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9)학자 꿈꾸던 쿠바계 부동산왕(王) 페레즈, 라틴미술 진흥의 리더가 되다

이영란

이 남자의 본래 꿈은 학자였다. 그러나 백인 주류사회로의 진입이 쉽지 않아 방향을 틀었다.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 미국 이주민)이었던 그는 마이애미의 도시설계자가 돼 도시를 효율적으로 구획하고, 개발하는 일을 했다. 그리곤 여세를 몰아 주택분양사업에 뛰어들어 대성했다. 그의 이름은 호르헤 M. 페레즈(Jorge M. PEREZ, 1949- ). ‘마이애미 부동산왕’, ‘남부의 트럼프’로 불리는 남자다.

호르헤 M. 페레즈


부동산 개발로 슈퍼리치가 된 페레즈는 자신의 피 속에 면면히 흐르는 쿠바와 라틴아메리카 DNA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숨막히게 바쁜 일정에도 라틴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살펴보고, 이를 수집하는 일을 40년 가까이 병행해 오늘날 ‘최고의 라틴미술 컬렉션’을 완성했다. 2013년 페레즈는 2,000만 달러에 달하는 자신의 수집품을 마이애미미술관에 기증했고, 2,000만 달러의 운영자금도 쾌척해 마이애미를 ‘라틴미술의 보고(寶庫)’로 만들었다. 미국 내에 슈퍼컬렉터는 많고 많지만, 중남미 미술에 집중한 컬렉터는 없기에 그의 행보는 도드라진다.

페레즈는 194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스페인계 쿠바인이었다. 사업가였던 부친은 카스트로가 혁명을 일으키자 빈털터리 상태로 아르헨티나로 망명했고, 이후 콜롬비아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다. 19살 때 미국 땅을 밟은 페레즈는 롱아일랜드대와 미시간대 석사를 졸업했다. 학업을 미국 동북부에서 마쳤기에 몇몇 직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페레즈는 플로리다로 내려왔다. 브루클린과 미시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는 게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틴계가 전체 인구의 50%에 육박하는 플로리다가 고향처럼 편했던 것이 남부를 택한 진짜 이유다.

자애로웠던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마이애미에서 일을 구한 페레즈는 다운타운을 열심히 누볐다. 그런 그의 패기와 명석함에 반한 콘도개발업자 스티븐 로스가 공동창업을 제안해 페레즈는 1979년, 서른의 나이에 회사 Related co.를 만들었다. 두 사람은 저소득층을 위한 싸고, 쓸모있는 아파트를 대거 분양했는데 이 전략이 주효했다.

저가주택 분양과 임대사업으로 기반을 확실히 다진 페레즈는 이후 수익을 10배 이상 더 올릴 수 있는 고급아파트 건축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역시 대성공이었다. 지난 40년간 그가 플로리다와 남부 일대에 지은 아파트는 9만 채가 넘는다. 초고층의 럭셔리한 복합타워도 50동 넘게 건립했다. 이 타워에 페레즈는 미술관급의 수준 높은 예술품을 설치했다. 허름한 장식용 그림을 내건 다른 업자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음은 물론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한 때 3건의 큰 프로젝트를 시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 실업계에 보란 듯 진입했지만 페레즈의 마음 한쪽에는 ‘남미 출신으로서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잃어버려선 안된다’는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택한 길이 ‘중남미 미술 컬렉션’이었다. 목표가 정해지자 라틴의 역사와 문화가 투영된 예술품을 곧바로 사 모으기 시작했다. 멕시코 거장 디에고 리베라의 초기작 <정물>(1908), 남미에 근대주의를 전파한 우루과이 작가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의 추상화(1949)가 컬렉션 리스트에 올랐다.

Glexis NOVOA, Revolico, 2014, 페레즈 컬렉션


칠레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로 1930-40년대 뉴욕화파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로베르토 마타의 추상 작업(1938)과 아르헨티나 출신의 조각 거장 훌리오 레 파르크의 키네틱아트도 사들였다. 프리다 칼로, 베아트리스 곤잘레스의 작품도 포함했다. 2000년대부터는 아버지의 나라 쿠바의 작가들에게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함은 물론, 좋은 작품을 지속해서 매입했다. ‘20세기 쿠바미술’을 대표하는 위프레도 람의 1939년 작 <흰색 테이블>, 50만 개의 낚싯바늘로 바다를 표현한 요안 카포테의 <섬>은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글렉시스 노보아, 호세 베디아의 작품도 사들였다. 그는 자신의 ‘쿠바 컬렉션’ 중 핵심작 170점을 지난 2012년 마이애미미술관에 기증했다. 이후로도 펀드를 만들어 미술관이 쿠바 아티스트들의 중요한 작품을 추가로 매입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마이애미 시 당국은 2013년 ‘마이애미미술관’을 ‘페레즈마이애미미술관’(PEREZ Art Museum Miami, 약칭 PAMM)으로 개칭했다. 마침 시가 비스케인 만(bay)을 새로운 예술 허브로 조성하기로 하고, 스타 건축가 헤어초크 & 드 뫼롱에게 의뢰해 새 미술관을 건립 중이어서 타이밍도 맞았다. 그러나 실은 워낙 방대한 규모로 추진되던 미술관 신축이 2011년 말 자금난에 봉착하자, 시 당국이 페레즈에게 SOS를 쳤고, 그가 거액을 내놓게 된 것이다.

