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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소년시절 카레이서 꿈꾸던 천재감독 루카스 ‘영화의 한 장면’같은 그림 컬렉션하고, 뮤지엄 만든다

이영란

조지 루카스

공상과학(SF)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스타워즈>의 조지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은 잘 알 것이다. 루카스는 세계적 팬덤을 불러일으킨 <스타워즈> 시리즈와 <인디아나 존스>,<청춘낙서> 등 기념비적 영화를 숱하게 만든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이다.그는 1970년대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흐름을 서부극에서 SF로 바꿔놓으며 영화계를 뒤흔든 혁신적 인물이다. 루카스 감독의 영화적 재능을 일찍 간파하고, 함께 일했던 하스켈 웩슬러는 “그는 아주 특별한 눈을 가졌다. 생각도 늘 비주얼적으로 한다(Thought visually)”고 평했다. 모든 사고 자체를 ‘시각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의 머릿속이 무척 궁금해진다.

반세기 가까이 영화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던 루카스는 지난 2012년, 자신의 영화사인 ‘루카스필름’을 월트디즈니에 40억 달러에 팔아버렸다. <스타워즈>를 6편이나 만들었던 천재감독의 폐업선언은 충격적인 뉴스였다. 이후 디즈니가 ‘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란 직함을 건네긴 했지만, 실상은 <스타워즈>의 모든 아이디어와 판권을 넘기고, 간섭은 삼가해달라는 조건이었다. 그저 상징적 존재로 남으라는 오더였던 것이다.

루카스 감독이 열렬히 애정(?)하던 영화사업을 이렇게 접을 수 있었던 것은 ‘미술’이 있기 때문이다. 약 30년간 열심히 수집해온 엄청난 미술품들이 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졸업 후 일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던 ‘필름메이커’란 타이틀 대신, 그는 ‘뮤지엄메이커’란 새 타이틀을 택한 셈이다.캘리포니아 모데스토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던 중산층 가정서 태어난 루카스는 어린 시절 온통 자동차 생각밖에 없었다. 그는 카레이서를 꿈꾸며 밤낮으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러나 고교졸업반 무렵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했다. 그리고 방향을 튼 게 영화였다. 8mm 소형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촬영하던 그는 남가주대학(USC)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계에 투신했다. 레이서를 갈망하던 10대 시절을 짜임새 있게 녹여낸 자전적 영화로 주목받기 시작한 루카스는 <스타워즈>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그의 나이 서른셋에 세계의 갈채를 받았고, 이후 승승장구하며 ‘할리우드의 가장 성공한 영화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루카스는 영화계 은퇴 후 가진 인터뷰에서 “41년간 영화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인생 2막은 사회에 공헌하며, 다른 길을 걷겠다”고 했다. 그 다른 길이란 교육재단 사업과 함께, <루카스 뮤지엄 오브 내러티브 아트(Lucas Museum of Narrative Art)>를 설립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 영화계에는 아트컬렉터가 무척 많다.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브래드 피트, 토비 맥과이어 등 미술을 좋아하고, 작품을 수집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하지만 할리우드에서 그 누구도 루카스처럼 분명한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부합되는 작품을 맥락 있게 수집하는 이는 없다. 그는 남들이 선호하는 유명작가 작품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자신의 컬렉션 목표만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루카스뮤지엄 오브 내러티브 아트, 건축가: 마 얀송(Ma YANSONG)


루카스는 영화의 한 장면을 옮겨다 놓은 듯한, 마치 영화의 한 시퀀스를 보는 듯한 회화,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사진을 수집했다. 또 코믹만화와 뉴미디어아트도 연구·검토하며 ‘이야기가 담긴 미술작업’을 집중적으로 수집해왔다. 이들 작업은 아트컬렉션의 본류에 속하지 않음은 물론, 미술계 내에서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많다. 투자가치도 당연히 떨어진다. 그런데도 루카스는 개의치 않았다. 돈 많은 억만장자 컬렉터들이 하나같이 받들어 모시는(?) 유명작가 대신, 자신의 컨셉에 부합되는 작가에 주목하며 컬렉션의 성격을 견지해낸 뚝심은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루카스는 경제 공황기와 2차 세계대전을 겪은 미국인들의 고단한 일상을 재치있게 포착한 노먼 록웰의 회화와 드로잉을 50점이나 수집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스티븐 스필버그도 록웰의 작품세계에 매료돼 30점을 보유하고 있다.두 사람이 록웰 그림에 주목하게 된 것은 영화사로 잘못 배달된 잡지 때문이었다. 1970년대 말 『선데이 이브닝 포스트』는 표지에 록웰의 ‘이야기가 깃든 그림’을 매달 실었는데, 루카스와 스필버그는 이에 감전되듯 홀리고 말았다. 그들은 “어떻게 단 하나의 장면에 그토록 많은 스토리를 똑 떨어지게 담아낼 수 있는걸까?”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록웰의 삽화는 ‘이미지네이션의 순간’ 그 자체였던 것이다. 작은 것의 가치,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어 폐부를 찌른다.

