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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어린시절 그림엽서 수집하던 로더家상속자들, 미국 뮤지엄에 튼실한 기둥 세우다

이영란


레너드 A. 로더



로널드 S. 로더


미국의 화장품 브랜드 에스티 로더(Estee Lauder)는 아마도 모르는 여성이없을 것이다.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는 이 코스메틱 브랜드의 상속자들은 미국 미술계에서 알아주는 슈퍼컬렉터이다. 어머니 에스티 로더(1906-2004) 여사가 일군 화장품 기업을 이어받아, 전 세계 150개국으로 뻗어 가게 한 장남과 차남은 일찍부터 미술에 눈을 떠 평생을 음미해왔다. 


큰 아들 레너드 A. 로더(83)는 40여년간 모아온 미술품을 뉴욕 휘트니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에 쾌척했다. 11살 아래의 동생 로널드 S. 로더(72)는 에곤 쉴레, 에른스트 키르히너 등 20세기 오스트리아, 독일미술을 컬렉션하고 이를 자신의 미술관을 통해 대중과 공유하고 있다. 특히 동생은 지난 2006년 클림트의 황금빛 유화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초상1>을 1억 3,500만달러(약 1,297억 원)에 매입해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뿌렸다. 당시로선 공개된 미술품거래 중 최고가로 뉴스의 초점이 됐다.


이렇듯 형제는 미국 미술계에서 ‘어떤 컬렉터와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는, 높은 수준의 컬렉션을 구축한 후원자’로 불린다. 하지만 국내에선 클림트 초상화를 수집한 동생만 잘 알려져 있을 뿐이다. 동생이 정치활동과 대외활동에 적극적인 데다, 독립적인 개인미술관을 운영하는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먼저 장남인 레너드 로더부터 살펴보겠다. 동유럽계 유대인 이민자가정에서 태어난 레너드는 여섯 살 때 아르데코 엽서에 매혹된 이후 용돈만 생기면 색다른 엽서를 찾아 나서곤 했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고 멋내기를 즐기던 어머니와 차분하고 꼼꼼한 아버지의 성품을 고루 이어받은 그는 일평생 이 소박한 취미를 이어갔다. 


그 결과 12만 점을 넘어섰다. 레너드 로더는 2010년 동생의 뉴욕 미술관에서 엽서 컬렉션전도 열었다. 비엔나발 진귀한 엽서들이 다수 포함돼 반향이 썩 좋았다. 작은 엽서에 그토록 많은 스토리와 예술이 켜켜이 담겨 있으리라곤 누구도 생각 못했던 것이다. 이후 레너드는 엽서 전체를 보스턴미술관에 기증했다. 이에 미술관은 ‘mini-masterpieces’라는 특별관을 조성해 헌정했다.


그는 “내겐 그림엽서가 정말 특별했다. 온 세계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었으니까. 그림엽서는 아트컬렉션으로 가는 길도 열어주었다”고 회고했다. 엽서를 모으던 꼬마는 동부의 명문 유펜과 콜럼비아대 대학원을 거쳐 스물다섯살 때 부모님 회사에 발을 들여놓은 후 50여 년간 일했다. 현 직함은 에스티 로더그룹 명예회장. 장남으로서 가업을 잇느라 바빴지만, 주말이면 아내와 미술관을 꼭 찾았는데 ‘가장 혁신적인 미술관’인 휘트니미술관과 ‘뉴욕의 대표 뮤지엄’인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은 빼놓지 않았다. 


1977년에는 휘트니미술관 이사회 의장에 취임하고 휘트니를 물심양면으로 후원했다. 컬렉션한 그림과 기부금을 잇따라 내놓던 로더 의장은 2008년에는 1억 3,1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쾌척했다. 이는 휘트니 77년 역사상 최고의 기부액이다. 이로써 휘트니미술관은 메디슨애비뉴 75번가의 건물을 팔지 않아도 되었다. 


결국, 휘트니는 2015년 멋진 새건물을 짓고 이사하면서, 옛 건물은 MET에 현대미술전시관으로 임대했다. 유서 깊은 뉴욕의 현대미술 전진기지는 이로써 명맥을 잇고 있다. 레너드 로더는 또 40대 초반부터 모아온 큐비즘 작품 81점을 지난 2013년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기증했다. 파블로 피카소 34점, 조르주 브라크 17점, 페르난도 레제 15점, 후안 그리스 15점 등 입체파 거장의 회화와 조각이 포함된 컬렉션은 입체파의 탄생과 변화과정을 살필 수 있는 컬렉션으로 평가된다. 


금액적 가치는 10억 달러대. 레너드 로더는 “입체파 같은 주요 사조의 작품들이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서 전시, 연구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사조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이어 “다행히 내가 큐비즘에 몰두했던 1970, 80년대만 해도 인상파, 후기인상파 작품에 비해 큐비즘 선호도가 낮아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었다. 


