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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언더그라운드 만화가’ 아버지와 서점순례하던 디카프리오 배우가 숙명이었다면 아트컬렉션은 또 다른 운명

이영란

 
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우) 장 미셸 바스키아, Untitled (Boxing Ring), 1981, 디카프리오 소장

할리우드에는 미술에 열광하는 스타 컬렉터들이 꽤 많다. 브래드 피트와 휴 그랜트가 그렇고, 토비 맥과이어가 그렇다. 배우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던 하버드의대 출신의 극작가 마이클 크라이튼 또한 대단한 아트컬렉터였다. <쥬라기공원>, <ER>의 각본을 썼던 그가 타계하자 크리스티는 대표작을 추려 특별경매를 열었을 정도다.

최근에는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가장 돋보이는 할리우드 수집가로 부상했다. 디카프리오는 『아트뉴스』가 매년 집계하는 ‘세계 톱200 컬렉터’에 작년과 올해 연달아 이름을 올렸다. 그의 컬렉션 리스트에는 살바도르 달리, 장 미셸 바스키아, 프랭크 스텔라, 안드레아 거스키, 에드 루샤, 무라카미 다카시 등 유명작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또 마크 라이든, 장 피에르 로이, 토드 쇼어 등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국 내에선 꽤 인기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포함됐다. 그런가 하면 콜롬비아 출신 작가 오스카 뮤릴로는 디카프리오 때문에 스타덤에 올랐다. 디카프리오는 지난 2013년 필립스가 개최한 ‘Under the Influence’ 경매에서 뮤릴로의 낙서화같은 작품을 추정가의 10배에 달하는 가격에 낙찰받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세계 정상급 스타가 엄청난 경합을 뚫고 그림을 샀으니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 했다.

한편 로버트 크롬, 로버트 윌리암스 같은 만화가들의 1970-80년대 만화와 할리우드 옛 황금기(Golden-Era)의 빈티지 영화 포스터도 다수 수집해놓고 있다. 구체적인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디카프리오 컬렉션은 최소 2,000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추정된다.

태어날 때부터 미모가 출중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숙명이었다면, 그가 아트컬렉터 대열에 진입한 것 또한 운명이라 할 수 있다. 미술에 한 발 들여놓고 있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으니 말이다. 디카프리오의 부친은 이탈리아 출신의 만화가였다. 어머니는 독일계로, 법률비서였다. 두 사람은 대학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LA로 이주했다. 디카프리오의 아버지는 LA를 무대로 언더그라운드 만화가로 활동하며, 만화책을 출판하는 일도 했다.

디카프리오가 ‘레오나르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스토리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미술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을 감상하던 디카프리오 부모는 때마침 뱃속의 아기가 발길질을 세게 하자 “이 녀석 이름은 ‘레오나르도’로 해야겠다”고 선언했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거장의 명작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히 알렸으니, 훗날 그가 미술에 빠져들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인 듯싶다.

워낙 외모가 빼어난 탓에 아들은 연예계로부터 일찍 러브콜을 받았다. 10대 중반에 이미 여러 편의 TV 드라마에 출연했고, 열여덟살 때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지적 장애가 있는 소년역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시종일관 날카롭고, 강렬한 연기”라고 평했다. 이 작품으로 각종 상을 휩쓴 디카프리오는 <로미오와 줄리엣>(1996), <타이타닉>(1997)에 출연하며 엄청난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SF 스릴러 <인셉션>(2010)과 시대극 <위대한 개츠비>에 출연했고, <레버넌트>(2015)로 데뷔 23년 만에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4전 5기 끝의 수상이었다.

이 꽃미남 스타를 미술의 세계로 이끈 것은 아버지였다. 아들이 태어나 얼마 안 돼, 부모는 이혼했다. 어머니 편에서 길러졌던 디카프리오는 이따금 아버지를 만났다. 부친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서점을 순례했는데, LA를 무대로 활동하던 만화가, 삽화가들을 수없이 만났다. 저절로 시각예술과 가까워진 것. 훗날 디카프리오는 아트컬렉션에 입문하며 아버지의 옛 동료들로부터 조언을 들었다. 또 에드 루샤, 마크 라이든 같은 유명 아티스트도 소개받았다. 그들의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게 큰 도움이 됐다.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디카프리오가 맨 처음 모은 것은 야구카드였다. 좋아하는 야구선수의 모습이 인쇄된 카드를 열광적으로 모았다. 가치로 볼 땐 별 것 아니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이라 박스째 보유 중이다. 또 할리우드 황금기의 빈티지 포스터도 상당량을 모았다. 그는 “옛 포스터들은 영화사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꽤 의미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잘 몰라준다.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컬렉션의 핵심은 역시 현대미술이다.

