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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GAP스토어 장식 위해 시작한 컬렉션, 샌프란시스코를 예술거점으로

이영란

  
좌) 도널드 도리스 피셔 부부
우) 로이 리히텐슈타인, Figures with Sunset, 1978, 271.78×424.18cm, 피셔 컬렉션


도널드 피셔(Donald FISHER, 1928-2009, 이하 돈 피셔). 이 사람은 좀 별난 사람이다. 아니, 까다롭다고 하는 게 더 맞을지 모르겠다. 

오늘날 전 세계 90개국에 3,700여 개 매장이 포진해 있는 미국의 패션브랜드 ‘GAP’을 만든 돈 피셔의 창업은 아주 사소한 불만에서 비롯됐다. 낡고 허름한 건물을 사서 말끔히 수리한 후 팔거나 세를 주던 그는 자신의 새크라멘토빌딩에 입점한 리바이스 매장에서 청바지 몇 벌을 샀다. 작업복으로 입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길이가 안 맞았다. 그가 원하는 치수는 34-41이었는데, 매장엔 34-40, 34-42 사이즈 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청바지를 들고 백화점을 찾았으나 마찬가지였다. 꼭 맞는 사이즈로 교환하려면 사유서를 써서, 우편으로 보내야 했다. 참으로 불편했다. 그래서 그는 리바이스와 접촉해 ‘리바이스가 내놓는 모든 스타일, 모든 사이즈의 청바지를 구비한 매장을 내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사람 같으면 바지 끝단을 조금 줄이거나, 좀 긴 대로 입었을 텐데 말이다. 

1969년, ‘the Gap’이라는 이름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한 돈의 패션유통업은 예상을 뒤엎고 대박을 터뜨렸다. 마흔이 되도록 패션의 근처에도 안 가봤지만 ‘고객을 한 곳에서 편하게 쇼핑하게 하자’는 전략은 주효했다. 12-25세인 주 고객층을 공략하기 위해 음반을 함께 취급하고, 인테리어도 경쾌하게 해 호응을 이끌어냈다. 6,300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은 불과 6년 후(1975년) ‘1,000억 원 매출’로 급성장했다. 사장 자신도 예상치 못한 실적이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당초 가게 이름이 ‘Pants&Discs(바지&음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아내가 ‘Generation Gap’에서 따온 ‘the Gap’을 결사적으로 고집했다. 젊은 층에 어필하려면 이름이 좀 남달라야 한다면서. 돈은 “그때 아내 도리스 말을 듣지 않았다면 어찌할 뻔 했겠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는 후문이다. 오늘날 세계 캐주얼 패션시장을 주도하는 ‘GAP’의 출발은 이렇듯 조촐했다. 

돈 피셔는 원래 운동에 소질이 많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철제캐비닛을 제조하던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1928년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 수영과 수구로 이름을 날렸다. 자애로웠던 모친 일라인 피셔는 아들에게 “누구의 삶이나 다 소중하다.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면 ‘노’라고 하지 마라”고 가르쳤다. 남을 배려하는, 긍정의 삶을 강조한 것. 어머니의 금언은 돈의 뇌리에 또렷이 각인돼, 이후 늘 긍정바이러스를 퍼뜨리게 했다. 

버클리대를 졸업한 그는 유대교 모임에서 스탠퍼드대 경제학도였던 세 살 연하의 도리스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 그는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잘한 결정은 도리스와 결혼한 것”이라며 “진정한 소울 메이트”라고 고백하곤 했다. 실제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돈 피셔를 도리스는 안정감 있게 잡아주며, 동반자이자 사업 파트너로 맹활약했다. 남편이 패션비즈니스의 외연을 넓히며 경영에 박차를 가하는 동안 아내는 디자인과 머천다이징을 챙겼다.

패션센스가 남다르고, 현대미술을 좋아했던 도리스는 사업 초기부터 남편과 갤러리를 드나들었다. 온통 푸르딩딩한 청바지만 쌓여 있는 매장에, 산뜻한 그림을 내걸고 싶었던 것. 그렇게 판화로 시작한 미술품 수집은 1970년대 초 유화와 조각으로 확대되며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돈과 도리스 부부는 아트컬렉션에 있어 원칙을 정했다. 반드시 두 사람이 동의해야 산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미술평론가라든가 아트어드바이저의 코치를 받기보다, 발로 직접 뛰며 안목을 기르는 쪽을 택했다. 미술관과 화랑, 비엔날레와 아트페어를 어떤 커플보다 열심히 누볐다. 샌프란시스코는 뉴욕에 비해 첨단미술의 세례를 받기 어려운 환경인데, 오히려 그 부족함이 갈망이 돼 더 자주 현장을 찾게 만들었다. 매사에 절실함이 관건인 법이다. 탄탄한 실력을 갖춘 작가들과의 교류도 이어갔다. 로버트 마더웰, 루이스 네벨슨, 데이비드 호크니와 자주 만나 현대미술의 흐름을 파악해갔다. 

