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5)카지노 황제 스티브 윈, 승부사답게 예술도 ‘걸작’만 공략

이영란

 
좌) 스티브 윈
우) J.M.W 터너, Giudecca, La Donna Della Salute and San Giorgio, 스티브 윈 소장

누구에게나 인생에 있어 운명적 순간은 있게 마련이다. ‘카지노 황제’ 스티브 윈(Steve WYNN, 1942- )에겐 대학 졸업을 앞둔 봄날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1963년 3월, 동부의 명문 펜실베니아대(유펜) 졸업반이었던 그는 예일대 로스쿨 입학허가를 받아두고 한껏 고무돼 있었다. 눈앞에 엘리트 코스가 펼쳐져 있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했다. 그런데 심장 수술을 받던 아버지 마이클 윈이 수술실에서 그만 숨을 거두었다. 마흔여섯이란 아까운 나이에 타계한 부친은 가족에게 빙고 게임장을 남겼다. 또 도박 빚 35만 달러도 남겼다. 장남이었던 스티브 윈은 예일대 진학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어받아야 했다. 가업이라 했지만, 이 도시, 저 도시 옮겨 다니며 빙고 게임을 펼치는 옹색한 사업이었다. 빚을 탕감하기 위해선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던 아들은 죽기 살기로 게임장을 운영해 일 년 만에 궤도에 올려놓았다.

오늘날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카지노계 전설’로 불리는 스티브 윈의 시작은 이렇듯 소박했다. 하지만 그의 저돌성, 치밀성은 때마침 휘몰아친 ‘라스베이거스 개발 붐’과 맞물려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왔다. 20여 년 만에 그는 라스베이거스를 주름잡는 슈퍼리치로 도약했다.

윈은 라스베이거스를 일확천금과 향락으로 대변되는 ‘도박 도시’에서, 엔터테인먼트 도시로 바꿔놓은 주역이다. 1990년대 그가 자신의 특급호텔인 미라지, 트래져아일랜드, 벨라지오에서 어마어마한 규모로 선보였던 화산쇼,해적쇼, 분수쇼는 사막 도시의 위상을 바꿔놓은 기념비적 공연이었다. 윈의 매머드 쇼를 벤치마킹한 호텔들의 시도가 흘러넘쳤고, 라스베이거스는 가족 단위 관광객이 모여드는 도시, 각종 이벤트가 줄을잇는 도시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는 환락의 도시를 ‘명품미술의 도시’로 각인시키기도 했다. 렘브란트, 베르메르, 루벤스, 세잔, 반 고흐, 고갱, 마네, 드가, 마티스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떡여지는 거장의 그림을 사들여 자신의 호텔에 전시했다. 윈은 호텔광고에 카지노를 부각시키기 보다 “반고흐, 세잔, 모네가 당신 곁에 옵니다. 특별손님 피카소, 마티스와 함께”라는 식으로 아티스트를 부각시켰다. 뮤지엄에서나 볼법한 명작들이 카지노호텔에 걸리니 당연히 화제가 됐고,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운집했다. 타고난 승부사였던 그는 아트컬렉션 또한 공격적으로 접근했다. 걸작의 힘을 꿰뚫었기에 이를 경영에 적극 활용했던 것.

스티브 윈이 수집한 작품은 대부분 유명한 작품들이다. 걸작도 여럿이다. ‘화제성이 없는 작품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이슈가 될 작품 위주로 수집하고 있다. 이를테면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유화 <처녀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이 대표적인 경우다. 베르메르의 걸작 <우유를 따르는 여인>,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의 파급력을 익히 알고 있던 윈은 2004년 소더비 경매에서 베르메르의 인물화를 3,000만 달러에 사들였다. 당시로선 엄청난 금액이었다. 미술관이 아닌 개인이 베르메르 유화를 매입한 것도 지난 80년 이래 처음이어서 큰 이슈가 됐다. 그는 이 작품을 윈라스베이거스뮤지엄에 수년간 전시했다. 그리곤 2008년, 미국의 금융투자자 토마스 캐플란(1962- )이 이끄는 라이덴컬렉션에 넘겼다. 네덜란드 미술 전문컬렉션이 보유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 것이다.

렘브란트, 팔을 옆구리에 올린 남자의 초상, 1658,
스티브 윈 소장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1890년에 그린 <밀짚모자를 쓰고 밀밭에 앉아있는 젊은 여자 농부>도 윈이 사들였던 작품이다. 이 그림에 매료된 그는 1997년, 4,750만 달러에 수집해 벨라지오호텔 갤러리에 내걸었다. 수년간 관광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반 고흐 인물화는 2005년,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브 코헨에게 팔렸다. 윈은 그림을 사기도 잘하지만, 팔기도 잘하는 컬렉터다. 렘브란트의 <팔을 옆구리에 올린 남자의 초상>은 2009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받았다. 당시 경매가 런던서 열렸던 탓에 그는 아내가 깰세라 욕실에 알람을 설치해놓고, 새벽 2시에 응찰을 했다. 결국, 추정가의 3배에 달하는 3,320만 달러에 렘브란트 초상화를 손에 넣었다.