선행학습(?)을 받긴 했지만 디카프리오는 뉴욕 소호(SoHo)의 화랑가를 컬렉터 입장에서 처음 찾았을 때 몹시 막막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주위에선 작품들을 보고 “와우~”하며 탄성을 내지르는데 그 자신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는 것. 아트페어와 경매 프리뷰에서도 막막하긴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술관과 화랑을 자주 찾으며 작품들을 음미하고, 지인들의 컬렉션을 접하면서 차츰차츰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취향도 생겨났다. 디카프리오가 좋아하는 것은 거침없고 자유분방한 작품이다. 한 곳에 얽매이는 걸 싫어하는 자신의 성격과 궤를 같이한다. 이를테면 스위스 작가 우르스 피셔의 대단히 도발적이고 탈장르적인 작품이 한 예다. 기존의 관습과 규범을 과감히 탈피한 작업, 패러독스나 유머가 있는 작업,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작업을 특히 좋아한다.


장 피에르 로이, nachlass, 2015, 디카프리오 소장

그런 기준으로 컬렉션한 작품이 바로 마크 라이든, 에드 루샤, 토드 쇼어, 장 피에르 로이의 작품이다. 서늘한 표정의 소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가 등장하는 마크 라이든의 소름 끼치는 그림은 ‘평범한 동화를 뒤집는 전복성’이 매력적이라고 수집했다. 토드 쇼어, 장 피에르 로이의 작업은 만화적 상상력에 끌려 사들였다. 그는 비범한 프론티어였던 앤디 워홀과 장 미셸 바스키아를 존경하며, 줄리안 슈나벨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를 흠모한다. 

특히 장 미셸 바스키아는 ‘우상’이라고 밝혔다. 현대미술 컬렉션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수집한 작품이 바스키아 드로잉이다. 현재 그는 세계 최대 화랑인 가고시안갤러리가 ‘특별관리’하는 컬렉터가 됐다. 소더비, 크리스티도 집중적으로 그를 챙긴다.그에게 컬렉션 원칙을 묻자 “영화를 고를때 시나리오를 본 뒤 곧바로 결정하듯, 작품도 첫 끌림에 따라산다. 두 번, 세 번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결정한다”고 했다. 자신의 직관에 따라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림이라면 수집한다는것. 미술계에선 디카프리오가 ‘향후 뜰만 한 유망주를 콕 집어내는 능력이 남다르다’고 평한다.

그는 아트바젤, 아트바젤마이애미, 프리즈뉴욕을 빠지지 않고 찾는다. 심지어 올봄에는 아트바젤홍콩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경매에도 자주 출몰한다. 그런데 스타인 까닭에 관람이 편편치 않은 게 사실이다. 수수한 차림에 선글라스와 모자로 중무장해도 사람들이 용케 알아보고, 카메라를 들이대기 때문에 작품에 집중하기 힘들다는 것.

디카프리오는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LA카운티미술관(LACMA)의 자선행사 ‘Art + Film Gala’를 매년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존 제라드의 대규모 영상설치작품 <Solar Reserve>를 LACMA에 기증하기도 했다. 

자산 2억4500만 달러를 보유한 디카프리오는 환경보호를 위해 다른 스타들에 비해 비교적 절제된 삶을 살고 있지만(이 대목에 대해선 이론이 분분하다) 여성편력만큼은 여전하다. 슈퍼모델 지젤 번천을 비롯해 늘씬한 금발모델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왔다. 요즘은 16살 연하의 패션모델과 사귀고 있는데 역시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작품과는 열정적으로 결혼(?)해 집에 들이지만, 여성과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는 걸 보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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