잡지며 신문지 조각을 콜라주하고, 톱밥 모래 밧줄로 실험했던 작품을 누가 그리 좋아했겠는가. 그런데 입체파의 이런 실험은 추상미술 발전의 견인차가 됐다”고 강조했다. 레너드 로더는 MET에 2,200만 달러의 기부금도 함께 전달했다. 현대미술리서치센터 설립에 써달라며 연구기금까지 내놓은 것이다. 작품기증은 물론, 심도 있는 학술연구를 독려한 것은 매우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동생 로널드 로더를 살펴볼차례다. 에스티 로더의 제2브랜드인 크리니크(Clinique)를 이끌고 있는 로널드 로더 회장은 10대 시절부터 오스트리아-독일 미술에 매혹됐다. 12-13살 무렵에 이미 툴루즈 로트렉, 에곤 쉴레의 그림을 샀을 정도다. 그가 열세 살 때 700달러를 주고 산 쉴레의 수채화는 현재 1,000만 달러를 호가한다. 어린 나이였지만그림 보는 눈은 비상했다.


로널드 로더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아트딜러 서지 사바스키를 만나면서 쉴레와 클림트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형과 마찬가지로 유펜을 졸업하고, 파리와 브뤼셀에서 공부했던 로널드는 1967년 뉴욕에서 사바스키를 만났다. 사바스키로부터 오스트리아와 독일 역사를 배운 그는 멘토가 추천하는 유럽의 회화, 조각을 잇달아 사들였다. 특히 빈 분리파와 독일 표현주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사바스키는 로널드의 컬렉션이 일정수준에 오르자 ‘특화된 미술관’을 열 것을 조언했다. 때마침 MET 건너편의 밴더빌트저택이 매물로 나와 기폭제가 됐지만 미술관 건립작업을 진두지휘하던 사바스키는 개관을 앞두고 세상을 떴다. 이에 로널드 로더는 2001년 ‘노이에갤러리’를 오픈하며 “사바스키가 없었다면 이 뮤지엄은 없었을 거다. 그에게 헌정한다”고 했다.


노이에갤러리는 옛 저택의 우아한 내외부를 그대로 살려, 차분함 속에서 20세기 초 유럽회화를 음미하도록 하고 있다. 컬렉션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클림트, 쉴레, 코코슈가, 저스틸이 주축이 된 빈 분리파 작가들의 작품, 20세기 오스트리아 장식미술, 베크만, 키르히너, 놀데 등의 독일 표현주의 회화다. 여기에 바우하우스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의 생활밀착형 디자인작품을 부록처럼 곁들였다. 컬렉션은 총4,000점, 값으로 환산하면 10억 달러가 넘는다.



구스타브 클림트,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 1907


이 미술관의 간판스타는 쉴레와 클림트다. 에곤 쉴레 컬렉션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힐 정도로 양과 질, 모두 대단하다. 로널드 로더는 불안과 고통에 휩싸인 인간 존재를 뒤틀리고 왜곡된 육체를 통해 격렬하게 표현한 쉴레의 그림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골갱이가 공개되고 있는 것. 또 쉴레의 초기 풍경화 등도 포함돼 이채롭다.


한편 클림트의 불세출의 걸작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은 노이에갤러리의 ‘심장’에 해당되는 작품이다. 이 화려한 금빛 회화를 보려고 도처에서 관람객들이 몰려드니 말이다. 클림트가 7년이나 걸려 ‘20세기의 모나리자’를 완성했듯, 로널드 로더 또한 이 작품을 손에 넣기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나치에게 빼앗겼던 명화를 되돌려받기 위해 바우어 부부의 질녀(부부는 자녀가 없었다)가 오스트리아 정부와 8년간의 지리한 법적 투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마침내 2006년 반환이 결정되자 그는 크리스티경매를 중간에 세워, 거금을 치르고 작품을 손에 넣었다. 슈퍼리치 컬렉터로서도 일생일대의 순간이었고, 노이에갤러리 또한 화룡점정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로널드 로더의 아트컬렉션이 최고 평판을 받던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노련한 세금회피가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문제의 클림트 작품을 사들이고 석 달 후, 로널드 로더는 자신이 보유한 방송사 CME의 주식 1억 9,000만 달러어치를 매각해 상당한 개인소득을 올렸다. 명목상으론 작품대금 조달을 위해서라지만 결과적으론 초고가 작품기부를 통해 소득세를 확 줄였던 것이다. 그러자 “명성도 챙기고, 거액의 세금공제 혜택도 누린 짠물 전략”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예술품기부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은 크게 축소됐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강한 걸까? 그의 사례는 슈퍼컬렉터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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