그러자 미술관을 후원해온 몇몇 운영위원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국유지에 세워지는 공립미술관에 기부자 이름을 붙이는 건 온당치 않다”며 이사회를 탈퇴했다. 훗날 페레즈는 “그것은 엄청난 기쁨이자, 책임감도 던져주었다”고 토로했다. 작년에 그가 PAMM에 5,000만 달러를 추가로 내놓은 배경을 헤아려보게 하는 말이다.

어쨌거나 헤어초크 & 드 뫼롱이 지은 PAMM은 전문가들로부터 “지난 20년간 미국에 지어진 미술관 중 최고”라는 평을 받으며 마이애미의 위상을 올려놓고 있다. 마이애미의 자연과 기후를 잘 반영한 데다, 안과 밖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열린 미술관’이어서 호응이 뜨겁다. 라틴아트 기획전을 필두로, 중국 작가 아이 웨이웨이 개인전, 사라 오펜하이머 공간설치전 등 괄목할만한 전시를 꾸민 것도 한몫했다. 이로써 미국 내 5대 도시의 하나이면서도 제대로 된 미술관이 없었던 도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특히 다른 도시에는 없는 중남미 미술로 차별화를 꾀하게 됐다. 페레즈는 미술관에 컬렉션을 기증한 후 한결 홀가분해진 심정으로 개인 컬렉션의 방향을 넓혀가고 있다. 라틴 아트에 집중하느라 시선을 주지 못했던 작가들, 이를테면 알렉스 카츠, 케네스 놀랜드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사들였다.

『 VOGUE』 매거진을 통해 공개된 그의 마이애미 저택은 거실 서재 식당 침실 수영장 등은 물론이고 계단 밑, 화장실에까지 미술품이 걸리지 않은 곳이 없다. 부부침실에는 이탈리아 산 지미냐노의 화랑에서 구입한 키키 스미스의 자전적 드로잉이 걸려 있고, 거실에는 스페인 출신의 화가 세쿤타노 에르난데스의 추상화가 걸려 있다. 에르난데스는 페레즈 부부가 최근 발굴한 작가로, 사이 톰블리를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필선이 특징이다. 페레즈는 “발견의 기쁨이야말로 아트컬렉션의 최고 매력”이라고 밝혔다. 또 다미안 오르테가, 안토니 곰리, 조르조 데 키리코의 조각이 저택 곳곳에 놓여 있다. 

이 중 페레즈가 가장 아끼는 작품은 이탈리아 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청동 조각 <고고학자>이다. “이 작품은 피카소에 필적하는 걸작이다. 순수하고, 클래식하다. 이탈리아 해체주의가 멋지게 응축됐다”는 게 페레즈의 평가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예술과 사업, 양쪽에서 열정이 도무지 식을 줄 모르는 그는 미술품을 음미하고. 수집하는 것이 ‘개인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아름다운 작품도 물론 좋아하지만, 미술이 인간의 가치관이며 목표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꿔주기에 더 좋아한다. PAMM이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에 큰 비중을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호아킨 토레스 가르시아, Construction with Two Masks, 1949, 페레즈 컬렉션


페레즈는 현대미술이 기업 경영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란다. 이같은 신념에 따라 그는 라틴 아트는 물론이고, 개념미술 영상 벽화 미니멀리즘 설치미술까지 전방위적으로 수집하고 있다.

예술로 인해 스스로가 변해가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 가장 흥미롭다는 이 슈퍼리치는 ‘세계 각국의 미술관과 라틴아트를 매개로 네트워킹하는 것’이 종국적인 꿈이다. 중남미 미술에 관심이 높은 미술관과 보다 적극적으로 연대할 계획이다.미국, 영국, 독일, 그리고 아시아의 미술이 전 세계를 강타하며 이슈를 만들었으나 라틴아메리카 미술은 여전히 미답지로 남아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페레즈는 더욱 의욕에 차있다. 그 미답지를 제대로 선보일 전문컬렉터로서 앞으로 해야 할 일, 가야 할 길이 엄청나게 펼쳐져 있어 설렌다는 것이다. ‘라틴아트 전도사’의 향후 도전이 어떤 결실을 볼지 궁금하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