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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달러짜리 고대 라틴조각 수집하던 내셔 부부, 최고의 조각컬렉터 돼 댈러스에 ‘예술 오아시스’ 만들다

이영란

팻시 내셔, 레이먼드 내셔

회화를 수집하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조각을 수집하는 사람은 1명 쯤이나 될까? 정확한 통계가 없어 아쉽지만, 조각 컬렉터는 회화 컬렉터에 비해 매우 드물다. 그림을 사는 건 쉬워도 입체작품을 사는 건 훨씬 많은 문제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조각은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데다, 보관과 이동 또한 쉽지 않다. 그래서 슈퍼컬렉터 중에서도 조각 컬렉터는 별로 없다. 아트딜러들은 “회화,사진 등을 거쳐 맨 마지막에 도달하는 게 조각”이라고 입을 모은
다.

그러나 미국 텍사스의 은행가이자 부동산개발업자인 레이먼드내셔(Raymond NASHER) 부부는 예외 케이스다. 이 부부는 초창기부터 조각에 매료돼, 일평생 조각만 수집했다.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후원자이자, 근현대 조각부문에서 세계정상급 컬렉터로 꼽히는 내셔 부부는 신혼 시절, 작은 원시조각을 접하면서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다. 평범했던 기업인 부부에서 열렬한 미술애호가로 점프하게 된 것이다.

남편 레이먼드 내셔(1921-2007)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의류봉제업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술에 조예가 깊었던 부모는 외아들을 데리고 매달 보스턴미술관을 찾았다. 훗날 그는 “아버지 손을 잡고 반 고흐의 <우체부 조셉 룰랭의 초상>을 보는 순간, 뇌리에 일격이 가해졌다”고 회고했다. 긴 수염을 구불구불 늘어뜨린 우체부는 화폭 밖으로 막 튀어나올 듯 생생했던 것이다. 반 고흐의 격렬한 붓 터치가 어린 소년을 뒤흔든 순간이었다.

이후 이 남자는 일곱 살 연하의 팻시 내셔(Patsy NASHER,1928-88)와 결혼했고, 부동산개발사업을 위해 댈러스로 이주했다. 두 사람은 신혼이던 1950년대 중반, 멕시코 여행길에서 고대 라틴조각을 발견하고 빠져들었다. 더없이 질박하고 토속적이었던 원시조각들은 가격이 10-20달러에 불과해 큰 부담 없이 수집할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라틴조각을 눈여겨본 이들이 없었던 것. 어딘가 좀 어눌하지만, 생명력으로 가득찬 라틴조각을 집 안팎에 설치하고 음미했던 부부는 1965년 댈러스에 ‘노스파크센터(NorthParkCenter)’라는 첫 쇼핑몰을 개발 하면서 예술을 접목시켰다. 상업공간에 예술품을 설치한 것은 노스파크센터가 세계 최초였다. 부부는 18만㎡(5만6,000평)에 달하는 쇼핑몰 곳곳에 조각을 설치했는데,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리고 2년 후인 1967년, 팻시 내셔는 남편 생일을 맞아 큰맘먹고 유명작가의 청동 조각을 사들였다. 독일 출신의 프랑스 조각가 장 아르프의 작품 <토르소와 싹(1961)>을 집안에 들여놓은 아내는, 남편의 귀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나뭇가지처럼 표현된 인체에 부드러운 싹이 돋아난 추상조각을 본 남편은 크게 반겼다. 어린 시절, 반 고흐 회화를 접했을 때의 그 전율을 다시금 느꼈던 것. 당시 아르프는 베네치아비엔날레 수상(1954)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인데, 팻시가 사들인 조각은 대표작 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이 조각이 계기가 되어 부부는 본격적으로 현대조각 컬렉션에 나섰다.

마크 디 수베로, Eviva Amore(Long Live Love), 2001, 1077×1433×914cm,
Nasher Sculpture Center

사업뿐 아니라 유엔대표부 대사 등 공직을 맡아 바삐 뛰던 남편을 대신해 아내가 컬렉션을 주도했다. 작품 보는 안목이 빼어난 데다, 많은 책을 탐독하며 큐레이터 이상으로 연구와 분석을 거듭하던 팻시 내셔는 미국 작가는 물론이고 유럽 작가들의 조각을 사 모았다. 그중에서도 헨리 무어, 호안 미로, 알렉산더 칼더의 조각은 여러 점을 수집했다. 특히 헨리 무어의 작품은 <여인와상>을 비롯해 7점이나 사들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미니멀리즘 작가와 팝아티스트들의 조각을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도날드 저드, 앤디 워홀, 클래스 올덴버그, 로이 리히텐슈타인, 엘즈워스 켈리의 작품을 컬렉션했다. 윌렘 데쿠닝은 내셔 부부의 초청을 받고 댈러스에서 작업했다. 데 쿠닝의 독특한 형상의 여성조각은 마크 디 수베로의 15m 길이의 대형조각 <Eviva Amore>와 함께 오늘날내셔컬렉션의 백미로 꼽힌다.

