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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VOGUE 거느린 잡지왕 뉴하우스 주니어 삶은 소박해도 名作, 블루칩만 수집

이영란

좌) S.I 뉴하우스 주니어, 우) 앤디 워홀, 오렌지 마릴린, 1964, S.I 뉴하우스 주니어 소장

세계 최고의 패션잡지 『보그』를 비롯해 상류층과 연예계 속내를 전하는 『베니티 페어』 등을 펴내는 미국 콩데나스트 사(社)의 S.I 뉴하우스 주니어(Samuel Irving NEWHOUSE Jr.)회장은 단촐한 삶을 고집하는 재벌 2세다. 트렌드를 리드하는 유명잡지 발행인 치고는 그의 삶은 무척 소박하다. 겉치레보다는 실용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로 늘 럭셔리한 패션을 떨쳐입는 안나 윈투어 『보그』 편집장이 주선한 파티에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할 때를 제외하곤, 그야말로 편안한 옆집 아저씨 차림이다. 안나 윈투어는 “우연한 곳에서 회장을 만났는데 후줄그레한 치노면바지와 스웨터 차림이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옷차림뿐만이 아니다. 2017년 2월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내 부호순위 41위에, 자산은 119억 달러(약 14조 원)인 이 슈퍼리치는 집도 대단치 않다. 주중에는 회사가 있는 뉴욕 유엔본부 근처 아파트에 살고, 주말에는 롱아일랜드 벨포트 주택에 머문다.

그런 그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 바로 미술과 영화다. 워낙 낯을 많이 가리는, 지독히도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사람들과 말을 잘 섞지 않지만 파리의 오르세미술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의 시초가 된 옵스큐라(Obscura) 필름이 무엇인지 물으면 서너 시간은 족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미술과 영화에 대한 지식은 거의 백과사전 수준이다.

주위에서 “사람을 워낙 꺼린다(He’s not a people person)”고 입을 모을 정도로 매몰차지만, 예술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열정적이다. 편집장들을 단칼에 내쫓고, 수익을 위해선 출판의 윤리 따위쯤 뭉개곤 하나, 미술·음악·영화에는 무한대의 애정을 쏟고 있다.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그림을 모았다. 『아트뉴스』가 1998년부터 해마다 선정해온 ‘글로벌 톱 200 컬렉터’에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렸다. 아트컬렉션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셈이다.

포브스』는 S.I 뉴하우스 주니어(Jr.)와 그의 아내 빅토리아가 수집한 미술품의 가치를 7억 달러로 집계했다. 그러나 워낙 대인기피형 오너인 데다, 단 한차례도 인터뷰에 응한 적이 없어 컬렉션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이 안 된다. ‘알려진 규모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는 근대와 현대미술을 두루 좋아한다. 몬드리안, 피카소, 고르키, 자코메티에서부터 잭슨 폴락, 앤디 워홀, 재스퍼 존스, 프랭크 스텔라, 제프 쿤스까지 컬렉션의 스펙트럼은 넓고 다양하다. 우수한 작품을 골라내는 선구안도 괄목할 만 하다. 뉴하우스가 수집한 프랭크 스텔라의 기하학적 추상화는 스텔라 초기작중 최고작으로 꼽힌다. 그는 이 대작을 뉴욕MoMA에 기증했고,미술관은 메인전시실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내걸고 있다.

뉴하우스 주니어가 미술에 빨려들게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러시아계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의 아버지S.I 뉴하우스 시니어(Sr.)는 고교 시절 법률회사에서 ‘오피스 보이’(使童)로 일하며 공부했다. 랍비였던 부친은 병약해 일찍 일을 놓아버렸고, 어머니가 세탁부로 일하며 8남매를 키웠다.

워낙 머리 좋고, 빠릿빠릿해 열여섯 살에 매니저로 승진한 뉴하우스 시니어는 회사가 떠안게 된 지역신문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고, 결국 오너가 됐다. 뒤이어 다른 신문사와 잡지사를 잇달아 사들이면서 자신의 Advance Publications를 미디어왕국으로 키웠다.

파블로 피카소, Man with a guitar, 1913, 뉴하우스 주니어 소장

무려 20여 종의 잡지와 신문을 거느리게 된 부친은 세계 최초로 체계적인 디자인 전략을 출판물 전체에 세련되게 구현한 선각자였다. 시각적으로 극도의 미감을 추구했던 부친의 유업을 이어받은 아들은 출판왕국을 명민하게 조련하며, 100여 종의 잡지와 신문, 디스커버리 채널 등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했다. 수줍음이 심해 어리버리했던 장남 대신, 부친은 활달한 차남을 대놓고 편애했다. 갈수록 반항심이 커진 아들은 대학(시라큐스대 저널리즘 전공)도 때려치우고, 미술과 영화에 빨려들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던 곳은 미술관과 화랑이었다.

