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부터 쭉 관심을 가졌던 그림이 경매에 나오자 이 슈퍼컬렉터는 앞뒤 재지 않고 패들을 들었고, 결국 손에 넣었다. 뭉크는 생전에 <절규>를 50회쯤 그렸으나 스케치와 판화가 대부분이고, 본격적인 회화(유화 파스텔화, 수채화)는 4점만이 전해진다. 이 중 오슬로미술관과 뭉크미술관이 3점을 소장 중이고, 경매에 나왔던 파스텔화도 노르웨이 한 가문이 소장해오던 것이다.

리언 블랙의 <절규> 낙찰 소식이 전해지자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즉각 발 벗고 나섰다. 이들은 모두 석판화 버전의 <절규>만 소장하고 있어, 엄청난 화제를 지닌 오리지널 회화를 꼭 대여받고 싶었던 것. 

블랙은 결국 2012년 10월, MoMA에 <절규>를 건넸고, 특별공개는 6개월간 이어졌다. 그는 메트로폴리탄뮤지엄, MoMA 두 기관의 이사인데 아무래도 MoMA가 더 극성(?)을 보인 듯하다.

뭉크의 <절규>를 손에 넣는 바람에 더욱 유명해진 리언 블랙은 포브스 선정 ‘세계부호순위’ 324위(재산 53억 달러)에 올라있는 슈퍼리치다. 포브스는 그가 총 20억 달러 가치의 아트컬렉션을 보유 중이라고 평가했다. 

특기할만한 점은 드로잉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는 점이다. 드로잉이야말로 한 작가의 내면과 예술혼을 제대로 살필 수 있는 장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드로잉은 작업에 임하는 예술가의 태도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리언 블랙은 10대 시절부터 드로잉을 수집했다. 그의 아버지는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로, 농산물 유통업체를 경영했다. 가정은 당연히 유복했다. 

어머니는 아티스트였고, 이모는 화랑을 경영했다. 예술과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수많은 미술책을 탐독하던 블랙은 용돈이 쌓이면 세잔, 드가 같은 작가의 드로잉을 샀다. 대가의 작품이었지만 1960년대에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리언 블랙은 ‘대학을 마치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옥스퍼드에서 강의하며 살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런 낭만적인 꿈을 단칼에 접게 한 이가 있었으니 아버지였다. 부친은 ‘유나이티드 브랜드’라는 꽤 잘 나가는 농산물(주로과일) 무역업체를 경영 중이었는데 아들에게 “쓸데없는 소리 접고,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 들어가라”고 강권했다. 

아들은 마지못해 진로를 틀었다. 그런데 1975년 2월,아들이 하버드대학원에 다닐 때 아버지가 자신의 사무실이 있던 맨해튼의 팬암빌딩 44층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했다. 부친 일라이 블랙은 중앙아메리카 온두라스로부터 농산물을 수입하며 온두라스 정부에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이 불거져 조사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의 자살을 계기로 아들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부친을 닮아 차분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이후 입을 꽉 닫은 채 일에만 매달렸다. 드렉셀 번햄 램버트 투자은행에서 블랙은 단연 두각을 보였고, 결국 1990년에는 자신의 회사 아폴로(AGM)를 차렸다.

칼 아이칸, 테트 터너 등 기라성같은 거물과 협력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폴로를 ‘톱5’의 사모펀드로 키워낸 리언 블랙은 취미가 미술품 수집과 독서다. 차분한 성격답게 클래식한 작품을 좋아한다. 

고대미술을 사랑하고, 르네상스와 인상주의 미술을 선호한다. 물론 현대미술과 중국 고미술도 수집했으나 컬렉션의 주를 이루는 것은 클래식한 드로잉이다. 그중에서도 르네상스 거장 라파엘로 산치오의 드로잉과 빈센트 반 고흐의 소묘를 특별히 아낀다. 영국의 풍경화가 윌리엄 터너의 회화도 수집했다.

라파엘로의 대표적 드로잉은 2점이나 샀다. 한 점은 <뮤즈의 초상>이고, 또다른 그림은 <젊은 사도의 초상>이다. <뮤즈의 초상>은 2009년 소더비 뉴욕경매에서 4,490만 달러에 샀다. 이는 드로잉 경매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것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이어 라파엘로의 또다른드로잉 <젊은 사도의 초상(Head of a Young Apostle)>을 2012년 12월 소더비 런던경매에서 낙찰받았다. 낙찰가는 4,760만 달러. 이 작은 드로잉은 또다시 블랙에 의해 ‘드로잉 사상 최고낙찰가’ 를 기록했다. 그러나 문제는 작품공수였다. 귀한 드로잉을 뉴욕으로 가져오기위해 블랙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국 정부 측이 라파엘로 드로잉의 국외반출을 막았기 때문이다. 런던의 데본셔 공작이 작품을 50년 이상 소유했던 만큼 “드로잉이 영국 땅을 떠나려면 엄정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반출을 불허했다. 길고, 복잡한 절차를 거친 끝에야 블랙은 라파엘로의 드로잉을 뉴욕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그의 컬렉션 리스트에는 파블로 피카소가 마리-테레즈의 상반신을 표현한 조각 <여인의 흉상>도 포함됐다. 이 작품 또한 난관을 겪게 했다. 피카소의 딸인 마야 윌드마이어가 보유하고 있는 이 흉상을 블랙은 가고시안(아트딜러)을 통해 1억 600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런데 고령의 마야 여사가 카타르 왕실에도 이조각을 팔아 서로 “내 것이다”며 소송이 붙게 됐다. 결국, 팔순의여사가 이중으로 판매했음이 확인됐고, 블랙이 피카소 흉상을 갖는 것으로 정리됐다. 천신만고 끝에 조각을 집에 들고 올 수 있었다.

이렇듯 그는 소장품마다 사연이 꽤 많다. 그 때문일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소장품을 집 밖으로 잘 내보내지 않고 있다. 파크애비뉴의 그의 저택을 찾은 비평가들이 “다양한 스타일과 시대별 예술품의 향연”이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 뿐이다.

리언 블랙은 “미술과 문학이야말로 우리를 야만과 구분 짓게하는 요소”라며 컬렉션에 심취해 있다. 화가의 거짓 없는 면모가 고스란히 투영되는 드로잉을 특별히 사랑하고, 절망에 빠진 인간을 치열하게 그린 뭉크의 걸작을 마침내 품은 이 남자는 ‘냉혹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갖춘 인간임이 틀림없다. 

숨을 쉬고, 느끼고, 아파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란 너나없이 불가해한 존재임을 그 역시 꿰뚫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