1980년, 루카스는 야구연습을 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논쟁을 벌이는 장면을 흥미롭게 그려낸 록웰의 작품을 사들였다. 그는“록웰은 묘사력도 뛰어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 볼수록 빨려든다”고 밝혔다. 이후 루카스는 록웰의 작품이 화랑에 나오는 대로 매입했다. 스필버그 또한 록웰의 회화를 매입하고, 사무실에 걸었다. 스필버그는 “아이디어가 막힐 때마다 록웰작품을 음미했다. 경찰서를 찾은 이런저런 사람들을 묘사한 그림에는 여러 요소가 숨어있어 늘 신선했다”고 전했다. 두 영화 거장의 록웰 컬렉션은 지난 2010년 워싱턴의 스미소니언미술관에서 ‘Telling Stories’라는 타이틀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계를 주름 잡았던 감독들이 직접 고른 그림들이 대중과 만난 전시여서 큰 화제를 모았다.

루카스는 노먼 록웰 외에도 커트 아드, 존 C. 버클리, 해리슨 피셔, 로버트피크 등 일러스트레이션 부문에서 유명세를 날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거 수집했다. 또 만화 <찰리 브라운>으로 유명한 찰스 슐츠의 만화 원본과 짐 데이비스, 해롤드 그레이 등 실력 있는 만화가들의 작품도 광범위하게 컬렉션했다. 미국 근대 사진의 개척자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를 비롯해 여러 사진가의 사진도 수집했다. 그뿐만 아니라 르누와르, 드가, 호머, 장 뤽 고다르, 알폰스 무하의 작품도 보유하고 있다. 

노먼 록웰, 기도, 1951

루카스 컬렉션은 작품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게 공통점이다. 이 때문에 “내러티브 아트라는 특화된 방향 아래, 수준 높은 작품을 체계적으로 맥락화시킨 루카스의 컬렉션은 의미가 크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고 미술사가 돈바시갈루피는 평가했다.루카스는 샌프란스시코 인근의 마린카운티에 거주하며 뮤지엄 설립을 추진했으나 입지와 건물디자인에서 이견이 도출돼 무위로 그쳤다.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 해안에 멋진 상상력 충전소를 세우려 했던 그는 섭섭한 마음을 안고, 시카고와 협상을 시작했다. 

시카고는 루카스가 재혼한 아내 멜로디 홉슨(투자사업가,47)의 고향으로, 아내와 친한 시장 람 이매뉴얼이 무척 적극적 이어서 일사천리로 타결됐다. 시카고 시장은 루카스의 아트컬렉션 가치가 1조1,000억 원(10억 달러 추정)에 달하고, 미술관 건립에도 4,000억 원을 투입한다니 경제적, 문화적 효과가 막대하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엔 시카고 시민단체 프렌즈 오브 더 파크스(Friends of the Parks)가 ‘뮤지엄 설립 철회’를 요구하며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시는 소송기각을 요구했으나 재판부는 “미시간호변에 민간건물이 들어설 수 없도록 한 조례가 있다”며 반려해 루카스는 또 보따리를 싸야 했다.

<스타워즈>에 버금가는 또 다른 역작을 만들고자 한 루카스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현재 LA와 샌프란시스코의 제안을 재검토하고 있다. 그의 마음은 일단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쪽으로 기울었으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여럿이다. 따라서 세계 최초의 내러티브아트뮤지엄은 2020년쯤에야 볼 수 있을 듯하다. 특화된 체험형 뮤지엄을 향한 루카스의 마지막 꿈이 잘 구현될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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