초기부터 뉴하우스 주니어는 추상작품을 선호했다. 답이 똑 떨어지는 구상회화에 비해,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추상회화에 끌렸던 것. 그가 아트 컬렉터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재스퍼존스의 추상화 때문이었다. 1988년 뉴하우스는 소더비 경매에서 존스의 <False Start>(1959)를 1,700만 달러에 낙찰받았다. 이는 생존작가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비록 몇 년 후 연예계 거물 데이비드 게펜에게 그림을 넘기긴 했지만 이 뉴스로 유명컬렉터 대열에 진입했다.

잭슨 폴락의 액션 페인팅과도 인연이 깊다. 격렬하게 흩뿌려진 폴락의 추상화를 좋아했던 그는 1989년 소더비 경매에서<NO.8 1950>을 1,155만 달러에 사들였다. 제프리 다이치가 패들을 대신 들었는데, 쟁쟁한 입찰자들을 누르고 낙찰에 성공했다. 현재는 작품값이 7-8배 이상 뛰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뉴하우스는 잭슨 폴락의 대표작 <NO.5 1948>도 보유했었다. 폴락의 그림을 여러 점 갖고 있던 수집가로부터 <NO.5>를 매입했던 그는 이 작품 또한 게펜에게 넘겼다. 게펜은 또 멕시코 재벌 마르티네즈에게 1억 4,000만 달러에 넘겼다. 클림트의 <아델 블로흐바우어Ⅰ>(1억 3,500만 달러)를 뛰어넘는 거래가였다.

네덜란드 화가 피에 몬드리안도 뉴하우스가 좋아하는 작가다.그는 몬드리안의 유작 <빅토리 부기-우기>(1944)를 1985년 래리 가고시안의 주선 아래 1,200만 달러에 매입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가 작품을 사기도 잘 사지만, 되팔기도 잘한다는 점이다. 그의 조언자인 가고시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헤이그시립미술관이 이 작품을 강력히 원하자 뉴하우스는 1998년, 3,500만 유로에 넘겼다. 13년간 감상은 감상대로 실컷 하고, 3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뉴하우스는 아쉴 고르키의 전성기 작품도 매입했고, 앤디 워홀의 <오렌지 마릴린>도 사들였다. 1998년 <오렌지 마릴린> 경매 때는 런던 테이트갤러리, 뉴욕MoMA, 카지노재벌 스티브 윈이 뛰어들었는데 상상 이상의 금액(1,730만 달러)을 부른 뉴하우스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가 낙찰받은 1964년 작 <마릴린>에 대해 워홀 전문가인 빈센트 프레몽은 “1978-79년무렵 찍어내듯 제작한 <마릴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드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밖에 뉴하우스는 자코메티의 인물조각, 제프 쿤스의 <풍선토끼>(1986)등 다수의 블루칩 작품을 보유 중이다.

‘수집과 수익창출’ 양 측면에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난관은 있었다. 2000년 뉴욕MoMA가 자금조성을 위해 내놓은 피카소의 <Man with a Guitar>(1913)를 1,000만 달러에 샀는데,MoMA의 이사여서 문제가 됐다. ‘보드멤버는 소장품을 매입해선 안 된다’는 규정을 어겼던 것. 논란이 일자 그는 1978년부터 역임했던 이사직을 던져버렸다. MoMA에 상당한 기금을 후원하고, 작품도 기증했던 그로선 불명예 퇴진이었다. 이에 측근들은 안타까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켜봤던 이들은 과도한 욕심과 우월의식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전설적인 아트딜러 레오 카스텔리(1907-99)는 1985년 래리가고시안(1945- )과 함께 소호 거리를 걷다가 마주친 뉴하우스 주니어에 대해 “그 양반, 사고 싶은 건 뭐든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타고난 화상인 가고시안은 그 길로 뉴하우스의 전화번호를 따내, 부호의 컬렉션을 적극 챙겨왔음은 물론이다.

카스텔리의 한 줄 평대로 뉴하우스는 ‘원하는 작품은 무엇이든 수집할 수 있는 파워 컬렉터’다. 그의 미술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과 걸작을 쏙쏙 골라내 수집해온 열정은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슈퍼컬렉터에겐 책임과 시민의식도 요구된다. 세기의 문화유산이 될 작품들을 보유하고 있으니 말이다. 구순을 눈앞에 둔 이 ‘외골수 미술애호가’가 과연 멋지고 통 큰 결단을 내릴까? 슈퍼컬렉터의 길은 참으로 복잡미묘하고, 간단찮은 길임을 뉴하우스는 오늘 우리에게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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