졸리는 예술가와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다. 호주 출신의 원주민 예술가 비비 바르바를 LA 집에 초대해 아들, 딸들에게 미술수업을 받도록 했다.
가도 가도 옥수수밭이 끝없이 이어지는 미국 중부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에서 성장한 피트는 보수적인 침례교도였던 부모 밑에서 자라 예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친은 트럭회사 CEO, 모친은 고교교사여서 가정은 유복했지만 솟구치는 끼를 어쩌지 못했다. 그래서 빠져든 게 영화였다. 그래서 대학(미주리대 저널리즘 전공) 졸업을 수개월 앞두고 무작정 할리우드로 떠났다. 출세작 <델마와 루이스>의 무일푼 미남 청년처럼 할리우드를 배회하던 그는 조각처럼 생긴 외모 덕에 금방 일을 구했다. 그리곤 승승장구했다. 
기네스 펠트로 등 여배우와 염문을 뿌리던 피트는 제니퍼 애니스톤을 거쳐, 안젤리나 졸리를 만나면서 성숙해졌다. 특히 졸리는 그보다 12살이 어리지만 인권운동가이자 의식 있는 스타로서 존경심이 우러나오게 했다. 2006년 두 사람은 ‘졸리-피트 재단’을 설립하고 인도주의 운동을 펼쳤다. 캄보디아, 아이티 등 분쟁지역 어린이를 돕는 일에 앞장섰고, 매년 적지 않은 돈을 여러 단체에 기부했다. 두 스타의 결합은 지구촌에 ‘브란젤리나 열풍’을 퍼뜨렸는데, 특히 6명이나 되는 자녀(3명은 졸리가 낳았다)와 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커플은 ‘좁히기 어려운 견해차’ 때문에 결국 깨지고 말았다. 
술과 담배, 마리화나에 탐닉하던 브래드 피트는 이혼 소송 후 이를 악물고 모든 걸 끊고, 하루 15시간씩 조각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잘 알고 지내던 영국 조각가 토마스 하우즈아고의 LA 스튜디오로 매일 출퇴근하며 흙과 석고, 철근을 주무르고 있다. 건축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던 사내는 사무치게 그리운 아이들을 떠올리며 조각 작업에 몰두 중이다.
사실 피트의 예술작업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르데코 가구 마니아였던 그는 2008년부터 가구디자인에 참여했다. 유명 가구디자이너인 프랭크 폴라로에게 맞춤 가구를 주문했던 그는 폴라로로부터 협업을 제안받았다. 피트가 10년간 그린 가구스케치를 접한 디자이너는 “놀랍다. 당신은 디자인을, 나는 제작을 하겠다”고 나선 것. 결국, 2012년 ‘피트-폴라로’라는 브랜드로 테이블, 소파, 침대가 첫선을 보였고, 얼마 전에는 새 디자인의 2차 라인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피트는 조각에 도전하고 있다. 슬픈 음악을 들으며 작업에 집중하는 그에게 “졸리가 이혼소송을 중지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결합 소식도 솔솔 퍼지고 있다. 예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이 꽃미남은 과연 예술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두 스타는 간극을 좁힐 수 있을까.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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