하지만 스티브 윈의 수집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피카소의 <꿈(Le Rêve)>이다. 피카소가 1930년 서른 살 연하의 연인 마리 테레사를 몽환적으로 그린 이 그림을 윈은 2001년 익명의 수집가로부터 매입했다. 1997년 경매에서 4,800만 달러에 거래됐던 작품이니, 6,000만-7,000만 달러에 매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윈은 이 그림을 십분 활용해 ‘the Dream’이란 테마로 쇼도 만들고, 신축호텔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활용했다. 하지만 스티브 코헨이 <꿈>을사겠다고 끈질기게 매달리자 1억3,900만 달러에 팔기로 하고, 2006년 10월 노만 에프론, 바바라 월터즈 등 지인들과 마지막 파티를 열었다. 그런데 퇴행성 망막염을 앓고 있던 그가 자신의 팔꿈치로 명작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구멍은 엄지손가락 크기만 했다. 윈은 “오 하나님, 제가 무슨 짓을 한 건가요”라며 탄식을 내뱉었다. 이에 참석자들은 ‘이 건은 비밀로 하자’고 다짐했지만 1주일도 안 돼 알려지면서 그림은 더 유명해졌다. 이후 윈은 9만 달러를 들여 그림을 말끔하게 복원했고, 2013년 스티브 코헨에게 보여주었다. 작품상태에 만족한 코헨은 비교적 저렴한 금액인 1억5,500만 달러에 걸작을 사들였다. 윈이 캔버스를 찢지 않았다면 좀 더 받았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관측했다.

스티브 윈의 소장품 리스트에는 영국의 국민화가 J. M. W 터너의 풍경화와 모네의 <수련>, 드가의 <발레하는 소녀> 등도 포함돼 있다. 모두 유명한 그림들이다. 또 미국미술에도 관심이 많아 존 싱거 사전트의 그림도 매입했고, 제프 쿤스의 거대한 조각<튤립>, <뽀빠이>도 보유하고 있다. 하버드대 출신의 줄리안 해튼의 색채 추상도 수집했다.

어쨌거나 윈은 카지노가 도박만 하는 곳이 아니라,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업도 예술이다”라고 부르짖는 이 사업가는 2006년, 2010년 마카오에 윈마카오, 앙코르마카오호텔을 짓고, 미국에서 공수한 컬렉션을 내걸었다. 싱가포르에도 조만간 카지노호텔을 열 예정인 그는 중국 명대 도자기 등 아시아 고미술도 사들이고 있다.

스티브 윈은 카지노호텔이 종국적으로지향해야 할 모델로 디즈니테마파크를 꼽는다. 사람들에게 흥미와 새로움을 심어주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있어야 지속적으로 사랑받는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무모하다고 해도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사막과 간척지에 인공호수, 인공산, 식물원을 만들고 스펙타클한 쇼를 연출한다.

그의 이 같은 엔터테인먼트 지향성은 패밀리 DNA에서 비롯된 것이다. 윈의 조부인 제이콥 웨인버그는 리투아니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었는데 보드빌(순회오락장)에서 배우로 활약했다. 비록 삼류 연예인이었지만 넘치는 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간판쟁이로 시작해 빙고 게임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역시 재치가 넘쳤고, 승부욕이 강했다. 그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계속 차별을 당하자 1946년 집안의 성(姓)을 윈(WYNN)으로 개명했다. 아들 스티브 또한 부친을 닮아 타고난 승부사였다. 일요일이면 왕복 270마일이나 되는 아버지의 사업장을 찾아, 게임 현장을 말없이 관찰하곤 했다.

이후 부친이 갑자기 타계하자 게임장을 떠맡았고, 1967년에는 라스베이거스로 이주했다. 더 넓은 무대에서 마음껏 사업을 펼치고 싶어서였다. 주니어 파트너로 일을 배우기 시작한 스티브 윈은 라스베이거스 최고 은행가의 눈에 들며 탄탄대로를 걸었고, 이후 독자적인 갬블링 사업으로 세계 카지노계를 쥐락펴락하는 실력자가 됐다. 현재 자산은 24억 달러에 이른다.

자신이 꿈꾸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를 겁 없이 밀어붙이는 탓에 ‘미쳐도 단단히 미친 사람’으로 통하는 그는 오늘도 리조트를 최첨단과 초호화의 극단으로 끌고 가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골드를, 럭셔리를 사랑한다. 또 럭셔리의 정점에 ‘아트’가 있기에 예술도 사랑한다”는 스티브 윈. 걸작 예술에는 럭셔리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말로 설명키 어려운 ‘매혹’이 깃들어 있음을 이 뼛속까지 승부사인 인물은 간파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