<성조기> 그림으로 유명한 재스퍼 존스의 부조 6점을 매입했고 나움 가보, 토니 스미스, 조엘 사피로,조지 시걸, 클래스 올덴버그, 리처드 세라, 이사무 노구치, 사이톰블리의 조각도 사들였다. 지금으로 치면 점당 수억 또는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들이지만 당시만 해도 별로 관심 두는 이가 없어 수월하게 대표작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니쉬 카푸어, 제프 쿤스, 리처드 디콘 같은 젊은 작가 작품도 사들였다. 

이 무렵 두 사람은 이른바 ‘모던 마스터’라 불리우던 근대 거장들의 조각도 여러 점 컬렉션했다. 특히 자코메티 조각은 10점을 수집했고, 조각의 밑바탕이 된 스케치와 유화도 사들였다. 부부가 수집한 자코메티 유화드로잉 중에는 지난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현대미술 최고가(1,200억 원)를 경신했던 <걷는 남자>의 탄생을 알리는 드로잉도 포함돼 자코메티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 자코메티의 <베네치아의 여인>은 조각과 드로잉을 함께 수집해, 비교 감상할 수 있게끔 했다. 피카소 조각은 아프리카 원시조각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등 7점을 수집했다. 조각과 연계해 피카소의 유화 2점도 사들였다.

예술에 있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친화력도 남달랐던 팻시내셔는 유방암에 이어 뇌암까지 생겨 1988년 숨지고 말았다. 이후 남편은 아내의 유지를 받들어 ‘근현대 조각 전반을 아우르는 반듯한 컬렉션’을 위해 수집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칼 안드레, 토니 크랙, 안토니 곰리, 리처드 롱의 작품이 추가돼 컬렉션은 300점을 넘어섰다. 그러자 도처에서 전시제의가 빗발쳤고 1987년 댈러스미술관에서 첫 소장품 전시를 열었다. 이후 워싱턴 DC의 내셔널갤러리, 마드리드의 국립소피아왕비예술센터, 피렌체의 벨베데레요새에서 순회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96-97년에는 샌프란시스코 리전오브어너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근현대조각 100년:내셔컬렉션’전이 열렸다. 이 전시 후 여러 미술관이 부부의 컬렉션을 넘겨받길 원했다.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이 많았지만, 레이먼드 내셔는 컬렉션을 댈러스 밖으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고, 자신의 돈 7,000만 달러를 들여 2003년 댈러스에 미술관을 설립했다. 아내가 세상을 뜬지 꼭 25년 만이었다. 렌조 피아노가 디자인한 내셔조각센터는 실내와 실외의 조각들이 투명한 유리를 통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다. 또 조경디자이너 피터 워커가 꾸민 야외갤러리에는 로댕, 피카소, 무어 등 거장들의 조각들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레이먼드 내셔는 2005년에 모교인 듀크대에도 현대미술관을 건립해 기증했다.

Naum Gabo, Constructed Head No2, 1916,
177.8×137.8×121.9cm

내셔 부부의 컬렉션은 근대에서부터 전후(戰後), 컨템포러리까지 근현대 조각의 여러 사조가 균형을 이루며 주요작이 망라된 것이 특징이다. 추상과 구상,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것도 돋보인다. 레이먼드 내셔는 미술관을 건립 후 “미술의 즐거움은 다른 무엇(사업)에 비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리곤 딸과 사위에게 모든 걸 인계하고2007년 숨을 거뒀다.

딸인 낸시 내셔는 ‘내셔프라이즈’를 신설해 괄목할만한 작업을 하는 조각가를 시상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 및 프로그램을 전개 중이다. 특히 5-10월에 열리는 ‘till Midnight’는 단연 인기다. 리처드 세라, 디 수베로 작품이 늘어선 조각정원에서 무료콘서트와 영화를 보며 여름밤을 즐기는 이들로 장관을 이룬다. 조각컬렉션에 모든 것을 바친 부부의 유산은 이렇듯 댈러스 도심에 ‘예술 오아시스’가 돼 수많은 대중의 심연을 시원하게 적셔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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