피셔 부부는 알렉산더 칼더, 솔 르윗, 엘스워스 켈리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특히 칼더의 작품은 1940년대 희귀작을 비롯해 1960-70년대 모빌과 스테빌, 회화 등 전 시기에 걸쳐 45점을 수집했다. 솔 르윗은 기하학적 형태를 탐구한 초기작부터 형태가 디렉션으로 변모한 후기작까지 총 24점을 수집했다. 솔 르윗에게는 대작 벽화를 따로 주문하기도 했다. 세련된 색면추상으로 유명한 엘스워스 켈리와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여러 점을 매입했다. 초기작부터 근작까지 대작 중심으로 10점이 넘는다. 

또 프랭크 스텔라의 작품도 괄목할 만 것들이다. 기하학적 선과 면을 끈질기게 탐구하던 스텔라의 1960-70년대 수작들과 이후 폭발적으로 바뀐 회화와 릴리프, 조각이 망라돼 작가의 예술궤적을 살필 수 있다. 로버트 라이먼, 아그네스 마틴, 에드 루샤, 조안 미첼, 필립 거스턴, 리처드 디벤콘의 작품도 컬렉션 리스트에 포함됐다.




게르하르트 리히터, Two Candles, 1982, 피셔 컬렉션


돈과 도리스 부부는 오늘날 아트마켓에서 최고의 블루칩에 해당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 앤디 워홀, 윌렘 드 쿠닝, 재스퍼 존스, 도널드 저드, 사이 톰블리의 작품도 여러 점씩 사들였다. 또 생존작가 중 가장 존경받고, 가장 작품값이 비싼 작가로 운위되는 독일의 게르하르트 리히터 작품도 23점이나 컬렉션했다. 리히터의 1960년대 회색조 인물화와 80년대 촛불 그림을 비롯해 바다 풍경을 깊이 있게 표현한 회화, 색채를 변주한 <256 colors>등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돈 피셔는 “지금이야 입이 벌어질 정도로 고가이지만, 우리가 이들 작품을 수집하던 1970-80년대에는 충분히 범접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살 걸 그랬다”고 토로했다. 한편 리처드 세라, 로버트 롱, 칼 안드레 같은 설치미술가들의 대표작과 시린 네샤트의 심오한 영상작품도 컬렉션했다. 이들 작품은 미술관 설립을 염두에 두고 수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피셔 부부의 컬렉션은 1960년대 이후 미국 현대미술이 주를 이룬다. 추상, 팝아트, 형상미술, 미니멀리즘까지 폭이 넓고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또 독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리히터, 폴케, 바젤리츠의 회화와 독일 현대사진가 베허부부, 거스키의 사진 등 독일미술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180여 작가 1,100점에 이르는 피셔 컬렉션은 개인의 현대미술 컬렉션으로는 세계 정상급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1,100여 작품들이 대부분 질적으로 고른 수준이고, 작가의 시기별 주요작이 망라돼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것이 돋보인다. 수집한 작품들을 GAP 본사 곳곳에 설치했던 피셔 회장은 컬렉션이 확대되자 미술관 설립을 구상했다.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국립공원 내 프레디시오가 부지로 떠올랐으나 환경보호론자들의 반대로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2008년 “피셔뮤지엄 건립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 MoMA를 비롯해 유명 미술관들이 컬렉션을 확보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상상 이상의 조건을 제시한 곳도 있었다. 그러나 3대째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업을 이어온 돈 피셔는 “어린 시절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해변서 수영하며 자랐고, 샌프란시스코에서 GAP을 만들고 키웠으니 작품도 이곳에 남아야 한다”며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SFMOMA)의 손을 들어줬다. 자신들의 컬렉션을 100년간 장기임대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돈 피셔는 협약식을 며칠 앞두고, 2009년 9월 타계했다. 

자칫하면 값진 컬렉션을 다른 도시에 빼앗길 뻔했던 SFMOMA는 피셔 컬렉션 등 여러 기증작을 공공에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 신관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마침내 도리스 피셔가 지켜보는 가운데 SFMOMA는 재개관식을 가졌다. 10층 규모의 신관이 더해지며 SFMOMA는 뉴욕MoMA에 비해 훨씬 넓은 전시실을 보유하게 됐다. 

닐 베네즈라 SFMOMA관장은 “돈 피셔는 떠났지만 그가 쌓아 올린 압도적 컬렉션은 많은 대중에게 영감을 선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업장에서 직원들에게 “바꾸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진다(Change or fail)”며 늘 변화를 강조하던 돈 피셔.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아마도 미술품에서 변화의 단초를 얻어내지 않았을까. 자칭 ‘비주얼 맨’인 그는 천상에서도 현대미술을 음미하며 바삐 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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